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과 디자인, CA BOOKS [도서]

CA BOOKS #240
글 입력 2018.10.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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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BOOKS가 저번엔 파도에서 서핑을 타게 하더니 이번엔 중구 을지로동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따라갔다. 아무래도 저번 서핑 탄 기억이 재밌었나 보다.

이번 표지에서는 왼쪽에 큼지막한 ‘을지로운 창작 생활’ 글씨가 가로로 누워있고, 오른쪽에는 모눈종이 위에 정자세로 ‘책 디자인의 구조’가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쩐지 처음 볼 땐 몰랐는데 다 읽고 덮자, 두 글씨의 폰트를 다르게 한 것도 전하고자 하는 정보의 특성이 달라서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글자 사이에 있는 표지를 보고 이번에 다룰 기획기사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1 : 을지로운 작가들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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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를 보려 펼치자마자 가장 처음 마음을 사로잡은 건 색감. 노란색 같기도 라임 색 같기도 한 그 오묘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참 예뻤다. 을지로에 모여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에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와 함께 을지로 냄새가 한껏 풍기는 사진도, 가로로 넘기며 보게 만든 것도 신선했다.

한 페이지를 인터뷰로, 한 페이지를 사진으로 꽉 채운 깔끔했다. 그래서 보면서도 기분 좋게 읽었다.

인터뷰는 일곱 팀으로 구성되었는데 인터뷰에서 언급된 디자이너를 바로 다음으로 만나 배턴터치 식으로 인터뷰하는 흐름이 굉장히 좋았다.

왜 디자이너들이 을지로로 모이고 있는지, 어떻게 작업실을 활용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들의 작업환경과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맛집 얘기는 아쉽게 마지막까지 따라갈 수 없었지만, 그 흐름을 통해 을지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통해 이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협업하며 일하는 환경을 느낄 수 있었다.

<을지로운 창작 생활>을 읽으며 어느 무더웠던 날, 을지로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돌아도 돌아도 같은 골목 같고, 같은 가게 같은 을지로 골목에서 단 한 곳을 찾기 위해 헤매었던 기억. 나와 다르게 그 골목을 자전거 탄 아저씨가 유유히 지나가던 기억. 겨우 도착한 곳에 아주 작게 만들어진 간판을 보고 피식 웃은 기억. 돌아 나올 때 화투판을 한창 벌이시던 런닝만 입은 아저씨들에 대한 기억. 그런 기억들이 모인 장소가 을지로였다.

다만 아쉬웠던 건, 그 구석구석 숨어있는 가게들이 어쩐지 무심했달까. 내가 지나가든 말든 과장 한 숟갈 섞어, 거기서 춤 한바탕 춰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꼭 비밀스럽고 은밀해 보여 어떤 걸 하는 곳인가 궁금했지만 힐끗대고 돌아서야만 했었다.

그래서 이번 호가 을지로에서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의 생활을 다루는 것 같아 보고 싶었고, 역시나 가려웠던 곳을 박박 긁어줬다.

창작자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이 곳에 짐을 풀었다.
을지로에서 작업을 시작한 그들은 길이 내뿜는 치열함에 영감을 받고,
다시 골목에 활기를 보탠다.
오늘도 이 동네는 '을지로운'자들의 들숨과 날숨으로 거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내가 비밀스럽고 은밀하다 느꼈던 이유를 알았다. 을지로는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곳이 아니라서. 생활이고 삶이고 작업실이고 일터이기 때문에. 모두가 ‘나는 내 길을 가겠다.’라는 느낌이랄까.

글에서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말이 딱 알맞을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을지로 골목은 뭔가 무심한 듯 조용한 것 같아도, 그 속은 바삐 돌아가고 있던 것 같다. 묵묵히 살아 숨 쉬는 느낌. 아니 어쩌면 가장 힘차고 부지런히 살아 숨 쉬는 느낌.
 


2 : 책 디자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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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획기사 “책 디자인의 구조”를 보면서는 계속 놀랐다.

책 하나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더 나은, 더 편한 디자인을 위해 씨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솔직히 내가 알던 책 디자인이란 표지디자인이 까짓것 전부였다.

내가 힐끗 보고 넘기는 것 하나에도 그러기 위한 수십 개의 공이 들어가 있었다. 사람이 디자인하고, 제본과 인쇄부터 유통까지 사람의 사람이 손을 탄 끝에 나오게 된다는 것.

좋은 가독성에 도달하려면 다양한 지식과 이해, 훈련을 갖춰야 한다.
파격을 행하기 위해서는 격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격을 무시하는 시도는 치기와 파행에 불과하다.

책 디자인의 구조를 완성하는 요소로 처음부터 ‘표지 디자인’, ‘본문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그리드·레이아웃’를 나눠놓고 이야기해 보기 편했다.

이렇게 나뉘어있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있었다. 책을 만들 때 규칙을 깸으로써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떠한 기본적인 규칙은 지켜야 한다고. 그것이 오히려 책을 더 돋보이고 편히 읽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뛰어놀더라도 암묵적인 룰 위에서 뛰어놀라는 것 같았다. 실험도, 도전도 기본이 된 후라고. 그 기본과 파격 사이의 조율은 디자이너의 역량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호는 디자이너라면 더더욱 실질적으로 얻을 정보가 많았다고 생각이 든다. 계약서 작성 시 디자인 협의, 코딩,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에 대한 조언을 가득 실었다. 그 외에도 새로운 PROJECT, SHOWCASE, INSPIRATION 소식도 흥미롭게 봤다.



SERIES - 6부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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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아쉽게도 CA SERIES 중 <하이퍼 아일랜드의 기록>이 6부를 끝으로 마지막을 맞았다.

이번 CA BOOKS를 기다리며 내심 뒷이야기를 기다렸던 코너였다. 일기같이 일과를 쭉 말하는 듯이 쓰여 있어 읽기도 쉬웠다. 그러다 공들인 프로젝트 전체가 엎어졌다는 문장을 읽을 땐 내가 다 한탄했지만, 다행히 인턴십도 잘 끝내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 같아 보는 나도 기뻤다. 물론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뜻하겠지만, 그 시작의 첫걸음을 나 또한 응원하고 싶었던 글이었다. 그를 접한 건 고작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언젠가 돌아와 근황을 이어 전해주길 바란다.



INTERVIEW - 오빠도 나도 사쿤이었다

<사쿤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INTERVIEW 글도 재밌게 봤다.

사쿤은 10대와 20대의 저에요.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지.'가 아니고
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가 편집한 것이었어요.


실은 우리 오빠의 옷장에서 많이 봐온 옷이라 눈길을 끌었다. 어쩐지 무섭기도 익살스럽기도 한 이빨과 오묘한 눈이 무언가에 타협하지 않고 내 세상을 살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타협하는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표출하는 것 같달까. 그래서 기억에 남고 좋았던 것 같다. 결국 우리 오빠도 나도 사쿤이었던 셈이다.

브랜드 쿤스의 디자이너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난 이 세네장의 인터뷰로 인터뷰이의  삶을 다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돌진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시작하고, 해보고. 그런 자유분방함과 재미있는 생각 주머니에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열정까지 지닌 사람 같아 멋있었다.

취미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하자, 그래도 떠올려보라는 집착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웃겼다. 결국 “취미는... 왜 하죠?”라는 대답을 보곤 빵 터졌다. 그래도 불굴의 의지가 먹혔는지 요리를 잘한다는 게 밝혀졌다. 역시, 취미는 없을 수는 없다. 잘~찾아보면 있다. 그게 누워서 과자 먹기라고 하더라도. 아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

CA BOOKS를 두 번째 접하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온다면, 두 번 찾아볼 정도인지 물어온다면 이건 두 번 보는 잡지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매 새로운 소식들을 가져와 채워놓는 늘 새로운 잡지다. 그래서 신선하다. 그렇지만 디자인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 다양한 색깔을 드러낼 것이다. 이번에도 보라. 바다에서 헤엄치다 땅에 발을 디디지 않았는가.

이 잡지의 매력을 또 알았달까. 이제 하나하나의 섹션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감이 조금 잡혔다. ‘아 이런 프로젝트가 있었구나.’, ‘지금 주목하는 소식은 이거구나.’ 눈도장을 빨리 찍을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선 어떤 기획기사를 다룰지에 대한 궁금증도 한몫한다. 이게 아마 잡지를 받는 하나의 기쁨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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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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