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하우스, 깁스, 셜록) [시각예술]

글 입력 2018.10.1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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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별, 캐릭터별 스포일러(HOUSE M.D, NCIS, Sherlock 포함)가 있습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단 건 권태로움 역시 느낄 수 있단 말일 것이다.  한창 푹 빠져 있었고 영어실력 향상을 핑계로 시작했던 게 외국드라마였다.  왜 이 모든 게 과거형이냐면 요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첫 눈에 반한 적 없지만 드라마는 처음 보는 순간 느낌이 온다. 괜찮다, 아니다 수준을 넘어서 이건 내 취향 저격이다 싶을 땐 여기 드러누워야겠다 싶다.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모토는 성공한 덕후가 되는 것이다. 무척 좋아하는 이 캐릭터들을 꺼내는 건 좀 시원섭섭하긴 하지만 여전히 그 모토는 유효하고 휴식기가 길어지니 그리움을 담아 써보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몰라도 나에게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가 사랑하는 외국 드라마 속 남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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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미국드라마 <HOUSE M.D>의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 프린스턴 플레인스보로 병원 진단의학과에 몸담고 있다. 까칠하지만 능력있다. 매우. 사실은 마음이 아주 못되지는 않은 츤츤츤데레. 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양보하며 겸손이 미덕이라도 배웠으나 그 모든 것을 저버리는 캐릭터라서 좋았다. 딱히 사랑받으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하다 못해 친구 역시 많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 그러나 그에게도 한 명의 션샤인같은 친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동료 의사 윌슨이다. 하우스가 아주 못돼쳐먹은 행각을 일삼아도 윌슨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드라마의 끝을 보면 하우스 역시 윌슨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혀 낯간지럽지 않은 모습으로 그런 우정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보다 어쩌면 우정이 더 대단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던 사이기도 하다. 의사라고 꼭 사람을 살린다는 대단한 가치와 책임을 위해서(타노스 급의 진지함) 의사가 될 필요도 없고 그는 그저 증상을 모은 퍼즐이 어떤 병을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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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와 존 왓슨에서 영감을 얻고 아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해서 어차피 취향저격이긴 했을 것이다. 의학드라마답게 온갖 병명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귀가 뚫리는 체험을 한 첫 드라마기도 했다. 그러나 영어 실력보다 남은 건 하우스처럼 독설가이자 실력자가 되고 싶었던 욕심과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도, 변하지도 않는 소중한 벗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verybody lies.'라는 하우스의 말이 그리 날카롭게 들리지 않았던 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내가 만난 수많은 표본의 사람들 역시 그 말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누구나 사정은 있었고. 진실이란 거짓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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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처럼 오가는 대화가, 말 속에 숨겨진 마음을 알아차리는 날카로움이, 비판에도 발끈하지 않고 칭찬에도 으쓱하지 않았던 하우스는 참 닮고 싶은 사람이다. 공을 튀기며 생각을 정리하던 모습도, 고통을 이기려고 물도 없이 털어넣던 주황색 약통 속 바이코딘도, 이따금 연주하던 피아노도, 두꺼운 라이더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며 지팡이를 절뚝거리는 그 뒷모습까지. 많은 모습이 아른거려 다시 찾아보고 싶은 존재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존재가 생기면 왠지 그 사람을 따라하는 버릇이 있다. 성격 더러운 천재, 그런게 되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여튼 그런 존재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덕분에 호구처럼 사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상냥하게 하는 건 멈출 수 있었다. 그 시점부터 독설을 퍼부을 수 있었으니까. 어떨 땐 의도하지도 않게 사람들이 상처받은 걸 본 적도 있었다. 하우스에 대한 애정이 비뚤어진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건 나고, 가끔은 그의 비아냥과 쓴소리는 그립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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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NCIS(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의 리로이 제쓰로 깁스. 하우스에게 독설과 인간 신뢰의 문제를 배웠다면(상당히 진지하게 들리겠지만 뻘소리다) 해군범죄수사대 깁스에게서는 원칙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여러 모습이 있다. 쉬는 때는 배를 만들고 알고 보면 첫사랑 트라우마가 있다. 갈색머리의 첫째 부인을 잊지 못해서 결국은 둘째, 셋째 부인도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결국 모두 이혼. 그도 그녀들도 깨닫고 만다. 그가 그 여자를 잊지 못했다는 걸. 그는 과거 꽤 굉장한 스나이퍼였고 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죄책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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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사로서, 팀원으로서 그는 소나무 같다. 어쩌면 그가 가진 모습들 중에 가장 그에게 매력이 있는 건 바로 그의 규칙 덕분일 것이다. 같은 팀원들에게 자신의 규칙을 말해준다. 가령 약해보이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Rule 6: "Never say you're sorry. It's a sign of weakness."), 개인적인 감정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Rule 10: "Never get personally involved in a case.") 이용당한 것 같다면 대체로 정말 이용당한거다(Rule 36: "If you feel like you are being played, you probably are"). 혹은 우연이란 없다거나(Rule 39: "There is no such thing as coincidence." ). 모든 규칙은 그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그가 살아갈 때 혹은 일을 할 때 내리는 선택에 그대로 적용된다. 다른 이들이 그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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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듯 따듯한 게 깁스의 매력이라면 그의 곁에서 오래 남아있는 팀원이자 부하 직원인 토니 디노조는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능글맞고 위트가 넘쳐서 온갖 영화를 인용하는 유쾌한 수다쟁이다. 바람둥이 같이 가벼워보이지만 사실은 진지하고 고민이 많기도 했고. 시즌마다 깊어지는 토니의 눈빛에 놀라기도 했고 깁스와 토니 둘의 관계도 거의 부자관계, 보통 직장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사이라 부럽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팀원들이 변하는 만큼 늘 한결 같이 중심이 되어준 깁스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우스가 변덕스럽게 사람들에게 골치를 선사했다면 깁스는 늘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의 팀에서 남녀불문 매력적인 캐릭터가 하나하나 많았지만 역시나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역시 깁스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에게서 또 닮아보겠다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겠다고 그러고 있다. 말하자니 남사스럽지만 내게도 몇 개는 생겼다. 깁스는 50개도 넘는 규칙이 있는데 나는 몇개나 만들게 될지 궁금하다. 깁스는 내가 나이들었을 때 닮고 싶은 사람이다. 충분히 존경할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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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론 영국드라마 <Sherlock>의 셜록 홈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왓슨을 무척 아낀다는 건 비슷하지만 나름 매너있고 자상한 모습인 반면에 영국드라마 셜록도 거의 하우스정도의 까칠함을 자랑한다. 사이코패스라고 사람들이 비난을 해대니 자긴 고품격 소시오패스라잖나. 셜록에게선 위 두 캐릭터에게 배운 것보다는 생활 속 모습을 따라하고 싶은 게 많았다. 추리소설 원작을 읽었던 터라 비교하면서 보고, 설명한 걸 보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정말 좋아한 걸로 치면 이쪽이려나. 따라하긴 힘들지만 원래 좋아하던 영국 영어의 악센트. 블랙커피에 설탕 두개를 넣고, 집에서 지루함에 총질하면서 입는 푸른 가운, 생각에 골똘히 잠길때 두 손을 모으는 자세. 아마 에피소드가 두 드라마에 비해서 한 시즌에 세 편밖에 안되니 계속 돌려보고 대사를 거의 외우고, 친구들에게 보라며 usb에 넣고 다니며 홍보를 하고 다닌 건 셜록이 유일하다. 홍보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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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정이 깊었던 만큼 기대가 커졌고 실망 역시 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날이 전개가 탐정인 셜록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정줄이 떨어지게 된 건 어떠한 이유든 그가 살인을 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빈약해진 추리. 보다 커진 액션. 한국드라마와 거의 비슷해진 은근 막장 전개까지. 너무 신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점점 애정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얼른 정 떼게 더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정말 좋아하는데 다시 보기가 좀 두려워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셜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첫 편일 것이다. 'Afghanistan and Iraq?' 하면서 한 마디로 존을 꿰뚫어보고 눈을 찡긋하던 셜록. 독백이자 속사포 랩에 가까운 셜록의 추리에 감탄하는 존의 칭찬에 머쓱해하는 허당 셜록. 칭찬에 목말랐던 셜록과 사실은 스릴을 즐겼던 왓슨의 은근한 미소로 끝나던 첫 만남까지. 뭐 하나 내려놓을 수가 없이 셜록을 아낄 수 밖에 없다. 알고 보면 하우스, 깁스와 비교했을 때 제일 나이 상 막내이기도 하다. 젊고 트라우마나 상처도 상대적으로 적어서 채워가야할 빈 공간이 많은 느낌이라 좋다.
  
내가 사랑하는, 닮고 싶은 조금은 비뚤어지거나 상처받은 세 남자. 어쩌면 그렇게 푹 빠져있었기에 속으론 휘몰아치던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캐릭터에게서 배워가는 점도 있었지만 아마 그렇게 위안을 삼고 또 다음날을 시작하던 나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여자 중에서도 닮고 싶은 이름이 있다. 엘리자베스. 성은 스완, 베넷. 그건 또 다시 캐릭터가 그리워질 때 나누는 걸로!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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