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불편한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연극 '기묘여행' 프리뷰
글 입력 2018.11.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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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신문의 사회면에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그런 기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삽시간에 여기저기로 퍼져 나간다. 물론특정 사건이 기사를 통해 공론화되고 널리 알려짐으로써 얻는 순기능도 있다. 개개인의 분노가 모이면 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사건사고를 그저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무료한 일상을 깨우는 자극제이다. 그토록 많은 살인사건이 소설이나 영화의 중심 사건이 되는 까닭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건을 잔혹하게 묘사한 기사일수록 조회 수가 높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피해자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피해자가 되었는지 저열한 호기심을 내비친다. 그러면서도 '역시 사형제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말한다.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 역시 이처럼 제 3자에 의해 한없이 가볍게 이루어진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한 사람의 죽음은 이렇게 쉽게 소비된다.

사건 밖 제3자인 우리가 쉽게 잊는 것은 우리가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사건 속에는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가족이다. 극단 산수유의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이자 열 두 번째 정기 공연인 연극 '기묘여행'은 자극적인 사건을 소재 삼는 수많은 이야기와 달리 사건이 지나간 후 남겨진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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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3년 전, 열다섯 살이었던 카오루는 살해당했다. 카오루를 살해한 아쓰시는 사형을 언도받고 항소를 포기하려 한다. 카오루의 아버지는 딸을 죽인 살해범을 직접 죽이기 위해 살인도구를 가득 담은 가방을 준비한다. 아츠시의 부모는 아들이 항소를 해서 사형만은 면하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은 아쓰시를 면회하기 위해 1박 2일간의 기묘한 여정을 함께 한다.


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로 만난 네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함께 여행하는 연극 '기묘여행'은 예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화두를 던진다. 그중 하나는 사형제도이다. 강력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쉽게 사형제도가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형제도 자체는 범죄율 변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여러 국가의 통계자료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형제도를 부활시킨다면 사형 집행을 행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사형을 집행하는 게 타당한가. 감정적으로 접근하자면 망설이지 않을 문제를 연극은 더욱 냉정하게 짚어본다.

그렇다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이야기 속 살인사건은 그 원인과 형태가 불분명하므로, 살인사건의 당사자들은 연극에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을 둘러싼 가족들이 연극의 중심이다. 가해자에 대한 어쭙잖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살인을 겪은 이들이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뿐이라고, 연극은 말한다. 더불어 연극은 극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을 내세워 두 부부가 겪을 일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살인과 삶을 보여주며 '견디는 삶'이 아닌 '살아 있는 삶'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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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기묘여행'의 시놉시스를 읽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읽지는 못했지만 1999년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사건 직후 자살한 아들을 떠올리며 인간의 근원적이면서도 불가해한 폭력성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썼다는 소개 글을 봤다.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이고 책의 저자가 20여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아득해졌다.

가해자를 악마로 단정 짓고 그와 함께 해온 가족, 친구들까지 그와 다를 것 없는 무리로 치부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게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예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가해자의 가족을 조명하는 건 가해자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핑곗거리를 주거나 동정여론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삶의 많은 부분은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역시 존재하면 안될 것 같던, 존재해도 가해자처럼 악할 것만 같던 가해자의 어머니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털어놓았기에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딸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어느날 갑자기 자식이 살인자가 된 사람들의 슬픔도 명확히 구분될 수 없는 경계에 함께 걸쳐 있을 것이다. 전자는 숭고하고 후자는 불순한 것일까?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이렇듯 불분명한 것들은 불편함을 안겨주지만 그 불편함은 사고가 확장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기묘여행'도 사람이라는 존재를 더 깊게 이해하고 삶을 통찰할 기회를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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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나서,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아무리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라지만 설장 상 엄연히 한 개인이 일방적인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가해자의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이 무대에서 설득력있게 표현될 수 있을지, 혹시 세상의 모든 피해자에게 실례가 되는 일은 아닐지 기우가 생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 사람들에게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범인 역시 사건 직후 자살을 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항소를 포기했다고는 해도 열 다섯 살의 여학생을 살해한 사람을 살리려는 부모의 마음이 충분히 와닿을 수 있을까. '기묘여행'은 확실히 불편한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할 것이다. 연극이 의도한 바가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될지 여부는 어떻게 연출하고 어떤 결말을 맺는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연극을 보고 난 후 더 많이 이야기해 보고 싶다.





기묘여행
- 극단 산수유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 -


일자 : 2018.12.06(목) ~ 12.30(일)

시간
화-금 오후 8시
주말, 공휴일 오후 4시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동양예술극장 3관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기획
극단 산수유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5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문의
극단 산수유
010-33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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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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