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개인과 사회, 사회와 개인 [공연]

남산예술센터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글 입력 2018.10.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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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 년 전 부터 부쩍 뉴스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 말인 즉슨, 이전에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학교 공부하고, 과제하고, 알바하고, 대외활동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이동을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하는 등의 짧은 공백은 뉴스가 아닌 멍-으로 채웠다. 시종일관 바쁘게 굴러가는 내 몸뚱이와 머리를 잠시나마라도 쉬게 해주는 것이 당시의 나에겐 가장 중요했다.

그런 내가 차츰 뉴스를 보기 시작한 이유는 시나리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발생하는데, 적어도 관객들이 돈 주고 보는 영화는 현실보다는 더 극적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 기준선을 만들기 위해 뉴스를 차차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름아름 보기 시작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멋모르고 있다가는 바보 되겠다’ 싶은 생각에 뉴스를 의식적으로라도 챙겨본다. 학교, 알바하는 곳, 또래집단이라는, 나라는 작은 개인을 감싸고 있는 소규모의 pool들 너머로, 이 모든 것을 둘러치고 있는 거대한 pool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그리고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몸소 실천하며 숲에서 자급자족 살 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자일지라도 결국에는 사회라는 pool을 벗어날 수 없다. Pool에 거대한 파도가 몰아닥치면 그 안의 모든 개인들은 별 수 없이 일제히 자맥질을 하게 된다. 학벌이라던가 신념 등 각각의 자질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경제적 능력’은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취업난이다. SKY고 지방대고 할 것 없이 다 같이 사이좋게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 이 모습이란...! (P.S 청춘, 힘은 못 내도 기죽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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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에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이 있고, 반대로 최상의 복지와 함께 높은 국민행복지수를 자랑하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태도와 의지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말도 틀렸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헬조선을 떠나 북유럽으로 가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역시 틀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와 건강한 신념,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인 목소리 역시 열심히 내고자 한다. 나의 행복을 좀 더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나 하나만의 의지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와 내 다음 세대가 함께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하게' 만들어놓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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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인간에게 던지는 모든 질문은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질문은 그 자체가 딜레마이며, 최후엔 용기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과연 우리 모두가 그 딜레마 앞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블랙코미디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1980년대와 2016년을 배경으로 '용감한 시민상' 때문에 엉뚱하게 꼬이고 얽힌 두 남자 그리고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딜레마 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최대의 용기' 뒤에도 요구되는 '최후의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사회가 선사하는 딜레마 속에서 열심히 허덕이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1980년대와 2016년의 사회가 개인들에게 어떤 딜레마를 선사했을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더욱 궁금하다. 사회와 개인, 개인과 사회, 상호의존적인 이 두 요소가 영향력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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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치언 작가의 연출작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는데 이 분의 전작을 자세히 본 후에야 기억이 났다. 이번년도 봄 즈음(정확한 계절이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봄 즈음 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인의 초대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최서림, 야화순례기행전>을 관람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를 거의 못했었다. 우매한 나의 두뇌가 느끼기에, 그 공연은 너무도 철학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문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것도 이해를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리뷰 쓸 때 이해 못한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괜히 다른 말만 횡설수설 할 수도 있다. 미리 고백한다.

하지만 또 가만 보면, 작품을 대함에 있어서 이해를 하고 못하고가 뭣이 중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감독의 의도한 바를 ‘공부’하기 위해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냥 내가 느끼고 이해한 것, 그것이 정답이지 뭐. 즐거운 마음으로 가서 나만의 답을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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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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