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 그만 '패닉몬스터'를 버리세요 [기타]

글 입력 2018.11.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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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찮게 유튜브 TED 채널에서 “미루는 사람의 마음 속”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장황하게 (내가 여태 자주 봐왔던 수많은 자기 계발서처럼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성공하기 위한 10가지 방법, 부지런해지기 위한 5가지 조언 등등의 전형적인 내용을 떠올리며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클릭했으나 내용은 생각 이상으로 신선했다.




해당 강의 영상



Tim Urban이라는 이름의 블로그 작가인 강연자는 미루는 사람들의 머릿속 의식의 흐름을 3가지 존재로 설명한다. 합리적 의사결정자,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인간도 아니다), 그리고 패닉몬스터.


자주 미루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합리적 의사결정자’가 아닌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가 자꾸만 의사결정권을 빼앗아버린다. 그러다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가 미뤄오던 해야 할 일들의 마감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마감기한을 계기로 평소에는 숨어있던 '패닉몬스터'가 깨어나 원숭이를 내쫓는다. 덕분에 그제서야 합리적 의사결정자가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잡고 패닉몬스터와 함께 초인적인 능력을 내며 무언가를 기한 안에 해낸다. 밑에 그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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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 만족감 원숭이와, 합리적 의사결정자

출처 : YouTube 채널 TED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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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몬스터는 위기의 순간 나타나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를 내쫓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출처 : YouTube 채널 TED 캡처


 

벼락 치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 짧은 이야기를 듣고, 내 얘기 같아 웃음이 피식 나옴과 동시에, 나 자신이 타자화되는 낯선 느낌이 들며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 나는 무언가를 해내야 할 때, 보다 좋은 방향 설정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생각하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정작 과정 자체에 대한, 정확히는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한 내 태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벼락 치기를 많이 했고, 심지어 벼락 치기를 해서 얻어낸 성적이 꽤나 좋은 편이였다. 가끔 벼락 치기를 좀 더 일찍 시작한 적은 있어도 매사에 꾸준함과 성실함을 가졌다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우스갯소리로 “내일의 나 자신아 미안하다 부탁해!”라는 말도 참 자주 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과제를 몰아서 하고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했지만, 다행히도 제대로 벼락 치기를 했을 때는 내가 봐도 놀라운 초인적인 능력이 깨어나 나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해야 할 일을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오는 초인적인 나의 능력, 일명 패닉몬스터에 의한 나의 성취들은 하나 둘 쌓여서 나에게 한가지 습관을 만들어냈다.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 할 때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예를 들어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오던 내 200%의 능력을 기억하고 있기에 제대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누가 봐도 무리인 계획을 짜고, 그걸 다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더 다그친다. 그럼에도 나의 숨겨진 초인적인 능력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날 나를 더 궁지에 몰아넣는다. (마치 게임에서 유료 아이템으로 게임을 이긴 후로 계속 아이템에 의존하는 느낌이다.) 나는 나의 패닉몬스터를 악용하고 있었고, 미루는 습관에서 벗어나 '매일 꾸준히'란 방법의 필요성도 아예 못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항상 내가 원하는 수준의 완벽한 결과가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생각해보니 '매일 꾸준히'보다 '더 완벽하게 더 빡세게'는 항상 비효율적이었다. 애당초 패닉몬스터는 쉽게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등장한다 해도 초인적인 집중력은 한정적이다. 사람이 어떻게 365일 스스로를 불태우며 매사에 임할 수 있겠는가. 그게 가능하더라도 우리의 정신과 몸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정신과 신체가 버틸 수 있는 기준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열정적으로 쏟아붓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번 아웃 증후군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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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 =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게다가 미루는 습관으로 생긴 패닉몬스터에 의존하는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더 완벽한 나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오는 200%의 능력이 내 능력의 기준이 되어버리고, 이는 우리를 일명 완벽주의자로 만든다. 완벽주의는 현대사회에서 꾸준함과 성실함과 열정과 능력을 겸비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평가되지만, 사실 완벽함이라는 기준에 차지 않는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이면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존감을 갉아먹기 쉽고, 지나친 완벽함을 추구함으로써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일부 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무언가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생각해 오히려 무언가를 더 쉽게 미룬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런 식으로 패닉몬스터에 의존하며 미루는 습관은 “부족한 나를 용납할 수 없어!”라고 외치는 완벽주의자를 만들어 냈다가, 다시 "완벽하지 못할 바에 안 하겠어!"라는 명목으로 미루는 습관의 양분이 되며 악순환 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이러한 '미루는 습관과 완벽주의'의 이상하고 비효율적인 콜라보레이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너무 뻔한 말이지만 '매일 꾸준히'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저 그냥 지금 이 순간들과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의미를 두는 것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오는 능력은 결코 나의 평균 능력이 아니며, 기본 능력치를 키워주지도 않는다. 더 이상 ‘패닉몬스터’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나의 기본적인 '해냄 능력’을 길러야 한다.


윈!.jpg

인생이 게임이라면 '패닉몬스터'라는 '아이템'을 사는 게 아니라,

내 '기본 레벨'을 올리는 게 더 효율적이다.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매일 꾸준히 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 등등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이 말들은 내가 그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부터 나에게 들렸고,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때 이미 그 말들은 나에게 무뎌지고 뻔해졌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해답은 가장 원론적이고 간단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하며 결론을 말하자면, 100%의 나를 위해 99%의 나를 채찍질하는 것보다, 매일 1%라도 해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백배 천배 효율적이고 중요하다. 저 멀리 빛나는 목표를 위해 ‘지금’과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잊어선 안 된다. 결국 멀리 있는 그 목표 또한 지금 이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 다다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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