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팽의 서정, 그 진수를 들려드립니다

공연 <샤를 리샤르-아믈랭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글 입력 2018.1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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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Chopin. 훌륭한 제목이었다. 쇼팽의 녹턴에서 발라드까지. 쇼팽이라는 거장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쇼팽 콩쿠르 수상자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샤를 리샤르-아믈랭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이 지난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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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리샤르-아믈랭 피아노 리사이틀


쇼팽 F. Chopin

녹턴 제20번 c#단조, Op. posth.
Nocturne No. 20 in c# minor, Op. posth.

4개의 즉흥곡
Four Impromptus
제1번 A♭장조, 작품번호 29  No. 1 in A♭ Major opus 29
제2번 F#장조, 작품번호 36   No. 2 in F# Major, opus 36
제3번 G♭장조, 작품번호 51  No. 3 in G♭ Major, opus 51
제4번 c#단조 '환상 즉흥곡'  No. 4 in c# minor "Fantaisie-Impromptu"

영웅 폴로네이즈 A♭장조, 작품번호 53
Heroic Polonaise in A♭Major opus 53

Intermission

4개의 발라드 Four Ballades
제1번 g단조, 작품번호 23  No. 1 in g minor opus 23
제2번 F장조, 작품번호 38  No. 2 in F Major opus 38
제3번 A♭장조, 작품번호 47  No. 3 in A♭Major opus 47
제4번 f단조, 작품번호 52  No. 4 in f minor opus 52


공연의 문을 연 건 녹턴 20번이었다. 탁월한 오프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짙은 서정성과 깊은 애수가 어려 있지만, 일정하게 반복되는 왼손 멜로디와 틀에 잡인 박자감이 있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녹턴 20번만의 절제된 감정과 연주자만의 섬세함이 어울려 차분히 그리고 서서히 공연에 빠져들게 하는 곡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즉흥곡에서는 본격적으로 쇼팽의 음악세계가 펼쳐졌다. 경쾌하고 조금은 조급하게 시작된 1번부터, 장중하지만 어딘가 기이함을 품고 있는 2번, 환상적이고 흐르는 듯한 화음을 자랑하는 3번을 거쳐 우리에게 그토록 익숙한 환상 즉흥곡까지. 즉흥곡에 담긴 쇼팽의 자유분방함과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즉흥 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마지막 환상 즉흥곡에서 나는 익숙한 낯설음을 맛보게 되었다. 환상 즉흥곡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들어왔고, 그것도 수없이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왔다. 음원이나 유튜브로 듣는 프로 연주가의 버전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아마추어 연주가들의 버전, 중학교 때 꽤나 그럴듯하게 치던 같은 반 친구의 버전과 고등학교 때 어설픈 실력으로 화려한 음을 곧잘 뭉게버리던 어떤 학생의 버전까지. 아마 학창시절 주변에 피아노 좀 치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여러분에게도 이 곡이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콘서트홀에서 듣는 피아니스트의 환상 즉흥곡은 전혀 달랐다. 그동안 들었던 것과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믈랭의 환상 즉흥곡은 보다 섬세하고, 분명했다. 여린 부분은 탁월하게 세심했고, 화려한 기교에서는 음 하나 하나가 살아있었다. 마치 곡 전체가 살아 꿈틀대는 생명인 양 커다란 역동과 흐름이 느껴졌다. 강물, 선율이라는 강물의 격렬한 물살을 떠올리게 했다.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다시 듣지 못할 연주였다.

하지만 환상 즉흥곡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건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웅 폴로네이즈였다. 공연 전 미리 프로그램 곡들을 들어볼 때부터 매력적인 곡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번 콘서트를 통해 완전히 이 곡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영웅다운 기개와 호탕함, 그에 뒤지지 않는 극단적인 기교적 화려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엮여 하나의 영웅 서사시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까지. 매력적이고 훌륭한 것을 넘어 감히 위대한 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1부가 끝나고 나서도,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도,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내 귓가를 끊임없이 맴도는 단 하나의 곡이다.


“찬사를 나열할 필요조차 없는 작품”
- Arthur Hedley

“폴로네이즈 역사상 가장 완벽한 작품”
- Jachimecki


이어지는 2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쇼팽의 발라드로 채워졌다. 발라드라는 단어가 지금은 사랑과 이별 등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대중가요의 장르를 의미하지만, 원래 발라드란 자유로운 서사시를 표현해내는 악곡의 한 형태라고 한다. 특히 이 쇼팽 발라드는 많은 클래식 피아노 애호가들이 열렬히 찬미하고 사랑하는 곡이라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여러 친구들에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를 방증하듯, 발라드는 이번 프로그램 북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된 곡이었다.

40여 분에 달하는 시간동안 네 개의 발라드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쏟아냈다. 밝음, 어두움, 격정, 혼돈, 진정, 침체 등이 어우러졌다. 피아니스트 아믈랭만의 섬세함과 서정성이 더욱 돋보이는 곡이기도 했다. 다만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은 이 곡을 조금 더 들어보고 이 곡과 더 친해진 후에 공연에 갔다면 더 좋았을 거란 것이다. 아직 내게는 어려운 곡이지만, 이번 공연을 계기로 쇼팽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이 곡과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을 작은 기쁨으로 삼았다.





예술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한 예술가의 작품과 개성을 접하는 일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콘서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작곡가라는 쇼팽의 음악 세계와 만나는 자리였다. 실로 넓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그곳에서 들었던 오직 쇼팽만의 세계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찾아 나서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포스터_2018 피아니스트 시리즈.jpg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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