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공연]

말할 수 있는 용기, 아니 어쩌면 솔직할 수 있다는 것
글 입력 2018.10.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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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공부는 잘 했지만, 딱히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도 더 없었고 그저 수능 공부만을 계속 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수능을 치고나면 내가 아는 모든 게 끝나고, 아예 새로운 것을 해야 하기에 두려웠던 때였다. 나는 그래도 내가 뭐라도 찾아보면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고민을 했다. 2학년 때 진로탐색 동아리를 만들었다.

라온하제 ; 즐거운 내일

이라는 순우리말로 된 동아리 이름을 지었다. 그 당시에 우리학교에는 과학실험 동아리와 요리 동아리가 가장 인기있는 동아리였는데, 내가 만든 동아리와 더불어 TOP3가 경쟁률이 가장 치열해서 면접을 봐야 하는 동아리가 되었다. 요리 동아리는 나와 아주 친한 친구가 회장을 하고 있어, 우리의 친구들은 그 친구와 내 동아리에 골고루 나눠서 들어왔다. 주로 문과 친구들은 요리 동아리로 갔고, 이과 친구들은 내 동아리로 들어왔다. 과학 실험 동아리 사람들은 우리 동아리를 질투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있었는데 내 앞에 앉은 친구에게 와서,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꿈이 없나?

생각없이 요리는 왜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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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너의 꿈만이 정답이 아니며, 너가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 것만은 아니라고, 당시엔 용기가 없어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있는 말들이기에 너무 아쉽고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앞에서 말할 용기가 없었기에 sns에 욕을 잔뜩 적었다. 정작 내가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한 채, 주제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성형 수술을 한 친구를 욕하기도 했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들을 많이 적어놓았다. 얌전하고 공부만 하는 줄 알았던 애가 그런 욕까지 할 줄 안다고, 반 친구들이 상당히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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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은 결국 너무 커져서 학교폭력위원회에 접수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동아리 친구들 몇명과 과학 실험 동아리 사람들 몇명을 맞대고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게 시켰다. 사건은 화해한 듯, 화해하지 않고 풀렸지만 나는 그 일을 평생동안 잊을 수가 없다. 정작 화가 났던 것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나에게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인데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비방했고, 그렇기에 더더욱 사과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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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과학실험동아리 그 애는 그 얘기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여고에 다니고 있었음에도, 그 애는 우리반에서 "걔랑 진짜 둘이 사귀나?"와 같은 유언비어를 아무렇지 않게 떠들고 다녔다. 그 역시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속으로만 화를 냈던 내 잘못이기도 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내 편을 들어주셨다. 다른 애들은 "공부 잘 하는 애라서 차별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머리가 나빴고, 너네들이 놀고 잠을 자는 동안,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복습을 하고 예습을 했을 뿐이었다. 학교에선 우리 부모님이 두 분 다 서울대를 나오셔서 내가 비겁하게 공부를 잘 하는 것처럼 소문이 났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머리가 좋지만 대학에 갈 돈이 없으셔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믿고,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닌다. 마치 나까지도 그게 사실일지 모른다고 믿어버릴만큼. 어쩌면 내가 너네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으로 공부를 잘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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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꿈이 없었다. 진로동아리를 운영하는 것에도 굉장히 큰 회의감이 들었다. 진로체험을 하려고 선생님과 한달 전에 약속을 잡아두고, 막상 당일이 되면 다 잊어버려 돈을 지불하지 못했다. 평소에 돈을 모아두는 친구가 약 18만원 정도를 빌려줘서 겨우 선생님과의 약속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 일이 하나씩 일어날수록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동아리를 점점 놓았다. 우리동아리는 처음에 그 인기있던 동아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흔한 자율학습 동아리가 되어 다들 시험 공부를 했다. 어쩌면 동아리 회장이 이번에는 신선한 주제를 들고 오지 않았을까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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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안 믿기겠지만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문화초대의 Preview였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기 위해 억울하게 강도 누명을 쓴 사람이 출소한 뒤, 딱 한번만 배를 찌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블랙 코미디 연극이다.

딜레마 속에서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최대의 용기' 뒤에도 요구되는 '최후의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다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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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2016년을 배경으로 하는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를 보며 사람들은 그들의 최후의 용기에 그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하는데, 그 감탄사를 제목으로 붙였다고 한다.

사실 군사정권 시대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그저 권력에 무릎을 꿇는 아첨하는 인물들, 그리고 늘 정권에 희생당하는 소시민들이 떠올라서 답답해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엄청 고민하다가 문화초대 직전에서야 신청을 했다.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이용당하고,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도 이용당해야 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야 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유란 것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 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저 살기 위해 살고 있다는 것도, 무언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정말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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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


일자 : 2018.10.25(목) ~ 11.04(일)

시간
평일 7시 반
주말 3시
월 공연없음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재)서울문화재단, 창작집단 상상두목

제작
남산예술센터, 창작집단 상상두목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문의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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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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