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걸어 떠나는 여행, 내면과 외면의 만남, 스페인 산티아고

글 입력 2018.10.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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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 전에 EBS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화 160만원으로 다녀온 한국 청년의 이야기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남자의 무모함에 관심이 갔다. 수중에 돈 50만원만 남기고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고, 여행을 가서는 160만원이 동 날 지경에 이르자 대학 동아리 때 배운 팬터마임으로 길거리 공연을 하며 간간히 버텨가며 걸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거창하게 마음먹고 가는 유럽 여행인데 비교적 적은 돈으로 자신의 큰 가치를 발견하고 온 사나이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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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과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을 보냈던 터라 대학생이 되자 길 잃은 강아지마냥 방황하곤 했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으며 하루 일과를 교칙이나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오롯이 내 의지로 일궈나가는 생활이 참 낯설었다. 강제성이 없는 나날은 일정한 기분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빈번했다. 예민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지금은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삶을 매우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하지만 ‘혼란’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졸업 작품을 끝내고 처음으로 맞이한 휴학 라이프이다. 확실히 여유롭다. 휴학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번 돈으로 가는 유럽 여행이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유럽을 가면 꼭 스페인 순례길을 들르자고. 다만 지금 계획하고 있는 여행에서는 짧은 코스를 갈 생각이다. 아직 계획도 완전하지 않지만.



순례길이라고 힘들지만은 않아

 
5년 전 알게 된 저비용으로 순례길을 다녀 온 한 남성에 이어 혼자 순례길을 다녀 온 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책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의 저자 박재희님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수많은 물음들을 뒤로 한 채 스페인에 왔다. 인간에게 있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을 때가 가장 힘든 것이라고 한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그녀가 순례길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녀는 어땠을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경험들이, 이야기들이 옆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새록새록하다.

여행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 그녀가 만났던 다양한 국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네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서 맞닥뜨린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었던 힘, 바로 주변에서 함께 걷고 있었던 순례자들 덕분이 아닐까. 현실에 힘들어, 사람에 치여서 떠난 여행에서도 결국 사람에 의해, 환경에 의해 치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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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하더라. 최근 어떤 책을 읽었는데 하루 3개의 감사한 일을 일기에 쓰는 습관을 들여 보라고 했다. 한 번 해봤다. 평소 내가 얼마나 감사를 안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말을 그냥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는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정말 사소한 일이라도 마음 한 칸에 남아있다면 하루 감사 리스트에 추가해도 좋다는 말이다. 나부터 시작해보겠다.


< 오늘 감사한 일 >


첫 번째,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내가 직접 준비한 브런치, 감사히 먹었다.


두 번째, 밀린 영어 학원 숙제를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많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세 번째, 과식을 하지 않고, 절제하는 식사를 했다. 식욕을 참은 내게 감사하다.


 
이렇게 사소한 감사가 평범한 일상이, 내 곁에 항상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른들이 말한 모두가 꿈꾸는 평범한 삶이 이제는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실 나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다. 적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알며, 때로는 우울을 달고 사는 날도 많다. 이런 내가 스페인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면 하루에 롤러코스터를 몇 번 타게 될까, 잔잔한 호수일 수만은 없을 거 같다. 차분한 거 같지만 불같은 성질이 있고 꼼꼼해 보이지만 많이 덜렁댄다.

최근에는 문득 새롭게 사람들을 사귀는 것도 버겁다. 어쩌면 내 평소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일 것이다. 순례길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퍽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아, 그래도 붙임성은 좀 있는 편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은가. 너무나도 좋다. 저자의 이야기들도, 이야기 속 순례자들도.



나를 마주하러 떠나는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의 약 2배 넘는 거리이다. 길을 내내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어야하나. 걷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순례길 여행 연습 중이다. 잡생각도 많고 걷기 좋아하는 나에게 괜찮은 여행 테마이다. 정말 고단할 것이라는 예상이 들지만, 연간 15%만이 성공하는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엄청난 도전이 될 것 같다.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무모함이란 씨앗을 무심결에 던진 우근철 작가님도, 힘들었겠지만 이겨낸 박재희 작가님도 나에게 간접적으로 산티아고를 선물해주었다.

낯선 땅에서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순례자의 길 위에서 걷는 거라면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어서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 나를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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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


지은이 : 박재희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분야
여행 에세이

규격
변형 신국판(143*195), 전면 컬러

쪽 수 : 320쪽

발행일
2018년 9월 5일

정가 : 16,000원

ISBN
979-11-88829-05-7 (03980)

*

문의
디스커버리미디어
02-587-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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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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