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otal Eclipse> - 영원한 하나가 되다 [영화]

그들의 예술은 사랑과 증오, 그 경계 어딘가였을까
글 입력 2018.10.1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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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말, 수험생 시절 룸메와 함께 기숙사에 웅크려 앉아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본 그때가 이 영화, <토탈 이클립스>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사실 처음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영화이기에 화질도 깨끗하지 못했고, 화려한 액션 영화에 길들여져 있던 나이기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의 초반부는 살짝 지루하다고도 느꼈다. 물론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디카프리오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크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 영화가 끝났을 때, 룸메와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열띤 토론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고3이라는 본분을 잊고 영화의 모든 리뷰, 해석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게 만든 최초의 영화였다. 그렇기에 수능이 끝난 후 가장 먼저 다시 찾은 영화이기도 했으며, 꼭 한 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대사 그리고 영화를 이끌어갔던 장치인 ‘동성애’에 관해 생각해보며 이 영화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Put your hand on the table.”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으면서 동시에 가슴을 울렸던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고민 없이 베를린느(데이빗 듈리스)와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서로의 손바닥에 상처를 입히는 장면을 꼽을 것이다. 시작부터 이 둘의 관계는 애증으로 보였다. 베를린느는 자신에게는 없는 문학적 천재성을 어린 나이에 유감없이 발휘하는 랭보에게 감탄했고, 그런 그에게 질투를 느끼는 동시에 사랑하지만 랭보는 베를린느에게 사랑 표현을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베를린느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며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랭보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보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베를린느의 손바닥을 칼로 찔러 버린다. 이것이 랭보가 베를린느에게 남긴 상처다. 하지만 몇 년 후, 베를린느의 아내 마틸다를 떠나기 위해 유럽 곳곳으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베를린느에게 지칠 대로 지친 랭보가 그를 떠나려 하고, 그에 베를린느는 광기에 휩싸여 홧김에 랭보의 손바닥에 총을 쏘고 만다. 이것이 베를린느가 랭보에게 남긴 상처가 되면서 두 사람은 같은 상처가 생기게 된다. 두 사람이 같은 상처가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랭보가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랭보의 여동생이 베를린느에게 찾아와 랭보가 에티오피아에 있을 적 무릎을 다친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들은 베를린느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이다.


“그것 참 이상하군. 나도 같은 상처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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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의미하는 바에 관한 해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나의 견해는 이렇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나 결국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뒷부분에서 영화의 제목인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와 관련하여 자세히 논하기로 한다.) 상처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더욱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랭보가 죽고 몇 십 년이 지난 후, 랭보의 여동생을 만난 베를린느가 랭보와 함께 즐기던 압생트를 마시며 그를 추억하던 중 그의 눈앞에 랭보의 환상이 나타난다. 베를린느는 어김없이 예전처럼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 부탁하고, 이번에도 랭보는 손바닥을 탁자 위에 올려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신이 상처 입혔던 베를린느의 손바닥을 찬찬히 어루만지더니 그 위에 입을 맞추며 행복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견을 말하자면 그 장면의 의미는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움과 증오가 얽혀 결국 헤어졌던 그들이었지만, 마지막에는 그 증오의 상징인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모든 미움을 잊고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I'm very fond of you.”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I'm very fond of you.”인데, 바로 위에 언급한 장면과 연관된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며 요구하는 베를린느에게 랭보가 늘 하던 대답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널 많이 좋아해.”라는 뜻인데, 랭보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베를린느가 바라던 ‘love’라는 단어를 아낀 것이다. 이 대사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았다. 혹자는 랭보가 끝까지 베를린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도 간간히 확인할 수 있듯, 랭보는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고 지원해주는 베를린느를 물주로 보았기에 그를 아꼈을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글만 쓸 것이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에게 집착하는 베를린느에게 결국 지쳐 그를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의 의견도 있는데, 내 생각도 이와 상통한다. 랭보는 오히려 베를린느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했기에 끝까지 ‘love’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부에 나오는 랭보의 대사 중 이런 것이 있다.


“가족이나 결혼을 지속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어리석음이나 이기심, 공포죠. 사랑은 존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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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사이다. 그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시대에 앞서 가려져있던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베를린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그가 말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은 ‘좋아한다’였다는 것이다. 만약 랭보가 베를린느에게 ‘love’라는 단어를 순순히 말해주었다면 그것이 랭보가 베를린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랭보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에 ‘사랑한다’가 아닌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그에게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Tell me you love me.”

세 번째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동성애’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요소이지만, 그만큼 비판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단순히 ‘퀴어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비판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이유는 조금 다르다. 물론 여전히 동성애에 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더 큰 이유는 영화 속 ‘동성애’라는 요소가 너무 크게 다루어져 정작 베를린느와 랭보의 문학적 재능, 즉 ‘시’라는 예술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의견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분명 실제 인물이자 천재 시인이었던 베를린느와 랭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능은 크게 와닿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까지 폄하 받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느는 당시 인정받지 못하던 랭보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그 이유만으로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곁에 두고자 한다. 또한 부유한 생활과 젊은 아내를 버리고 그와 함께 도망갈 정도로 랭보의 재능을 아끼고 탐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영감을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랭보도 시골 출신의 가난한 시인이었지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베를린느 덕에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는데, 그들의 이 같은 공생관계는 초반부 두 사람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거래해요. 날 도와주면, 나도 당신을 돕겠어요. 우리가 함께 떠난다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서로 가진 걸 최대한 나눠 가진 후 각자 갈 길을 가는 거죠.”

“뭘 먹고 살지?”

“돈 가진 것 좀 있죠?”

“알만 하군. 내가 널 먹여 살리면 넌 나의 녹슬어 버린 영감을 되살려 주겠다는 거군. 그렇지?”

“꼭 그런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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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사실을 되짚어보면 그들에게 있어 사랑, 즉 동성애는 예술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는 각자의 예술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그러한 관계를 유지하려다보니 사랑의 감정으로 변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와 내용까지 깎아 내리는 행동은 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이 같이 인상 깊은 장면, 대사, 그리고 영화의 중요 요소인 동성애에 관해 생각해보니 영화의 제목인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의 의미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클립스’는 번역하면 ‘일식(또는 월식)’이고, 그것을 ‘토탈’이 수식하고 있으니 ‘완전한 일식(월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일식(월식)의 사전적 정의는 ‘지구상에서 볼 때 태양이 달에 의해서 가려지는 현상’(‘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하여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다. 영화 평론가들과 여러 블로그의 영화 리뷰를 보니 베를린느가 태양, 랭보가 달을 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앞서 보았듯 두 사람은 성격, 예술적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같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서로는 지쳤고,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서로를 생각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갔다. 즉 이 둘은 태양과 달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는 ‘토탈 이클립스’처럼 완벽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결합에 관해서는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랭보의 대사가 증명해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번역보다는 영어 원본이 대사의 느낌을 더 잘 살린다는 평이 우세하고, 나 또한 그에 동의하기에 아래 랭보의 대사와 함께 베를린느가 마지막으로 랭보를 추억하며 말하던 대사의 의미를 곱씹어보며 글을 마치겠다.


“I found.”

“What?”

“Eternity. It's the sun mingled with the sea.”



“그가 죽은 후 매일 밤 그를 보았다. 나의 가장 크고 찬란한 죄악. 우린 행복했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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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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