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답을 찾는 과정의 시작

나의 괴로움과 외로움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
글 입력 2018.11.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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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트리거"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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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Trigger)는 총의 방아쇠를 뜻하는 단어다.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의 작용으로 총알이 발사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리거란, 어떤 특정한 동작에 반응해서 자동으로 필요한 동작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조건 반사라고 할 수 있다. '파블로프의 개'의 훈련에서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쳤더니, 먹이를 주지 않고 종만 쳤을 때도 개가 침을 흘린다는 실험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개념이다. 일종의 훈련된 상태이며, 벗어나기 힘든 습관이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트리거스러운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시험을 망한 날, 술을 토하기 직전까지 진탕 퍼마신다든지, 엄청난 고열량의 기름진 야식을 시켜먹는다든지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일종의 트리거라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친다고, 또는 망했다고 다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표현이다. 보상 행위에 해당한다. 어떤 상황 또는 행동이 있어지고 나서 주로 부정적인 보상 행위가 이어질 때 그 상황을 트리거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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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을 전공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대학생이다. 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따로 밥 시간을 내기 힘들어 작업을 하면서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많다. 시간을 아무리 투자한다고 해서 정답이 나오거나 자신이 만족할만한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삼사일씩 밤을 새는 일이 일상이다. 수업 시간도 한번에 1시부터 6시에서 7시까지로 쉬는 시간이 한두번 주어지는데 그마저 물 잠깐 마시고 화장실 갔다오면 끝날 정도로 빠듯하다. 물론 하루에 그 수업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자취를 하지 않는 친구 중에는 일요일에 학교를 와서 수요일에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학교를 와서 금요일에 집에 가는 친구도 있다. 설계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과자로 밥을 대신하거나 다 같이 짜장면이나 피자, 치킨 같은 배달음식을 한두 번씩 시켜먹는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단백질 브라우니'다. 밀가루나 쌀가루가 없이 탄수화물이 25g 정도, 단백질이 25g 정도 들어있는 한 끼 식사대용의 단백질 가공식품이다. 300k㎈가 되지 않아서 체중조절을 하는 사람들이 간식으로 먹기도 하는데 나는 한 끼 식사로 대신한다. 나의 경우 보통 오전 10시에 밥을 먹고, 오후 3시쯤에 점심을 먹는데, 주로 수업 중간에 10분 쉬는 시간에 허겁지겁 먹게 되어 식사 대신 단백질 브라우니로 대체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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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보통 점심은 12시쯤이니 내가 되게 자주 먹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수업 쉬는 시간마다 고구마 100g과 삶은 달걀 2개를 먹거나, 단백질 브라우니를 먹거나 그랬었는데 어느 날 교수님께서 "넌 되게 먹을 걸 좋아하는구나. 볼 때마다 뭘 먹고 있네"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은 웃어넘겼다. 그리고 수업 중간에 학교 근처에 있는 음식점 이야기가 나왔는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넌 많이 먹으니까 여기도 가봤겠지?"라고 말씀을 하셨다.


웃기려고 한 말일까? 지적하려고 한 말일까? 별로 뚱뚱하지도 않은 사람이 많이 먹으니까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을 거로 생각하신 걸까? 아니, 그다지 아무 생각 없으셨을지도 몰라. 난 분명 다이어트 식품을 먹는데 왜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는 남들 앞에서 먹지 말아야겠다.


누군가 내가 먹는 모습을 언급하거나 지적할 때면 어김없이 드는 수치심에 순식간에 '거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게 나의 수치심을 극복하는 보상 수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실에서 점심을 급하게 먹는다. 문을 닫은 샤워실과 화장실 안에서 맛도 모르고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먹는 식사는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치심을 안겨준다. 난 그저, 남들 먹는 한 끼 밥이든 김밥이든 삼각김밥이든, 짜장면이든 그런 한 끼를 정해진 내 시간에 맞게 먹는 것일 뿐인데. 그게 많이 먹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과 그냥 그 자체를 지적당하는 게 싫어서 더욱더 수치스러운 선택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학교에 있을 때는 먹지 않는다. 그냥 배고픈 채로 있는 게 더 낫다. 그 정도로 누가 내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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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먹는 행위는 잠을 자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음식을 통해서 몸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알 듯이 식사를 통해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 무기질과 비타민 등의 영양성분을 몸에 공급한다. 하지만 그 누가, 매끼 완벽한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사를 하겠는가. 누가 늘 배고파서만 밥을 먹겠는가. 우스갯소리로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있다. 때로는 탄수화물만 먹는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입맛이 없을 때는 라떼 한 잔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제3회 아트인사이트에 가장 쓰고 싶었던 이야기인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에서 밥을 먹고 싶었다고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외에도 14기 에디터 활동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썼던 이야기가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 나는 이제 8개월째 섭식장애를 가진, 어떻게 보면 섭식장애 새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웬만한 식품영양학과의 지식보다 더 많이 음식과 호르몬 대사에 능통하며, 그에 못지않게 운동에 대한 지식도 엄청나다. 어떤 음식이 우리의 혈당을 얼마만큼 급속하게 올리는지를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달달 외우고 있고, 이젠 내가 왜 섭식장애를 가졌는지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만큼 문제점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부러웠다. 어떤 하나의 음식에 애정을 갖고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한 기억을 엿볼 수 있어서 나 역시도 행복했다. 그게 일반 사람들이 음식에 가지는 의미이자, 평범한 사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아트인사이트 14기 자기소개서를 쓸 때, 누군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보며 커플에게는 자신과 같은 밥일지라도 의미가 달랐다고 하는 글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음식을 바라보고, 어떻게 음식을 먹는지를 아트인사이트를 보며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가 쓰려는 글은 섭식장애 극복기도 아니며, 섭식장애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글도 아니다. 그저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과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이며 누구도 나의 섭식장애 이야기로 타인의 섭식장애를 판단하고 진단하거나 조언해서는 안 된다. 같은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병명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다른 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나 혼자만의 이야기일 뿐.

그리고 나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 완성도 있는 글은 아니리라는 것을 미리 말한다. 나의 글쓰기는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고 거칠고, 툭툭 갑자기 생각나는 듯이 던지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완벽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함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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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들어 어느 정도 정상 사람 같아졌다고 느낄 만큼 음식에 대한 집착도 거의 없었고, 상담을 시작하며 완치되어 간다고 희망이 보여 안심을 했었기에 에세이로 쓰기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나의 섭식장애 이야기>였다. 섭식장애의 늪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했지만 아직 나는 제자리걸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후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열어도 되는지 자신감이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는 문제에 직접 부딪히며 답을 찾는 사람이기에, 이번에도 분명 나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의 섭식장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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