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아한 20세기, 그는 고전을 찍었다

전시 <노만 파킨슨 ‘스타일은 영원하다’> 리뷰
글 입력 2018.11.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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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앞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특별한 사진은 아니었다. 예쁜 모델이, 예쁘지만 평범한 옷을 입고, 영국이나 미국에서 흔히 볼법한 어떤 거리를 걷고 있었다. 조금 올드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법한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숨이 멎도록 우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압도적인 우아함이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어, 마치 모델이 화면을 뚫고 걸어 나오기라도 할 것 같았다. 이토록 평범한 것들로도 이토록 기품 있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 노만 파킨슨이 위대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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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거장 시리즈’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에서 여섯 번째 거장으로 오는 1월까지, 포토그래퍼 노만 파킨슨을 소개한다.

20세기 중반, 파킨슨은 독보적인 스타일과 자유분방한 사진들로 당대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는 열여덟 살부터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삼 년 뒤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고 ‘노만 파킨슨’이라는 예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후 유명 패션 잡지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과 협업하며 수많은 모델, 잡지, 셀러브리티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 영국 왕실의 공식 사진가로서 활동하기에 이른다.

그는 사진가였고, 패션사진 작가였으며, 또한 예술 사진가이기도 했다. 시대와 유행에 따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찍어야만 했던 작가, 남들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아니 그런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자신의 영감을 따라 작업해야만 했던 작가. 진정한 예술가이자 거장이었던 노만 파킨슨의 세계를 이번 전시를 따라가며 탐닉해보자.

※ 본문의 섹션 구분과 제목은 실제 전시 구성과는 다릅니다.
 


Section 1.
불안하고 자유로운, 도시의 거리


첫 번째로 관객을 맞는 건 의외로 패션 사진이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구성한 예술 사진이나 위엄 있는 왕실 사진도 아닌, 도시의 삶과 숨결을 그대로 담은 흑백 사진들이었다. 군중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도시의 전차와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흑백 사진에 담겼다. 그러나 평범한 도시 풍경도 파킨슨의 사진기에 담기자 조금 달라졌다.

그는 평범한 풍경을 기울이고, 늘이고, 과장했다. 심하게 흔들리거나 초점이 나간 사진도 있었다. 평범한 사진들에 가미된 이 약간의 왜곡이 마치 노만 파킨슨의 사인처럼 사진들에 새겨져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법으로부터 과감히 탈선하는, 파킨슨만의 자유로움을 흠뻑 적신 사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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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2.
패션 잡지, 예술 작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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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섹션에서는 패션 잡지들과 협업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곳에 소개된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퀸』(Queen) 등은 당시의 패션과 취향과 유행을 선도하는 잡지였으며, 따라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들의 포트폴리오이기도 했다. 파킨슨은 1935년에 열었던 개인전을 통해 잡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외주 의뢰를 받으며 패션 사진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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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은 실내 스튜디오에서의 정적인 촬영 관습을 벗어나 파격적인 야외 촬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탈선과 반항을 넘어선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그래서 그의 야외촬영 사진들은 단지 인위적이지 않다, 자연스럽다,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실험과 도전의 흔적들도 품고 있었다. 제한된 스튜디오를 벗어나 무한한 도구와 영감이 널린 바깥세상으로 나간 이 예술가가 얼마나 신나게,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업했을지가 선연히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그는 모델들을 동상 위에 세우고, 타조 위에 올라타게 하고, 수영복을 입히고, 비행기 프로펠러 앞을 걸어가게 했다.

사진 속의 그들은 더 이상 경직된 자세로 서서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니라 달리거나, 춤을 추거나, 편안한 자세로 누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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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종전 이후 항공 여행 수요가 급증하던 세상의 흐름을 예민하게 파악한 파킨슨은, 사진작가 최초로 해외 현지 촬영을 시도한 사람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는 이국적이고 낯선 외래 문명을 과감히 자신의 작품 안으로 들였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강렬한 힘이 담기는가 하면, 인도의 석탑과 카약이 모델의 실크 의상과 어우러진다. 커다란 비행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여행 직전의 떨림으로 가득했다. 그의 작품 자체가 하나의 여행 화보인 양, 낯선 색채와 이국적인 무늬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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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3.
존중을 담되 그들도 한 사람임을 잊지 않았다 : 왕가과 셀러브리티


전시의 끝을 장식한 건 영국 왕가의 사람들과 여러 유명인들의 초상 사진이었다. 영국 왕실의 공식 사진가로 활동했던 파킨슨의 포트폴리오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함과 품위도 있었고, 열여덟 살과 스물두 살 앤 공주의 빛나는 젊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틀즈, 오드리 헵번, 캘빈 클라인, 비비안 리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의 모습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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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수많은 카메라에 담겼을 그들의 모습이, 그러나 파킨슨의 렌즈 속에서는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유명인’의 사진이 아니라, 유명인을 모델로 한 또 하나의 예술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유명인, 심지어 여왕을 찍으면서도 그 어떤 권위나 위화감에 눌리지 않고 원하는 방향대로 사진을 찍었던 그는 진정 거장이었다.

익살맞고 재치 있게, 편안하지만 매너를 지키는. 유머와 예의를 겸비했던 파킨슨의 작업 방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섹션이었다.


우리 시대의 왕가도
그저 한 가문일 뿐이다,
왕실이란 부분을 잊으면.
물론, 존중을 담은 거리를 유지한다.

- Norman Parkinson





도저히 6, 70년 전 사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나의 숨을 멎게 했던 그 사진은 무려 1930년대에 찍혔다. 그의 사진은 여전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또한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니 우아했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품격을 지키고 있었으며,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전시는 그의 스타일이 왜 영원한지를 알려주었다. 그의 사진은 작품이요, 예술이자, 변치 않는 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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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 전시 설명문이 좋았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많은 부분 참고했다.
2. 또한 설명문이 쓰여있던 판도 좋았다. 파킨슨이 좋아했다던 레드 버건디 컬러가 프레임과 활자에 쓰였고, 그 투명한 판 뒤로 하얀 실크 커튼을 둘러 우아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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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련 영상 자료를 틀어주는 화면 또한 아주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영상의 내용도 충실했다.
4. 멜론 VIP 회원이면 전시 소도록을 50% 할인가(6000원)에 살 수 있다. 멜론 회원이라 사려 했으나 아쉽게도 VIP 등급이 아니어서 마음에만 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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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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