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요? [도서]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글 입력 2018.10.1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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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이 희곡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 극에는 특별한 사건도, 줄거리도 없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복선, 의미 찾는 걸 좋아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이다. 두 청년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다. 기다리는 순간에 두 청년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구두를 신었다가 벗고, 모자를 쓰고 벗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서로 쉬지 않고 딴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라면서 대화가 끊긴다. 두 사람은 오지 않을 고도를 왜 기다리는 걸까? 고도가 어떤 사람인지도, 언제 오는 지 알지도 못하면서. 또한, 무엇을 위해서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

    

**

 

지금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때가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의 끝은 우연히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버스에서 창문을 보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가고 싶은 축제가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다. 그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끝에는 보상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렇지만은 않는다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기다림이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의 기다림과 같다는 걸. 나도 그들처럼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가 아무 생각 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 그들의 두려움과 불안은 괴로운 표정으로 무슨 말이라도 하라며 윽박지르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두려움과 불안의 진짜 의미는 바로 고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에서 기인한다. 극에서도 블라디미르가 에스트라공에게 괴로운 표정으로 무슨 말이든 해보라며 화를 내는 부분이 있다. 고도의 불확실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나마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말을 한다.

    

두 사람은 고도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무의식으로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고도가 올 거라는 확신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도중에 한 소년이 와서 내일 고도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고 떠나는 부분이 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래도 두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다. 고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다른 화제로 소년과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들에게는 기다린다는 사실 자체에만 관심 있다. 어제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에게 확실한 건 기다림일 뿐. 멍청한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는 바보같이 50년 동안 고도를 기다리면서 단 한 번도 고도를 원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기대의 끝에는 좌절만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다림뿐이었다.

 

내 휴학 생활도 오직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진로를 찾는다는 이유로 무작정 휴학을 했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기다림의 끝에 행복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다림의 끝은 좌절뿐이었다. 이제 나는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기대할수록 내게 돌아오는 건 실망, 실패, 좌절뿐이었으니까. 내 눈에는 에스트라공과 볼라디미르는 멍청이로 보였다. 바보같이 50년 동안 고도를 기다리는데도,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았다. 고도를 원망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우리의 인생은 불확실하다.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살아갈지, 혹은 언제 생을 마감할지‥· 등. 인간은 불확실의 둘레에서 살아간다. 그 와중에 인간에게 확실한 게 있다면 바로 기다림이다. 인간의 탄생 이전부터 이후 죽음까지 인간은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인간의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나는 ‘기다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성, 기다림. 기다림이 우리에게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기다림 속에는 절망도 같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다린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절망을 끌어안는 멍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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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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