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니체가 말하는 삶의 철학, "살아있어서 힘든 거야" [예술철학]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알 수 있는, 비극의 긍정적 가치
글 입력 2018.12.03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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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하길, "현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어떤 고난도 미학적 현상으로 치환시킬 수 있다면, 인간은 영속적인 행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철학자에 의하면 삶의 목적은 자기극복이다. 삶에 내재된 고난을 극복하는 길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니체를, 우리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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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니체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찾는 우리네 삶의 이유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로, 최고신 제우스와 아름다운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반려이자 최고신 중 하나였던 헤라는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디오니소스는 광기에 휩싸인 채 세계를 배회하라는 형벌을 받는다.


듣기만 해도 온통 불행과 절망으로 점철된 생이다.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비난 받다니, 디오니소스의 비극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늘 인간이 이겨야 할 숙명으로 여겨져 왔는데, 만약 인간이 영영 불행에 패할 숙명이라면 우리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차라리 즐겨라, 어차피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말하길, "고통을 당하는 능력을 가진 민족"은 실존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없단다. 가뜩이나 현실에 치여 사는 이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삶이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살아있어서 힘든 거야"라고 대답하는 꼴이지 않나. 그의 저서에 따르면,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인간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준다. 불행히도 그 고통을 완벽하게 피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이다. 삶과 불행이 공존하는 모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통이 오리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대체 왜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예술, 삶의 모순과 절망을 극복할 유일한 방법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향락을 즐기는 신으로 묘사된다. 그를 인간의 본성에 빗대어 표현한다면, 매혹적인 충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을 억누르게 만드는 파괴적인 힘이며, 우리 스스로 쾌락을 좆게 하는 해방적 욕구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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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카렐리, '디오니소스 축제'


만약 니체가 쾌락만을 따르라고 했다면 따랐을지도 모르겠다. 유구한 역사를 넘어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저명한 철학자의 말이니,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다가와도 즐거움을 잊지 말자' 따위를 인생관으로 삼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쾌락에 물드는 것이 '방종'의 삶이라 말했다. 옳지 않다는 거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 삶의 비극(살아있기에 끊기지 않을 불행)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술이다.


'갑분예(갑자기 분위기 예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니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용하면서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힘든 현실을 살았는지, 그리하여 그들이 어떻게 그 불행을 극복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뛰어난 예술적 가치의 서사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앞서 말했던 자기극복이며, 자신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하는 변용이다. 그래서 니체에게 삶의 예술이란 늘 신화이고, 그는 삶에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신화를 창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힘의 균형에서 비롯되는 삶의 가치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힘(충동적 욕구)과 아폴론적 힘(이성적 판단)의 균형에서 그러한 예술이 창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자기극복에의 의지로 이어지고, 그것을 변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삶, 완전한 행복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겠다는 자세. 이것은 삶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불행이라는 그림자를 이겨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예술로 변용하고 싶다면, 고통을 그 원동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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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던 '커밋' 사진




긍정의 비극, 인간의 신화



철학, 그것도 예술철학은 언제나 어렵고 고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니체의 철학은 역설적임과 동시에 역동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후대에 전하는 비극은 오히려 긍정적이고, 그렇기에 살아갈 희망을 주는 듯하다.


불행과 절망에 뒤덮인 인간은 무력하고, 무력하기에 의지가 없는 자들은 삶을 살아갈 힘을 잃는다. 살아있기에 힘든 거라는 말이 이제는 허투루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살아있기에 고통스럽고, 고통이 있기에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짓게 된다. 자신의 삶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 원동력이 자신 안에 있는 고통이고(내면에 있으니 찾기도 쉽지 않을까.) 이를 극복한다면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저명한 철학자의 말이니 믿고 따라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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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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