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뒷모습

도서 뒷모습
글 입력 2018.09.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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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첫인상은, 수많은 책들 중 "뒷모습" 그 이상은 없었던 책 제목. 그래서 '평범한 길이의 제목'들(가끔은 부제목까지 따라와 더 길어진 책 제목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도서 리뷰에 미처 담지 못한 뒷모습에 대한 내용이 떠오르면서 홀린 듯 책을 선택하여 살펴봤다. 뒷모습, 뒷모습. 아마 그 때에도 느꼈을 묘한 느낌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뒷모습'이란 단어가 내게 주는 느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책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연이라기엔 운명처럼 만난, 운명 같다고 말하기엔 우연에 가까운, 뒷모습이라는 이미지와의 더 진한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술이 탐닉한 인간과 세계의 뒷면"


뒷모습
_이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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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듯 우연이 아닌 듯, 이런 애매한 표현으로 정리 할 수 있는 도서 『뒷모습』과의 만남은 정말 '뒷모습다웠다'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뒷모습,
나에겐 눈앞에 선명히 존재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이마저도 겨우 머릿속에서 완성한 문장이긴 하지만. 뒷모습, 막상 생각하려니 너무 묘한 것이었다. 존재함으로써 모호한 것이라는.

내가 어느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 뒷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그 혹은 그것은 어떤 존재인지, 앞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나는 왜 그의 뒷모습을 마주하고 있는지. 그 감추어진 모습에서 전해지는 왠지 모를 아우라 끝에서 떨어지는 질문들은 뒷모습이라는 이미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물어 본다. 달리 말하면 그 뒷모습만으로도 나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알지만 모르는 ‘뒷모습’은 그렇게 아무말 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건네고 있었다. 선명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물어보는 이미지, 보이기 때문에 알지만 여전히 모를 뿐인 것이다.

아마 이것이 내가 느낀 '뒷모습다움'이었을까. 누군가의 단순한 뒷모습에 여러 감정과 생각이 이끌릴 수 있듯이, 수많은 책들 중 아무 설명 없이 단순히 '뒷모습'이라는 단어가 걸린 책에게 이끌려 글을 쓰는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뒷모습. 뒷모습.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그저 끌리는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존재만 알 뿐 그 이상은 알 수 없는 듯한. 유독 그런 느낌이 강했던 책과의 만남이었다.





'모습'은 보이고 보여지는 것이다. '뒤'는 부정적인 의미, 뭔가를 숨긴다는 의미를 담는다. 뒷모습은 세상이 스스로를 가리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가리는 방식이다. 거꾸로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책은 뒷모습이라는 커다란 역설과 신비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려는 작은 시도이다.

- 들어가는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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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함메르쇠이, <실내>


그림 속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쪽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모델은 자신의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혼자 있던 시간 속에서 그녀는 햇빛 속에 실내를 떠도는 먼지를 바라보며, 바닥이 삐걱대는 소리를 들으며 고독에 잠겼으리라. 그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깊고 음울한 침묵을 그릴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뒷모습은 누군가에게 부러 등을 돌린 것이다. 함메르쇠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순수한 뒷모습’이라는 역설이다.

- 113p


이 도서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자의 에세이다. 더 정확히는 저자의 인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객관적인 감상보다는 저자의 작품에 대한 에세이적인 감상에 더 무게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많은 미술에 대한 책을 써 온 저자인 만큼 에세이적이나 작품에 담긴 뒷모습을 살펴보는 시선은 더 깊은 것임을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속 뒷모습을 읽어내는 관심 어린 시선과 그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들이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넘어 '뒷모습'이라는 모호한 존재에 더 주목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책의 분량은 다른 책만큼이나 길지 않지만 이야기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뒷모습'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려 머무는 시간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길어진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스스로를 가리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가리는 방식이라는 역설의 긴밀한 사이를 차근차근 살펴보려는 시도는 그런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 이 사이를 살펴보기 위해 이미 정해진 것을 말하는 것보다 대상을 향해 내가 건넨 질문을 스스로에게 돌려주어 그것에 내 사색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저자가 건넨 '뒷모습'이란 이야기에 나 또한 의미라는 무게를 조금 더 더하며 읽어 가는 ‘뒷모습’, 도서 『뒷모습』을 읽는 과정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이 도서의 내용은 "이 작품은 이렇습니다!"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뒷모습이라는 것은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혹은 본인조차도 모를) 알 수 없는 모호한 것이기 때문에 저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어떻다, 어떻다 라며 확신을 무작정 찍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도 독자도 100%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주제 아래에 있다. 그래서 이 도서의 무게는 어쩌면 독자가 함께하며 더해가는 도서다. 작품 속 뒷모습은 나에게 어떤 것을 말하는지 함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모호함이 가진 넉넉함은 이 도서의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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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떠오르는 태양 앞의 여인>
 

<떠오르는 태양 앞의 여인>은 부인이 자신의 뮤즈임을 선언한 듯한 그림이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대체로 비관적적이고 우울하지만 이 그림은 긍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림에 화가 자신이 제목을 붙이지 않았기에, 이게 해가 뜨는 장면인지 해가 지는 장면인지 알 수 없다. 그림의 의미는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내달린다.

- 86p





『뒷모습』을 읽다 희미한 뒷모습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려 보려고 멈춰보기도 했다. 기억마저 애매한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뒷모습들. 그래, 뒷모습이 그렇게 바라보는 이에게 많은 감정과 물음을 건네 왔었구나, 아무 말 없이도 그 자체로도 쏟아지는 언어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의 뒷모습은 무엇을 말하고 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많이) 아쉽기도 하다. 나는 나의 뒷모습을 절대 볼 수 없지 않은가. 당연히 찬찬히 바라볼 수도 없다.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저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스스로의 뒷모습을 볼 수 없지만 뒷모습을 암시하는 부분을 볼 수는 있다. 손등이다.

- 67p


뒷모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앞모습이 있다면 당연히 뒷모습도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성립한다면 ‘뒷모습‘은 정말 무수히 많다. 개인적으로는 '뒷모습'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오던 나는 5장의 "손의 뒷모습"으로 손등을 이야기하는 장을 만났을 때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나의 뒷모습을 궁금해 하며 아쉬워했던 내게 장을 시작하는 첫 문장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손등, 이 책에서 만난 내용이 아니었음 내가 언제 손등에 주목해볼 수 있었을까.

그래서 가장 짧은 장이었지만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장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사람의 몸에서 작은 부분인 손을, 그 중에서도 손등을 이야기 하는 장이지만 저자의 작품 속 손을 묘사하는 세세한 표현과 함께 풀어지는 감상을 충분히 그 손이 가진 뒷모습이 가진 매력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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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가 습작으로 그린 <기도하는 손>은 마주댄 두 개의 손을 묘사했다. 기도하는 손은 등을 내보인다. 손등은 딱딱한 나무껍질 같다. 바깥쪽으로는 메말라 비틀어지고 바스러지지만 안쪽으로는 싱싱한 수액이 흐른다. 손끝이 경건하게 하늘을 가리키는 와중에도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공모한다. 뒤러는 화가로서의 욕망에 굴복했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구부러지게 그린 것이다. 완전히 닿지 않은 두 손바닥의 사이로 사이로 균열처럼 동요를 내비친다.

- 69p


작품을 보고 나서 읽은 첫 문단은 그 이상을 읽기 전에 다시 작품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첫인상은 단순한 손을 묘사한 그림에서 글을 읽은 후 다시 본 작품은 그 손에 그어진 주름들과, 손등에 비친 핏줄과, 조용히 구부러진 손가락과, 손등 뒤에 가려진 반대 손의 손바닥과 두 손바닥 사이에 이루어진 공간까지, 손을 살펴보는 눈을 작품 속 더 깊은 곳까지 끌어 당겨주었다. 그저 몸의 일부인 손에서, 하나의 주체로서의 손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체로서 손을 바라볼 수 있다면, 손등은 제 크기보다 한 사람의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손등에 드러난 주름과 핏줄, 그것이 가진 결,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고 있던 무의식적인 손짓의 뒷모습으로, 그렇게 어쩌면 더 깊숙한 어딘가에서 말이다.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작품 속에서 손짓에 상징을 부여함으로써 의미를 표현하던 옛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지나치기에는 주체로서의 손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것의 뒷모습인 손등은 꽤나 많은 것을 투영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대신 이를 암시하는 곳이 손등이라고 했던 것일까.


나는 스스로가 영 미덥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자판 위의 손은 어딘지 든든해 보인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 이상하게도 자판 위의 손은 어딘지 든든해 보인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 나의 의지와 계산은 손을 따라가지 못한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손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나를 잡아끌고 일을 굴린다.

- 67p


그렇다면 나의 손등은 어떻게 나의 뒷모습을 말하고 있을까. 나의 손짓은 지금까지 무엇을 말해왔나.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저자가 도서 속에 언급했던 것처럼 타자를 치고 있는 나의 손등을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의 손도 내게 든든한 존재인가. 지금까지 많은 것을 내 의지에 따라 묵묵히 써온 유일한 것이기에 정말 맞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나의 손은 내게 어떻게 남아있을지, 그것의 뒷모습인 손등은 무엇을 투영할지 시간을 바라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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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사람들의 뒷모습을 쉬지 않고 볼 수밖에 없는 연휴동안 읽은 『뒷모습』은 그 가벼운 무게까지도 이때에 읽기 딱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책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자면 내용도 겉모습도 부담스럽지 않은 도서 『뒷모습』이 좋았다. 다른 말로는 책을 펼치는 것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독서를 일상에 비유하자면 『뒷모습』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색하는 산책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도 인문도 좋다면 이 책은 독서라는 일상 속 즐거운 산책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미술도 인문도 사실 잘 모르겠다면 부담 없이 이 책을 통해 산책에 걸음을 내딛어 보아도 괜찮은 책이다.

뒷모습에서 맴돌다가,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에 아쉬워하다, 손등을 통해 나의 뒷모습을 암시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미처 바라보지 못한 ‘손‘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해 본 리뷰가 되었다. 도서 『뒷모습』을 통해 만나고 사색한 것들은 모두 눈앞에 있으면서도 숨어있는 것들이었다. 너무 익숙하면 보이는데도 숨어버리는 왠지 모르게 슬픈 마법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뒷모습』은 내게 처음으로 그 마법의 뒷모습을 함께 살펴보는 넉넉하고도 진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나'라는 존재에 모호하다는 수식어를 끌어오고 싶던 나에겐 좋은 만남이었다. 모호하다는 것, 생각보다 매력적이란 걸 『뒷모습』을 읽으며 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모습에 대한 자유로운 고찰은 내게 더 즐거웠다. 뒷모습에 괜히 이끌리는 사람인 나와 저자 사이 책을 두고 일어나는 운명 같은 만남이었던 걸까. 우연이 우연이 아닌 이유는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 정보]


뒷모습은 더 집요하고 완고하게 보는 이를 붙잡는다.
뒷모습은 빛을 받으러 온 자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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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저자
이연식

분야
미술

면수
144면

가격
13,000원

출판사
이봄

발행
2018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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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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