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10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
글 입력 2018.11.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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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10



선정 및 정보 제공 - 출판저널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는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를 통해 책의 기획 의도와 제작 후일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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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도양이 도감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물의 여행

미술 시간 마술 시간

바로 너야

발걸음




딩동~ 고양이 도감




 

자연 생명체와의 소중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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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스마트폰 대신, 주변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스스로 관찰할 수 있게 이끌어주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딩동~ 도감>! 아이들의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 기발하고 참신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지금, 지극히 평면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책이 과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 고민과 염려는 잠시 옆으로 밀어두기로 했다. 우리 자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애정과 관심으로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관련 분야 전공 저자들의 생생한 사진들을 모아 엮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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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를 배경으로 만나는 곤충에서 출발한 <딩동~ 도감>은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까지 어느덧 1년을 달려왔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철저하게 개량해 왔다. 개는 체구가 작은 품종의 개량이라는 과정을 겪었지만, 체구가 작은 고양이는 ‘더욱 독특한 생김새’를 지닌 유전적으로 불완전한 쪽으로 개량되어 온 것이다.

도감을 만들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딩동~ 고양이 도감》을 작업할 때는 마음 한켠이 좀 착잡했다. 예쁘고, 앙증맞고, 독특한 생김새에 털 길이도 다양한 고양이들이 인간의 간섭으로 생겨난 결과물이라니. 문득 고양이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으로 사람들에게 치도곤 당하면서 힘겹게 길에서 떠도는 우리 토종 고양이들을 생각하니, 도감 속의 고양이들이 부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 책은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관심 있어 하고 좋아한다. 느낌이 괜찮다. 아이와 함께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을 살펴보면서 그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가다가 만나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안녕~ 야옹아!” 하며 인사 나누는 것도 동물에 관심을 갖는 하나의 방법이다. 사람의 장난감인 애완동물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반려동물로 바뀐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정서적으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는 반려동물, 하지만 더불어 사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제자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과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생명체를 소중하게 여길 테니까. 아이 스스로 궁금하면 펼쳐보고, 또 보고 싶으면 펼쳐보면서 자연의 생명체들이 아이의 생각 상자에 차곡차곡 쌓이게 하는 데에 평면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책보다 좋은 만남이 또 어디 있을까.


경현주 지성사 주간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한여름 더위를 날리는 무서운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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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시 그림책’으로 기획한 의도가 있다. 백석 시인의 삶에는 동심이 어려 있다. 일제 강점기 엘리트 지식인으로 지위와 명예를 쫒지 않고 늘 가난하게 살면서 방랑하는 삶을 살며 우리말 사랑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그 얼이 시로 꽃 피었다. 시심의 바탕은 어린아이처럼 깨끗하고 호기심 많은 마음, 동심이다. 그래서 백석 시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보면 좋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는 겨레의 토속신앙에 나오는 친근한 귀신들을 어린이의 시각과 목소리로 노래한 동심 어린 시이다. 시 구절이 노랫말처럼 장단이 흐르고, 한 구절 한 구절 마다 새로운 장면이 펼쳐져 그림책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구절구절마다 나타나는 마을과 집을 지켜주는 민간토속신(귀신)들을 만나는 재미는 오싹하는 즐거움을 준다. 우리 민족은 마을이나 집안 곳곳을 지켜주는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마을과 집의 수호신인 샘이다. 마침 이 시를 좋아하는 서선미 화가를 만나 시 그림책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림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이가 만나는 귀신에 긴장과 오싹하는 무서움이 일지만, 익살스러운 귀신들의 모습에 오히려 웃음이 피어난다. 신화나 전설에 나올 법한 무서운 귀신들이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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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자라면서 집안 곳곳에서 마을 여기저기에서 귀신들을 만난다. 방안에서 성주님, 토방에서 디운귀신, 부엌에서 조앙님, 고방에서 데석님, 굴뚝에서 굴대장군, 뒤울안에서 털능귀신 등을 집안 곳곳에서, 마을 여기저기에서 만난다. 아이는 무서워 벌벌 떨며 도망 다니지만, 이야기의 속내는 이런 귀신들이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주기에 아이가 탈 없이 성장하고,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사람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울림으로 들린다. 백석 시인의 동심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시에 나오는 어려운 평안북도 토막이 사투리와 옛말들, 그리고 여러 귀신 이름은 부록에 따로 ‘풀이말’을 달았다. 일부 백석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것을 보면, 현재 맞춤법으로 고쳐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시인 백석에 대한 모독이고 시의 맛을 줄인다. 이 책은 시의 원문을 본문에 싣고 부록에서 ‘풀이말’을 달아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화가의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를 그린 이야기’ 꼭지를 두어 어린이 독자가 화가가 어릴적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느낌으로 그렸는지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그림책을 본 서정오 작가가 참 좋은 시 그림책을 냈다고 추천사를 써 주셨다. 이 그림책이 주는 고갱이를 잘 짚어 주셨다.“이 구수하고 재미난 시가 서선미 화가의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그림과 만나 읽는 맛, 보는 맛을 몇 곱절 늘려 줍니다. 시에 나타난 예쁜 우리말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볼거리 풍성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겨레의 정서로 가득 찬 행복한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낙묵 고인돌 편집자




물의 여행



 

물의 힘, 그 유연함과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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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이 녹아내리는 찰나,
잎사귀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공원을 유유히 흐르는 그때……
경이로운 생명력을 품고 세상 모든 것들의 시작이 되어 주는 물,
끊이지 않고 돌며 자연과 사람 모두를 품어 안아 끝내 어디로 도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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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행》은 종이 질감의 입체성과 색지의 특별한 색감으로 순환하는 물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더없이 간결하게 시적으로 보여 주는 서정적인 그림책이다.

땅속에서 깨어난 물방울은 하늘로 올라가 몽글몽글 맺히고,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가 되었다가 수평으로 잔잔히 흐르는 바다로 변한다. 바람에 낙엽이 밀려가는 계절이 되면 찬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가 눈송이가 되어 빙글빙글 춤을 춘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물. 송혜승 작가는 때론 엄격한 밑그림에 따라, 때론 머릿속의 직관적인 재단에 따라 색지를 오려 붙이며 물의 다채로운 형태를 표현했다.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느끼며 손끝으로 자연을 만져 본다.”는 평소 철학은 세심하게 연출된 대칭과 여백의 계산 속에 녹아들어 있다. ‘채워진 면’과 ‘비워진 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양면적인 경계는 사물의 이면과, 상반되는 특성이 한 계절에 내포되어 공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 구도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그 양면적인 감정이 번갈아 찾아오는 우리 삶과도 닮아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오늘’을 이루는 순간순간들에 대한 ‘경이와 감사’를 함께 음미해 보라고 작가는 속삭인다.

그동안 작가는 미술 워크샵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다양한 활동을 해 왔는데, 《물의 여행》에도 특별한 색종이 페이지를 본문 뒤에 붙였다. 색종이를 활용해 책 속 장면을 따라하거나, 마음껏 자르고 붙이며 나만의 그림을 만드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되지 않을까?

‘자연’과 ‘우리’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물.

이 계절, 물 한 방울에 깃든 경이와 포용력을 생각하며 내 손 위로 떨어지는 물의 힘을 느껴 보면 좋겠다.


박혜리 논장 편집부


도서 상세 정보 보기




미술 시간, 마술 시간



 

기발한 상상이 만들어 낸 특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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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서 주관하는 <한여름밤의 작은 극장> 공연 잔치가 있었다. 20편이 넘는 작품이 13개의 공연장에서 3일 동안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무대에 올려졌다. 당시 7살이었던 딸아이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10편 가량의 작은 극을 관람했는데, 그때 1인극 <미술시간 마술시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관람한 공연은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미술시간 마술시간>은 캐릭터도, 이야기의 흐름과 구성도 그림책으로 만들면 ‘딱’ 좋을 작품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명함을 건넸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위대한 건축가 무무》를 쓰고 그린 김리라 작가님이었다. <미술시간 마술시간> 역시 그림책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우리는 <미술시간 마술시간>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버려진 상자로 만든 네모 캐릭터는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가 있었고, 미술 시간에 주스를 만들어 마시며 미술 시간이 마술 시간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창의적이었다. 한 권의 이야기로 끝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시리즈로 만들어 보자는 쪽으로 협의를 했고, 그렇게 상자별531이라는 상자별 은하의 ‘학교’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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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주에 수백만 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상자별 은하가 있다는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상자별 은하에는 종이로 만든 네모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그중 상자별531은 네모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는 네모들의 학교로, 《미술 시간 마술 시간》은 상자별 학교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처음 공연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와 출간된 그림책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또한 이 책이 출간된 후에 학교와 도서관에서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있는 작가님은 공연장의 환경이나 공연을 관람하는 대상에 따라 내용을 조금씩 바꿔 가며 작품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주스 가게 놀이를 했다거나, 네모 캐릭터 및 변신 캐릭터를 만들었 다거나, 상자로 교실이나 집을 만들었다는 등 다양한 책놀이 활동으로 이어지는 독자들의 후기를 접할 수 있었다.

좋은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대상에 따라 매체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필요하지만, 단단한 이야기는 공연으로 그림책으로 다양한 체험 활동과 전시로 또한 애니메이션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이 책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상자 캐릭터 네모들의 활약을 기다린다.


최현정 한솔수북 편집자



바로 너야



 

가슴으로 읽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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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갤러리’로 칭해지던 그림책이 근래에는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보는 책’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바로 너야》야말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또 따로 각자가 몰입하여 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출간된 지 한 달, 그 동안 지켜본 독자들의 다채로운 반응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여섯 살 꼬마아이는 음악과 함께 이 책을 보고 난 뒤에 “엄마, 이 꽃이 바로 나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라고 한 반면,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 한 분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하셨고요. 또 사회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친 직장인 독자 분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 또한 존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어 갈등을 풀 수 있었다고 했으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독자 분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그림책이라, 결혼 선물로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또 서점을 운영하시는 연세가 지긋한 분으로부터는 임신한 부부에게 선물을 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나아가 심야책방 행사에서 열 명 정도의 성인 독자 분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바로 너야》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펼쳐보았을 땐 눈물을 훔치며 책과 자기 자신에 몰입하는 모습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책을 만들며 기획의도를 가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독자 분들이 갖게 되는 책에 대한 느낌은 애초에 가졌던 기획의도의 그물망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님을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책 중 하나가 바로 《바로 너야》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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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편집자의 기획의도를 이야기해보자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도,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도, 또 사람이 아닌 생명들 또한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과 힘찬 에너지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레지나 작가는 우주 그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작은 별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요. 특별히 이 책에는 작곡가 김현이 만든 같은 제목의 음악이 담겨 있어, 마치 텍스트의 역할을 대신하는 듯 감상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텍스트가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만 있고 전체적으로 글이 없는 그림책이라 어쩌면 어렵게 보일 수도 있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다면 여섯 살 아이의 리뷰처럼 가슴 뭉클하게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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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를 통해 《바로 너야》 음악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발걸음



 

발의 표정이 보여 주는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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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서전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독자분이 이 책을 집어서 넘겨보자, 어느새 옆에서 다른 분도 슬며시 끼어 함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이내 마주 보고 미소 짓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이 책 쓴 작가는 분명히 딸을 키우는 분이야.” 그리고 나에게 정답을 찾는 듯 “맞죠?” 라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하고 더 설명을 해 드리려 했는데, 곧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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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영 작가에게 딸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이 책을 기획할 때는 아이가 없었다. 이 책의 시작은 아이의 발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발이었다. 지방에서 동화책을 배우러 다니던 어느 날, 바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본 자신의 발을 보고 “오늘도 열심히 뛰었어.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발을 사진기에 담은 작가는 그 사진에서 발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발의 표정으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여 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아이가 없었던 작가는 아이가 있는 언니,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의 발을 엄청 많이 찍었다. 한번은 유치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발을 찍고 싶어서 무작정 유치원에 찾아갔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작가의 열정 하나하나가 모여 마치 딸을 가진 아이의 엄마가 오랜 경험을 기록한 것 같은 생생한 장면을 연출해 냈다. 그리고 색연필을 여러 번 곱게 쌓아 하나하나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 낸 장면들은 놀랍게도 작가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모습이 되었다. 1년 반 정도 걸렸던 작업이 마무리되고 《발걸음》이 출간될 때쯤 작가의 배 속에는 딸이 있었다. 작가에게 《발걸음》은 엄마 연습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지금은 본인이 그린 그림의 장면들을 엄마로서 다 겪고 있다고 한다.

《발걸음》의 장면 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발걸음을 바라보는 따뜻한 엄마의 눈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발의 표정을 통해 아이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처럼 나의 발을 한 번 그려보자. 지금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발견하고 나아가 나도 잊고 지내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구경 고래뱃속 대표

 

[윤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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