[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어제, 그리고 오늘, 또 내일

닿을 수 없는 목소리에게
글 입력 2018.12.0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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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가끔 꿈을 꿔. 작년 여름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꿈이 무의식적으로 올라올 때쯤 억지로 잠에서 깨어 목 뒤를 털어내곤 해. 다시는 잠이 들 것 같지 못할 그런 기분을 느끼면 발버둥 치고, 발로 강하게 쳐내 보고, 떨쳐냈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내 목덜미 옆에 붙어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정말 질기다. 언제까지 내 옆에 붙어있을 거야?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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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수십 번 자취방 전신 거울을 보면서 '눈바디'를 찍는다. 눈바디란, 눈으로 보는 몸의 형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자가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인바디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정확하지 않은 인바디대신 눈으로 직접 보는 변화를 더 중요시하는 보디체크(body check)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 상태로 찍어본다. 다이어트가 잘 되고 있을 때는 복근이 선명하게 보인다. 전날 폭식을 하거나 뭔가를 먹고 잔 날은 배에 뭔가 들어있는 느낌이고 속도 더부룩하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눈바디를 찍어본다.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나의 복근은 튀어나온 위장을 잘 잡아주는지를 체크한다. 그렇게 하기를 9개월 정도가 되니, 내가 어떤 음식을 먹으면 갑자기 살이 찌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음식은 fear food(공포의 음식)가 된다.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쌓이게 된다.

거울은 나에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단이다. 거울이 있는 곳을 가게 되면 습관이 되어 몸을 검사한다. 보기 싫은 군살이 있는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앞으로의 식단계획과 운동계획을 그 순간 다시 한 번 검토한다. 거울뿐만이 아니다. 내 다리, 내 몸을 비춰주는 온갖 유리창들, 빛에 의해 반사되어 내 몸이 보이는 모든 재질의 벽들 그 모든 상황에서 평가받는다. 버스정류장 키오스크에도 비치는 나의 다리. 마트에서도 중간중간 보이는 거울. 자주 다니던 길에는 어디에 나를 비춰주는 재질의 유리창들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앞도 보지 않고 벽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걷는다. 1학기 때의 모습과 많이 다르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 대부분은 좌절, 그리고 또다시 내리는 결론. 지겨운 식사조절.

진짜 살 너무 쪘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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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지금이 이런 글을 쓸 때인가. 지금 운동을 할 때인가. 마감을 지키지도 못할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나는 왜 식단 계획, 운동 기록이나 하고 있지?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어. 힘들기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게 사실은 좋지 않아?

나도 많이 참았어. 정말 많이 참았어. 왜 이걸 자제력이 없다고 그래? 왜 의지의 문제라고 그래? "너희"들이 야식의 유혹 한두 번 참고 '아, 나는 의지가 정말 강한 사람이야. 이렇게 참으면 되는 걸 왜 참지 않고 먹고 후회하지?' 라고 중얼거릴 때, 나는 수천 번을 참고 참았어. 그 수천 번 중에 한번 흔들린 거야. 그 한번을 저지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통과 유혹의 속삭임이 있었는지 알기나 해? 과제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진짜 미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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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칩 프라푸치노 정말 먹고 싶었는데 팀플할 때 용기 내서 먹어봤어. 아메리카노 마시지 않으면 '돼지'라고 욕할까 봐 걱정스러웠는데 휘핑크림까지 얹어서 들이마셔도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어.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달달한 음료수 마시던걸? 근데 또 먹고 싶지는 않아.

팀플 끝나고 유명한 케이크 가게도 들렀는데, 살 수가 없었어. 한 조각에 8,500원이나 하던걸! 돈 아껴야 해. 돈 아껴서 요가복 사서 살 빼면 예쁘게 입어야지. 밀가루 없는 빵 사서 먹어야지. 결국은 또 먹을 생각이야?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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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참고 참다, 결국 못 이겨서 내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 먹었어. 심지어 밤 11신 데 말이야! 아직 꽝꽝 얼어있어서 빵보다는 아이스크림 같았지만, 초코쉬폰보다는 기름지지 않아서 좋았어. 위에 얹은 코코아 파우더가 떨어져서 다 주워 먹고 싶을 정도였어. 근데 이것도 다시 먹으라고 하면 먹기 싫을 것 같아.

왜?

정말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음식을 좋아해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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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하루에 하나씩 아껴먹거나, 이틀에 한 번 먹는다는 머드스콘. 나는 3일 만에 9개 다 먹었네. 나는 정말 왜 이렇게 자제력이 없을까. 냉동실에 넣어둘 필요도 없었잖아. 근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단백질 바도 하루에 5개씩 먹던 내가 어디 가겠어. 사실 하루 만에 먹어치울 수 있는 건데 이것도 조절 잘한 거야.

이렇게 먹어댔더니 일주일간 살이 너무 쪘네, 돌아가고 싶어. 다시 다이어트 해야겠네. 힘들다. 하기 싫어. 나 근데 먹는 거에 비해선 살 안 찌는 편인 것 같아. 아냐, 합리화하지 마. 지금 거의 비만이니까 살 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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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그랬어.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그래서 밥 한번 사주고 싶다고. 거짓말 하지 마. 내 몸 보고 좋아서 그런 거잖아. 웃는 모습만 봤겠어? 설마 '남자'가 그렇게 순수하겠어? 어떻게 그렇게 호감을 쉽게 표현해? 너는 내가 이렇게 많이 먹는다는 사실도 모르잖아. 내가 가꿔놓은 결과만 보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좋다고 말할 수가 있어?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지?

어떤 남자는 그랬어. 나 없인 이제 못 살겠다고. 거짓말하지 마. 네가 내 인생에 뭔 짓을 저지른 줄 알아?

"씨발, 존나 섹시해"라고 또 다른 남자는 그랬어. 그래, 이런 나라도 섹시하면 사랑받을 수 있어. 타고난 건 없지만, 운동 엄청나게 하면 돼.

근데 그거 사랑 맞아? 그거 사랑 아니잖아.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지, 왜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으려고 그래? 남자 없이 잘 살 수 있잖아. 그렇게 자립하라고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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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시간에 교수님이 눈을 감고 크게 원을 만들며 걸어 다니면서 생각해보라고 했어. 현재부터 과거까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래. 근데 눈을 감으니까 떠오르는 기억이 정말 단 하나도 없네. 나는 현재가 가장 만족스러운 사람인가보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 행복이 뭔지 모르겠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없네. 행복이 뭔지 몰라서 행복했던 적도 없다고 하는 걸까?

무서워. 맞고 싶지 않아. 내 앞에서 욕하지 마.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아. 내 눈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

진짜 웃긴 게, 연기라는 거 아는데도 심장이 내려앉았어. 왜냐면 상대방이 남자였기 때문이지. 도망가고 싶었어. 무섭고, 또 무서웠어. 나는 연기를 하지 않았어. 정말 겁에 질렸어. 근데 그걸 내일 또 겪어야 하고, 다음 주에 또 겪어야 해. 정말 싫다.

내가 먼저 그랬어. 때려달라고. 좋아하는 척했어. 흥분은 무슨 빌어먹을 흥분. 진짜, 진짜, 진짜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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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폭식하면 배가 엄청나게 튀어나오는데, 나는 원래 하체 비만 체질이라 허리가 얇거든. 그래서 배가 거짓말 안 하고 두 배나 튀어나오는데 꼭 임신한 것 같아.

어떤 사람은 폭식하는 이유가 자기가 힘들만한 구체적인 이유, 병을 만들어서, 자신을 본격적으로 미워하기 위해서래. 정말 솔직한 사람이야. 나도 그렇게 정직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병을 이겨내기가 쉬웠을까?

폭식증, 섭식장애 환자를 치료하기가 힘든 건 본인이 낫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서인 경우가 많아서래. 진짜 웃기는 말이다. 누가 낫고 싶지 않겠어? 다들 이 구렁텅이에 들어오지 않고 싶다고, 다이어트를 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말이야.

동생이 50kg 됐다고, 살 좀 빼야겠다고 말했을 때 나 좀 비겁했어. 근데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어. 동생 '너무 예쁜데 왜 살 빼려고 하는 거야. 굶지 말고 그냥 음료수만 안 먹으면 돼',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않았어. 동생은 뚱뚱해도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뚱뚱하면 안 돼? 왜 나는 배 조금 튀어나오면 더럽고 역겨워? 왜 나는 조금 먹고 싶은 거 먹으면 폭식도 아닌데 다 토해내는 거야? 이제 내 하루는 토하기 위해 먹는 하루가 된 것 같아. 먹고 싶지도 않은 밀가루 반죽의 호떡 믹스 다 익지도 않은 것을 날 것 그대로 삼키는 그 기분이 어떤지 알아?

나는 이렇게 운동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는데 왜 내 노력은 항상 그렇게 쓰레기 취급하는 거야? 왜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왜 나를 그렇게 의지박약이라고 돼지라고, 비만이라고 욕하는 거야?

왜 근육통이 없으면, 위경련이 없으면 그 하루를 그냥 넘어가 주지 않는 거야? 근육통 너무 아프고 피곤하고 온종일 잠이 쏟아지는데. 위가 아파서 음식도 먹지도 못하는데 아메리카노는 왜 마시는 거야? 왜 자꾸 빈속에 커피 마시는 거야.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왜 나는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어. 사랑해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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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주는 거야. 그래서 죄를 지으면 자수를 하고 감옥에 가나 봐. 남이 주는 벌보다 사실 자기가 주는 고통이 제일 괴로운 법이지. 사람들을 속인 죄, 나 혼자 알고 있는 죄,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하기 벅찬 죄의 무게.

좌절이란 감정, 이런 건 줄 몰랐는데.

예전엔 그래도 폭식 안 하려고 카페 가거나, 도서관 가거나 도망 다녔는데 이젠 공강 2시간 생기면 집에 와서 굳이 먹고 다 토해내. 시간을 보고 적당한 시간까지 먹다가 토하는 시간, 세수하는 시간 계산해서 집을 나와. 그러다 시뻘게진 눈자위를 하고 팀플을 하지. 팀원들이 왜 울었느냐고 물어볼 만큼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대학생이란 거 참 편한 것 같아.

다이어트란 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더라. 폭식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래. 자기를 정말 아끼면 그럴 수가 없대. 뭐가 어찌 됐든 정말 그만하고 싶다. 뭔가를 하기에 이제 너무 지쳐버렸어.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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