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맨땅에 헤딩하기 [도서]

나의 옛 통영과 할머니와 닭이 생각나는 책
글 입력 2018.11.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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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란 씨의 <맨 땅에 헤딩하기>는 줄거리만 봐도 흥미로웠다.


저자가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다시 집을 지을 곳을 찾아 헤메다가 저자는 시골로 가게 된다. 낭만적일 줄 알았고, 여유로울 줄 알았던 시골에서도 남편과 싸우고, 지인들은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도시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 모든 고통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깨달음 끝에 다시 시골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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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

저자는 된장을 직접 담그고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고, 닭을 키우면서 풀숲에 낳아놓은 달걀을 찾아다니는 여유를 누린다고 한다. '시골생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참 많다. 이 문장 하나만을 읽고도 나의 지난 20년이 차례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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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인 집이지만, 양해를 구하고 올린다. 바닷가가 붙어있어 늘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갈 때면 생선을 손질해서 소금간을 해주는 장면을 보곤 했다. 얼마나 빠른 손놀림인지 모른다. 엄마의 단골 생선가게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부터 대를 이어서 엄마까지 손님으로 받고 있다. 늘 엄마에게 할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엄마는 늘 그렇듯이 "그냥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엄마와 생선가게 할머니가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열심히 할머니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그 덕에 나는 옆집 주인 아저씨가 내 고향에서 잡았다고 주는 생선을 직접 손질할 수 있게 되었다. 지느러미를 모조리 자르고, 머리를 떼어내고, 내장을 빼내며 느꼈다.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통영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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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직접 키워보기도 했다. 동생이 어릴 때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에서 방과후에 하는 동물 수업을 듣고 한 달마다 뭔가 새로운 동물을 하나씩 데려왔다. 어느 날은 번데기 비슷한 애벌레를 징그럽다면서도 데려와서 유리병 속 흙 안에 넣고 키우더니 어느샌가 거대한 딱딱하고 검은색의 어떤 곤충이 되어서 자연에 풀어주게 되었다. 어느 날은 골든 햄스터를 데려와서 한동안 키웠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라를 데려와서 키웠었다. 생각보다 오래 길렀지만, 동물들은 생각보다 빨리 죽었다. 동생은 그때마다 세상이 떠나갈듯이 통곡을 했다.

병아리를 두 마리를 데려와서 길렀는데, 한 마리는 산책을 하다가 당시에 키우던 고양이가 물어죽여버렸다. 그러고 한 마리는 삐라는 이름을 가진 어른이 되어서 두번째 고양이도 무서워할만한 거대한 수탉으로 자랐다. 삐는 새벽마다 꼬끼오하면서 울어서 동네 주민들을 잠에서 깨우곤 했다. 나는 그때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고등학생이어서 일어나서 공부를 하다보면 삐가 언제 옥상에 올라가서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단을 폴짝 폴짝 뛰어올라서 옥상으로 올라가서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빨래를 너는 엄마의 다리에 있는 점을 쪼아서 엄마가 아주 무서워했었다. 삐는 너무 자라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양식이 되었다. 수탉이어서 후손을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의 친구였던 그 아이는 결국은 삼계탕이 되었다. 동생은 또 그 날 엄청 울었다. 우리가족은 한 입도 먹지 않았다. 후에 오리도 키웠는데 그 오리도 결국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동생 덕에 많은 만남과 이별을 했다. 아마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처음부터 서울에 살았닫면 절대 동물을 그렇게 많이 키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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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답이 없는 각자의 여정이다.
어차피 태어나는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길을 가는 일이다.
나는 고민이 짧고 일부터 저지르고 드는 기질이라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많았던 것 같다
좋게 해석하면 가슴의 소리에 따랐다는 말이고
계산 없이 즉홍적으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용케 여기까지 왔다.
오늘도 굳은살 박힌 이마를 쓰다듬고
낡아가는 몸도 한번 안아주자.

- 책을 내면서 中 -


내가 정말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구절이었다. 아니, 원래부터 해오던 고민인데 공감가는 구절을 읽게 되면 툭 하고 터져나오는 무수한 고민 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다.

요즘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많은 회의감이 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실제로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완벽해지기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고 있다. 중간고사 결과는 나오는 과목마다 전부 망쳤고, 학교는 제대로 가지도 못했고 학점이 어떻게 나올지 학기의 중반까지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나는 학업과는 상관없이 몸을 만들겠다는 목표때문에 늘 괴로워한다. 그깟 몸매, 나의 전공도 아니고 직업도 아니고 아무도 내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관심도 없을 그 문제를 늘 괴로워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몸을 만드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아마 나는 남들처럼 떠들고 웃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냥 그렇게 하루를 끝내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바람은 거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나도 저자처럼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타임의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엔 술에 꽂혀서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혼자서 취득하기도 했고, 컴퓨터 능력을 기르고 싶어서 다른 자격증도 도전해보기도 했다. 난데없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에서 2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나는 지금 관심사가 몸을 만드는 것으로 옮겨온 거야. 이것 역시 달성하고나면 흥미가 사라질테니 최선을 다하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몸을 만드는 것의 끝은 무엇일까. 전혀 모르겠지만 이것이 끝나는 날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이건 평생 갖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사실은 바뀐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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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지인들과 어울려 화전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가마솥에 끓인 동지팥죽을 나누며 자신에게 주어진 호사를 주변과 나눈다.

우리 외할머니는 요리를 너무 잘했다. 이제는 팔도 겨우 움직이시며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계셔서 엄마와 이모가 돌봐드리지만, 나는 아직도 외할머니의 요리가 생각난다. 한번, 외할아버지가 남이 갖다버린 쓰레기를 태우다가 부탄가스가 터지는 바람에 시외에 입원을 해야 해서 엄마가 한동안 우리 세 자매를 할머니댁에 데려다놓고, 병원에 가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밥반찬들은 너무나 맛있었다. 겨울이면 동지팥죽을 끓여주는데 설탕을 얼마나 넣었었는지 모른다. 그 어린 시절에는 설탕이 그냥 달고 맛있고 요리에 당연히 들어가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 최대한 달게 해서 먹었기도 했다.

제일 맛있었던 건 식혜다. 쌀이 왕창 들어간 달달한 그 식혜는 어린 내 입맛을 사로잡아,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식혜를 제외한 어느 식혜도 먹지 못한다. 어떤 식혜는 너무 가공적인 단맛이 나기도 하고, 어떤 식혜는 너무 건더기가 없고. 건더디가 와르르 쏟아지던 달콤하디 달콤한 할머니의 식혜는 더 이상 먹지 못하기에, 나는 식혜를 더이상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손이 커서 곰탕을 끓이면 한달 내내 먹어야했다. 온가족이 먹고, 우리가족이 먹었는데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곰탕이 끝나서 몇달이 지나면 다시 그리워지다가도 한번 먹으면 충분한데 끝없이 나오니 지겨웠다. 하지만 제대로 몸보신을 했었던 것 같다. 이제 할머니가 요리를 하지 못해, 우리가족은 시판되는 사골곰탕을 먹곤하지만 그때 그 시절의 깊은 맛은 더이상 느낄 수가 없다.

잃어버린 것이 많다. 할머니 한 분의 손이 얼마나 컸는지를 점점 깨달아간다. 엄마가 요리를 해서 할머니에게 드려도 할머니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너무 너무 옛 고향이 생각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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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기
- 소설가 고금란의 세상사는 이야기 -


지은이 : 고금란

출판사 : 호밀밭

분야
에세이

규격
133*199mm

쪽 수 : 256쪽

발행일
2018년 8월 19일

정가 : 13,800원

ISBN
978-89-98937-88-1 (03810)



문의
호밀밭
070-7701-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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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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