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 김사월 [Romance] 앨범 추천 및 리뷰

사랑의 한가운데, 나는 '우리'일 수 있을까
글 입력 2018.11.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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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과 끝은 원래 혼자다. 사랑에 빠져 누군가를 마음 속에 담는 일도, 사랑이 끝난 뒤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나 혼자 해야 할 일이다. 앞의 과정은 사람에 따라 설레고 행복할 수 있지만 마지막 과정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살의 한 부분이 뚝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은 물리적인 아픔을 느낄 만큼 고통스럽다.

이런 과정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고, 혹은 그 먼 미래보다 지금의 감정이 너무 소중하고 강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든,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랑은 ‘둘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홀로더라도 사랑의 가운데에서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김사월의 [Romance]를 들으며 나는 이 기본적인 이야기도 의심하게 되었다. 과연, 사랑은 둘이 하는 걸까? 사랑을 하면 내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는 걸까? 김사월의 사랑 이야기는 잔인하리만큼 솔직하다. 결국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그런 순간들이 더 많다고. 그렇게,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이 완벽한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된다. 나는 앨범을 들으며 사랑에 막무가내였던 한낮부터,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던 어느 밤과, 이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먼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어느 평화로운 새벽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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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Romance]는 사랑의 한복판에 서 있는 흥분부터 마지막 부스러기의 후회까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트랙 ‘로맨스’가 우당탕탕 앞으로 달려가는 사랑의 저돌적임이라면 ‘누군가에게’부터 화자는 상대와 다른 사랑의 온도에 슬퍼하기 시작한다. 그 혹은 그녀는 엉엉(‘엉엉’) 울기도 하고, 그리워해보라며(‘그리워해봐’) 조르듯 말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불확실한 세상 앞에서 방황하고(‘세상에게’) 진심 따위를 자조(‘키스’)한다. 이 과정대로 앨범을 들으며, 특히나 좋았던 세 곡을 꼽아보려 한다.



우당탕탕 한낮의 ‘로맨스’





앨범의 첫 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곡은 전체적인 앨범의 톤을 정해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이 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사월의 앨범 [로맨스]의 첫 곡 ‘로맨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마음 받으러 올래?
난 운전은 못 하니 네가 가지러 와.
엄청 많으니까 아무 때나 찾아와'

곡에서 나는 정확히 맞지 않아도 일단 우당탕탕 돌진하고 본다. 나는 일단 너를 너무 사랑하고, 너는 나와 너무 다르지만, 그래도 너를 너무 사랑하기에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 그런 상태.

곡의 밝은 분위기나 처음의 귀여운 도입부 때문에 이 노래를 그저 귀여운 사랑 노래로 알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곡은 앨범의 복선 같은 곡이다. 너는 내게 나를 먼저 사랑하라 했지만, 나는 여기에 대고 너도 그걸 못하지 않느냐며 따진다. 조금씩 부딪히지만 일단은 ‘우리’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나아가는 연애. 그것이 뜨거운 한낮의 데이트 같은 ‘로맨스’다.



술집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너를 보다가
밖에 나와 울어버린 저녁 – ‘엉엉’





좋은 책을 읽으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듯이 좋은 노래를 들어도 그 분위기가 눈 앞에 그려진다. ‘엉엉’을 들으면 딱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저녁 11시 반, 조금 낡은 술집에서 나와 술을 마시던 너는 갑자기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이고, 나는 소외감에 밖에 나와버린다. 그리고 서러움에 흘러나오는 눈물에 엉엉 울고야 만다. 이런 장면.

논리적이지 않다. 말이 되지 않는다. 잠깐 네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사이, 추운 밖에 나와서 엉엉엉 우는 ‘나’라니. 하지만 이렇게 말이 안 돼서 이해가 간다. 원래 감정이란 건 논리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크고, 사랑은 감정의 폭을 제일 크게 만드는 일 중 하나니까 말이다. 영원히 사랑할 사람을 찾다가도 이렇게 작은 부분에 흔들려버린다.

로맨스를 꿈꾸며 우당탕탕 달려가던 나는, 마주한 밤의 서러움 앞에서도 솔직하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나와 함께 있어 줄 순 없어?’

처음처럼 해맑게 ‘우리를 돕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솔직함은 여전하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그 때 그 때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이 곡이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엉엉엉 울고 싶을 때, 사실은 그렇게 울 수 없을 때 혹은 울지 못하는 때가 많으니까. 이 글을 쓰는 나와는 달리 이 곡 속 ‘나’는 ‘엉엉’ 울며, 한밤의 술집 앞에서 그렇게 사랑과 사람을 붙잡아본다.



평화로운 새벽,
사랑이 모두 끝난 후에야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것은 – '키스'





모든 것이 끝난 이후의 곡 제목이 ‘키스’인 것이 생소했다. 하지만 이 때의 키스는 열정보다는 슬픔과 쓸쓸함이다. 가만히 숨을 불어넣는 과정. 그가 내게 주었던 것들을 가만히 돌려주는 것 같은, 그런 키스다.

이번 앨범에서 많이 강조된 단어는 ‘시간’, ‘영원’, ‘절대적’이다. ‘엉엉’에서는 영원히 사랑할 사람을 찾았고, ‘누군가에게’에서는 너의 무의식과 감정은 절대적이라고 노래했다. ‘프라하’에서는 얼마나 오래 좋아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 시간을 연모했다고 슬쩍 풀어놓는다. 진짜 시간이 어떻게 되었든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시간은 참 이상하게 가는 것이다. 그를 혼자 좋아하던 시간은 억겁처럼 길고 함께한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영원하지 못하다.

(작가 이슬아는 수필집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시간은 이상하게 빠르고 더디게 흘러간다’고 했다. 나는 김사월의 앨범을 들으며, 이슬아의 솔직한 소설을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를 잘 모르지만, 왠지 두 사람은 실제로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키스’에서 김사월은 영원도, 절대적인 것들도 모두 포기한다.

‘이 세상의 모든 진심들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
영원, 절대적인 것들을 괜히 믿으려 했었다니’

그리고, 결국 기나긴 다 인생 끝날 때까지 이 사랑의 형태를 정하는 일을 유보한다. 이 솔직했던 사랑이 남긴 것이 상처인지 위로인지 좋은 경험인지 욕만 나오는 기억인지, 이런 것들은 한 생이 끝나야 알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멀리 창밖을 내다보는, 모든 것이 끝난 이후의 새벽. 곡의 시작부분부터 중간중간 끊임없이 나오는 완벽한 화음의 코러스는 이 곡이 어딘가 성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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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은,

사랑하는 동안은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이렇게 솔직한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다. 이렇게 들으면 결국 사랑도 혼자 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나는 또 스쳐지나가는 사람과의 짧은 미래를 상상하겠지. 그렇게 다시 로맨스부터 키스까지 반복하겠지. 이렇게 삶을 이어가고 사랑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언젠가 둘이 할 사랑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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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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