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Jeongny World' for 4 months

Jeogny World로 활동한 4개월, 그 마지막
글 입력 2018.11.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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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sight를 통해 얻은 것"

- 여러분에게 아트인사이트(ART insight)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






4개월간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이 마무리됐다. 아트인사이트는 내게 '창구'였다. 혼자만 간직하던 나의 생각을, 사색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한 번은 대표님께서 선물을 주셨다. 조회 수였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감상한 횟수. 5천 명이 넘었다. 일주일 만에 한 게시물을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상했다. 굉장히 짜릿했다. 나의 전체 작품 활동에 대한 조회 수를 합친다면, 몇만 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카테고리 Jeogngny World를 정기적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 나의 글을 읽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마음이 들떴다. 아트인사이트는 그런 존재였다. 나의 일상생활을 하며 받는 여러 스트레스를, 이러한 기대와 즐거움으로 '들뜨게 하는 존재'. 행복한 4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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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ART insight', 소통의 의미


그리고 그 4개월 동안, 나는 확실한 꿈을 찾았다. 나의 꿈은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겪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제1적성이자 제1취미이지만, 이것으로 나의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걱정이 많았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활동 자체가 좋았고, 그 안에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순수예술의 비전과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제2적성을 찾았던 것 같다. 영상이었다. 영상도 그림처럼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매개체'였으며, 예술적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여 제2적성을 찾아 PD가 되는 것을 목표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영상이 담는 예술적인 미, 아름다움을 찾으며 공부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영상미로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며 '영상'에 집중하던 시기에, 아트인사이트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트인사이트를 하면서 자꾸 욕심이 났다. 내가 뒤로 미뤄놓았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인 그림그리기가 계속 나의 진로로 들어왔다. 그동안 내 스스로 나는 영상을 해야 해. 하며 나를 통제했던 것이 아트인사이트를 하나의 명분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아트인사이트는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하구나. 더 이상 통제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서 선택했다. 현재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웹툰을 그릴 것이다. PD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손으로 그린 웹툰을 내 손으로 직접 연출할 것이다. 드라마 감독이 되어 언젠간 내가 쓴 나의 시나리오 웹툰을 영상화 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즐거워졌다. 이전에 비해 더욱 욕심이난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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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insight 활동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The dog'
 


이렇듯 아트인사이트는 나를 들뜨게 하는 존재, 꿈을 찾아준 존재였다. 하나만 할 필요는 없다. 그 확신과 의지를 들게 해 준 존재이다. 15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에게 전하고 싶다. 문화예술에 대한 의지가 있어 이곳을 선택한 만큼, 많은 것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그게 견문의 확장이든, 나처럼 갈팡질팡하던 꿈에 대한 확신이든, 아트인사이트는 그 이상을 선물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아트인사이트를 지원했을 때의 설렘과 추억을 담아 출품했던 작품 두 가지를 올린다. 추후 이 글을 보고 내게 아트인사이트가 가져다준 선물을, 이 활동의 의미를 추억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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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 투성이

아름답고 고운 손에 속아 마음을 주면
돌아오는 건 흉측한 내면
가면 속 괴물

가식에 잡아먹히는 우리
우리의 도시, 세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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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피아노의 숲, 'Forest of the piano'

음악을 즐기고 향유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모인 공간
'음악' 하나로 차별없이, 차이없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곳  

만약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잊을 수 없는 음식"

-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과 그 경험을 나눠주세요. -






처음 닭발을 먹어본 순간을 기억하는가? 내가 처음 먹어 본 닭발은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국물닭발이었다. 국물 닭발이 인기를 끈 건 백종원의 한x닭발이 등장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우리 할머니는 유행을 예견했던 것처럼 내가 어렸을 적부터 국물 닭발을 만들어주셨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로 바쁘셨던 이유로, 나는 할머니의 손에 4살까지 키워졌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고집불통이었는지 원하는 게 얻어질 때까지 울어젖혔다고 한다. 시장을 한 번 나가면 닭꼬치를 사달라고, 사주지 않으면 바닥에 드러누워 사줄 때까지 떼를 부렸더란다. 한 번은 할머니께서 지갑을 놓고 오셨는데, 도무지 내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결국 외상을 하셨다. (이런 외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어렸던 내게 전부였고, 엄마 아빠가 와서 나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해도 할머니 옆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단다.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어젖혀서, 그런 내 모습이 슬퍼서 어머니는 눈물도 흘리셨다. 내가 엄마에게 너무나 정을 붙이지 않는 모습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그렇게 4살까지 할머니 손에 자란 후, 5살부터는 여유가 생기신 부모님께서 날 데려와 키우셨다. 그래도 계속 할머니를 찾으니, 결국 서울이었던 할머니 댁을 엄마 아빠의 인천 집 근처로 이사하면서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붙어지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할머니의 집은 나의 집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가기보다는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습관적으로 '할머니'라고 부른 적도 많았다. 집에서는 할머니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서 웃음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할머니의 생신 때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쌀 과자 봉지를 벽에 붙여놓고 깜짝파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에게 지대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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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8월, 수능을 3개월 앞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억장이 무너졌다.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슬픔에 대학 진학에 도무지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독한 마음에서였는지,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할머니께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기존에 하고 있던 입학사정관 준비는 다 때려치우고 수능에만 올인을 했다. 할머니께서 도와주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결혼식까지는 보고 가고 싶다고 하셨던 말씀에 공부를 하면서도 너무 슬펐지만, 할머니의 초상화를 그려 독서실 앞에 붙여놓고 공부를 했다. 할머니의 덕이었는지, 원하는 대학교의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 할머니의 납골당 액자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했던 수많은 사진들을 넣었다. 하늘에서도 외롭지 않으시게, 우리가 그립지 않으시도록 넣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진을 넣었다. 기일, 생신, 명절에는 직접 포장한 꽃을 선물해드린다. 한 평생 주기만 하셨던 할머니. 나는 한평생 할머니께 받기만 했다. 할머니와의 시간은 가장 아쉽지만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다.


할머니의 막내딸인 이모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요리법 그대로 종종 닭발을 만들어 주신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국수도, 묵은지도, 닭똥집도. 할머니가 우리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을 원하시는 걸 알기 때문에, 닭발을 먹으면서도 할머니를 추억한다. "할머니 손맛은 못 따라 가네!"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5년째. 할머니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 가족을 지켜봐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난 씩씩할 수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실패하는 일이 와도,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할머니께서 나를 그렇게 키우셨고, 나는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글로서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아트인사이트에 감사한다. 추억이 담긴 할머니의 음식이, 나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음식이다.



- Jeongny Wor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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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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