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Episode 7.

글을 쓴다는 데에
글 입력 2018.11.0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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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조심스럽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 그럴 수 있길 희망하며 꾸준함의 미덕을 단련해왔다.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일은 그게 뭐든 어려웠다. 하루에 십오 분씩 운동하기, 삼십 번씩 씹고 넘기기와 같은 사소한 생활 습관들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매일 읽고 쓰는 사람이 되는 건 백 번 천 번 더 어려웠다. 그건 단지 하기 싫고 귀찮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가 팔 할을 차지하더라도.) 어떤 걸 읽고 써야 할지 몰라서 그랬고 어떻게 읽고 써야 할지 몰라서도 그랬다. 더군다나 쓰기에 관해서라면 조심스러웠고 무서웠다. 글을 쓰는 일로 죄를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이 죄가 될 수 있다는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 안다는 듯이 시건방을 떠는 글, 젠체하는 글, 당연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의 글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글들은 진실보다는 거짓과 가장에 가까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꼭 이미 다 안다는 듯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말았다. 사려 깊고 다정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보다 나를 생각하는 일이 훨 쉬웠다.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싶었지만 수많은 단어들 중 내가 아는 단어는 형편 없이 적었다. 윤리적인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일단 윤리적인 게 무언지부터 헤아리다 보면 글을 쓰는 일은 아득해졌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어디에 내놓기가 창피해서 노트북과 일기장에 숨겨둔 글들이 꽤 됐다. 이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으면 어찌나 창피한지 모두 다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나는 글 같은 걸 써본 적도 없고 쓸 계획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좋은 글을 읽으면 그 글과 글의 주인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지만 마음속 한편으로 질투와 동경이 애매하게 뒤섞였고, 자연스레 자괴감이 밀려왔다. 꾸준히 갈고 닦아 연마한 글들 앞에서는 너무도 부러워서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결심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서 뭔가 써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일까. 모른 체 발을 빼고 싶던 마음,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던 결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좋은 글을 읽는 일을 통해 무효 처리가 되곤 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걸 모른 채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랑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좋은 이야기에 쉽게 매혹됐고 그것에 중요한 것들을 걸어왔다. 어쩔 도리 없이 좋은 이야기를 갈망했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데에까지 뻗친 생각은 불가항력의 것이었다. 이야기를 먹으며 자란 아이, 이야기를 들으며 울음을 뚝 그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란 필연적으로, 운명 지어 있는 것일지 몰랐다. 여전히 나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


어떤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하게 했지만 다시 시작하게도 했던 글 때문에 나는 뾰족한 수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난 몇 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찾는다. 어떤 사람,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위해서 좋은 글이 쓰이고 있다는 생각, 그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어느 지점에 내가 서 있다는 생각. 나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 나의 이야기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직 비어있다는 생각. 모든 게 조심스러워서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썼다는 데에,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에 선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써버린 글은 무섭고 부끄럽다. 그래도 글을 써버렸다. 글을 쓴다는 데에, 그 글이 만들어지는 곳에 신발을 벗어둘 수 있다면.



* Jian Chongmin의 그림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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