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때마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 오지은
글 입력 2018.10.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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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때마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박치인 내가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가수가 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적성이 아니라고 하려나. 조금만 노력하면 될 거라고 하려나. 그것도 아니면 웃으며 그냥 지나치려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럽다. 매력적이고. 난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박수치는 입장인데. 역마살이 있어서 여행을 좋아한다. 그것도 조용하게. 도착한 숙소에 짐을 풀고 작은 가방에 노트와 펜을 챙겨 카페로 간다. 어떤 관광지를 볼지, 뭘 먹을지 정하기보다 언제쯤 지역을 이동할 건지, 이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내 여행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난 내 여행이 좋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다시 돌아와 낮잠 자고 배고프면 일어나 저녁 먹고 산책하는 정도인 여행이.


결국 여행이란 일단 즐겁게 잘 쉬다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발견도 하고, 그러다 타인을 조금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정말 시간이 남고 여유가 있으면 내면도 좀 돌아보고. P9



친구가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책을 선물해줬다. 결혼 예정인 친구에게 오지은 '작은 자유'가사 중심으로 편지 썼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오지은을 기억해 이런 센스 있는 선물을 줬다. 나도 여행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앞으로 글 쓸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오지은 여행기는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여행을 보여주듯. 평범했던 그녀의 일상을 보며 내 여행을 생각했고, 그녀의 여행을 상상하기도 했다. 여행하다 보면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새로운 내 모습을 본다거나 여기선 느끼지 못한 일상이라던가.


줄을 선 지 25분이 지났다. 남들이 좋다는 걸 하는 것과 내가 지금 좋은 걸 하는 것, 남들이 좋다는 두오모를 보려고 한자리에 30분째 서 있는 것과 이불속에서 사그락 거리는 감촉을 느끼는 것, 여행은 줄다리다. 승자는 없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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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행했던 곳을 다시 가보고 싶냐고 질문받는다. 그때마다 아니라고 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작년에 혼자 치앙마이로 여행했다. 무서웠고 걱정됐다.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지, 잘 쉬다 올 수 있을지. 걱정과 다르게 너무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 왔다. 그것도 마음 편하게. 그 기분 때문인지 치앙마이에 대한 기억이 좋다. 그 나라의 향도 좋고. 걷다가 우연히 야시장을 발견하면 두 손 가득 먹을 걸 사서 벤치에 앉아 먹었다. 그 음식도 맛있었다. 여유가 필요할 때마다 치앙마이가 생각난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 치앙마이에.


여행자의 특권은 편견을 가져도 된다는 점이다. 며칠 만에 어떤 장소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리 없다. 여행자에게는 단편적인 인상 몇으로 결론을 내릴 특권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편견이 깨지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도 있다. 역시 가보지 않으면 몰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하고 깨닫고 싶은 욕심.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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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 일은 좋은데 나와 맞는지 잘 모르겠는 뭐 그런. 자존감이 떨어졌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렇게 매일, 밥 먹는 시간 외에 잠만 잤는데도 계속 피곤했고 계속 잠이 왔다. 그때, 나를 보며 "그 일, 너랑 잘 어울려"라고 말해준 친구가 있었다. 왜인지 묻고 싶었다. 어떤 점이 어떻게 나와 맞는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확인받고 싶었다. 그 말로 하여금 안심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주저하고 있을 때마다 친구들이 힘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머뭇거려도 묵묵하게 걸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아니어도 나를 꾸준하게 응원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친구의 응원처럼 나를 되찾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쉬고 싶거나 그냥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을 때. 걷다 보면 사소한 일상에 웃음 나올 때가 있다. 길을 걸아가는 강아지가 귀여워 웃고, 담벼락에서 날 쳐다보는 고양이가 귀여워서 웃고, 내 앞에서 웃으며 걸어가는 학생을 보며 웃는. 여유로워진다. 여행을 하면. 다른 사람에겐 그렇고 그런 일상이지만 나한테만은 특별한 순간을 볼 때가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 부분만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그림은 거기에 있었다. 가짜처럼 거기에 있었다. 어색했다. 전화통화만 하던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멀찍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어색함을 줄여보려 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림에게 인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좋아하던 오묘한 푸른 바탕을 보았다. 우아한 흰 꽃을 보았다. 프린트로는 잘 보이지 않던 붉은 꽃봉오리, 입체감을 보았다. 고흐가 그때 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바로 알아주지 않았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이 사람은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그려냈을까. P145



그냥 지금 난, 다시 여행하고 싶다.


[송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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