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암스트롱은 달도 갔는데요? [기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글 입력 2018.11.0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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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은 live yourself alive라는 곡에서 이렇게 말한다.


*


Well I sold a million mirrors in a shopping alley way.

But I never saw my face in any window any day.
Now they say your folks are telling you be a super star.

But I tell you just be satisfied. Stay right where you are.
Keep yourself alive.


난 골목길에서 수없이 거울을 팔았지만,

어떤 창문에서도 내 얼굴을 비춰볼 수 없었어.
사람들은 너에게 슈퍼스타가 되라고 말을 하지.
하지만 난 차라리 지금의 너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할래.
인생을 즐기자.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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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학 동기이자 한때 같은 직장 동료였던 K의 전화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나의 사는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물었다.


"그래도 다 이유가 있는 거지?"


그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신, 약간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의아함. 그런 목소리는 내겐 너무도 익숙한 종류라서 나는 조금 웃었다.


퇴사한 이후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게 Why를 던진다. "퇴사는 왜 한 거야?"가 시작이었다. 회사가 작은 곳도 아니고, 일이 적성에 안 맞았던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퇴사를 한 건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분명 내가 대단한 속셈이나 계획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냥 퇴사했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퇴사에 대해 저들끼리 명분을 상상하고 개연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난 시시하게도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1년이나.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루의 12시간을 수험생처럼 영어에 매진하니 사람들이 또 묻는다. "영어 배워서 뭐 할 거야?" 그 뒤에는 취업 혹은 어떤 다른 좋은 길이 있을 거라는 추측과 상상이 존재했다. 그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분명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야 앞뒤가 맞고 납득 가능한 명분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꾸만 내게서 '그것'을 찾으려 질문을 하는 거다.


그 중요하고 위대한, <개연성> 말이다.




우리는 역시 명분의 민족.



아르바이트 장소는 집에서 버스로 15분, 걸어서 1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난 보통 걸어간다.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놀라며 묻는다.


"뭐 하러 걸어가?"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고, 1시간이나 걸으면 지칠 텐데. 도대체. 뭐 때문에?


하지만 생각해보자.


걸어가느냐 버스를 타느냐는 탕수육 찍먹파냐 부먹파냐, 아니면 탕수육보다 깐풍기를 더 좋아하느냐 정도의 문제다. 다만 탕수육 먹기는 고작 30분 걸리는 일이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걸어서 출근하기는 무려 1시간이나 걸리고 말만 들어도 힘든 일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그 차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영어 공부는 1년 이상이 필요하며 퇴사는 내 앞으로의 70년이 걸려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겨우 그뿐이다. 소스를 부어야만 탕수육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1년 정도는 영어에 매진해줘야 인생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다. 탕수육을 부어먹든 찍어 먹든 맛있게만 먹으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 이 길로 가든 저 길로 가든 좋은 거 보고 듣고 즐기면 그만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곳에서 이유를 찾고 개연성을 기대한다. 영화를 고를 때도,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학원을 고를 때도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망작이라는 댓글에 다른 영화를 예매하기도 하고, 가고 싶은 밥집이 리뷰가 전혀 없어 망설이기도 하며, 남들 다 가는 그 학원을 다녀야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아 등록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네가 훨씬 아깝다'라는 말에 좋아하는 애와의 썸을 고민하게 되기도 하는 게 우리다. 그 고민의 이유는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볼 '이유', 그 밥집에 갈 '이유', 다른 학원에 등록할 '이유', 그 애와 사귈 '이유'. 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저 '끌림'으로 결정해버리기엔 '이유'라는 커다란 공백은 너무나도 큰 허전함으로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명분은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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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 납득하고야 마는 사람들. 하지만 어디 사랑이 언제나 납득 가능하던가? 영화 <색계> 속 탕웨이는 별다른 사건 없이 어느샌가 양조위를 사랑하고 있다. 영화 <아가씨> 속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 사랑에 빠지게 된 타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감상만 해칠 뿐이다.


하물며 영화 <퍼스트맨>은 어떠한가.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도대체 왜 저렇게 해서까지 달에 가야만 하는 거야?" "왜 그렇게 달에 가고 싶어 하는 거야?"라는 물음표를 관객들의 머릿속에 심어놓고 잔뜩 괴롭힌 다음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단한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뜻이 있지도 않지만 가족들의 반대와 목숨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달에 가야만 하는 이유. 그 이유가 불분명한 가운데 닐은 끊임없이 달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가 달에 가서 한 행동은 오직 딸의 유품을 흑백의 공허함 사이로 흘려보내는 것뿐.


다만 영화는 하나의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왜 달인가? 왜 달을 우리의 목표로 정했는가? 그들은 아마 왜 가장 높은 산을 오르려 하는지 물을 것입니다. 왜 35년 전, 대서양을 비행했는지, 왜 RICE 미식축구팀은 TEXAS 미식축구팀과 싸우려는지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달에 10년 안에 갈 것이며, 다른 것들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Keep your self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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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대의를 저버리고, 성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며, 사소한 명분으로 달까지 간다. 근데 하물며 1시간을 걸어가고, 이유 없이 영어를 배우고, 사표를 내버리는 일이 뭐 대단할까.


너무 많은 명분과 너무 많은 타당성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목적 있는 행동과 분명한 동기만이 우리를 좋은 길로 안내해줄 거라는 환상은 때론 우리의 숨통을 죈다. 영화 속 저들이 명분을 찾았더라면, 그들은 일생의 사랑도 만나지 못했을 테도 달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좋아서 하는 일, 끌려서 해보는 짓, 호기심에 던져본 것들이 우리의 삶을 알 수 없는 좋은 방향으로 우리는 데려가기도 한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왠지 좋은 곳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그런 장소 말이다. 그리고 아마 그 장소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UN 연설처럼, 자신의 이름을 찾는 삶, 그건 가장 나다운 일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한 발자국씩 내디딘 삶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편편해진 길이 아닌, 조금 낯설지만 그래서 조금 두렵지만 왠지 끌리는 일. 대단한 명분은 없지만 사소한 끌림으로 나아가는 일. 그리고 그 길 끝에 도착한 곳이 꼭 거창한 곳일 필요는 없다. 그저 그곳엔 내가 서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환히 웃고 있는 나. 무수한 선택과 무수한 경험과 무수한 취향으로 일구어낸 오롯한 자신의 세계 속에서 우뚝 선 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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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모두 한발 더 나아가 봅시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흥분시키며 어떤 것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합니까?

여러분의 이름을 찾고,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함으로써 여러분의 목소리를 발견하세요.


- 방탄소년단 RM의 연설 中





거울 백 만개를 팔아도 정작 자신의 얼굴은 어느 창에도 비춰보지 못하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마 그 얼굴은 슈퍼스타의 것일 테다. 그리고 그 방법은 대단하지 않다.


keep yourself alive!


그저 하고 싶은 걸 하고 끌리는 것을 하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거 왜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자.


그냥! 뭐 어때. 닐 암스트롱은 달도 갔는데!



[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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