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을 사랑하다 [영화]

<언어의 정원>을 보고
글 입력 2018.1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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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와준다면

그대가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으련만”

 

- 언어의 정원 中 -



페르디낭 드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가 ‘랑그’와 ‘파롤’을 나누어 정의한 것처럼, 언어는 형체와 단어가 결합하며 실질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언어는 특정한 형체 없이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연히 그렇게 불리게 된 자의성을 토대로 답습되며 체계를 구축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느낌으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을 종종 겪는다. ‘썸’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썸’이라는 현상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를 보다 명확하게 알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어의 부재로 비롯된 불확실성은 어떠한 대상을 ‘인지’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어딘가 투박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정열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또는 알콩달콩하다고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나름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영화가 그려 낸 사랑은 밋밋하면서도 순박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그 사이에서 학생인 ‘타카오’와 선생님인 ‘유키노’는 서로에 대하여 알아간다. 그런 감정을 서로가 알면서도, 닿지 않을 듯 닿을 듯한 여지를 남겨 놓는 그들의 사랑은 무어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은은한 형태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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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둘의 사랑은 ‘비’라는 특정한 날씨에만 만남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가 내릴 때, 그들은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 하나만으로 신주쿠 공원으로 향한다. 제대로 된 연락 교환도 없고, 어떠한 약속도 없이 말이다. 날씨는 예측하더라도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둘의 만남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모습이 한층 강화된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서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모습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사랑’과는 다른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타카오’가 선뜻 ‘유키노’에게 좋아한다는 내심을 밝히며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질 요소는 있었다. 이를 ‘유키노’는 간접적으로 거절하였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절망적이었던 삶을 덕분에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며 호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후 영화에서는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떠한 상태로도 단정을 짓지 않는다. 다만, 먼 곳으로 전근을 간 ‘유키노’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언젠가 꼭 찾아가겠다는 ‘타카오’의 독백만 잔잔히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걸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였는데도 둘의 ‘사랑’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사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정의되지 않고 존재하기만 하는 형태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두 주인공이 처한 환경과 그에 대한 생각은 이들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실존하지만 불완전하다. 타카오는 최고의 구두장이가 되고 싶으면서도, 아직 능력이나 기술이 미흡하다. 유키노는 학교에서 학생들로 받는 따돌림으로 인해, 삶 자체에 대한 생각이 끊기지 않는다. 다음에 적을 유키노의 대사는 그러한 생각을 더욱 잘 나타낸다.

 


“27살의 나는 15살의 나보다

조금도 현명하지 못해.

나만이 평생 같은 곳에 머물러 있어.”


- 언어의 정원 中 -


 

자신에 대한 상황을 ‘인지’하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게 서툰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느끼면서도,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비롯될 일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타카오가 만드는 ‘걷는’ 수단인 신발이 유키노에게는 ‘말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명확해진다. 타카오를 만나면서 조금씩 ‘걷는(말하는)’ 법을 배운 유키노가 마지막에 어떻게든나마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사실은 서툴더라도 표현을 하면서 그나마 명확해진 두 사이의 관계를 잘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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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표현이 지속해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지가 있다. 다만, 조금이라도 표현되기 시작한 형태는 더욱더 그 대상을 잘 이해하게 돕는다. 감독이 제목을 『언어의 정원』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와 비슷한 의도가 조금은 있다고 추측한다. 사랑, 그 이전의 사랑을 특정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 담아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사랑’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자연스레 느끼고 있을 법한 사랑이 막상 표현될 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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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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