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보라색을 닮은, 기본에 충실한 뮤지컬

글 입력 2018.09.2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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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을 닮은, 기본에 충실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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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라색이 참 좋다. 푸른빛이 강하지도, 붉은 빛이 강하지도 않은 딱 반반이 섞인 보라색. 청보라와 자주빛도 좋지만 정반대라 여겨지는 색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룬 보라색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곧 25살을 앞두고 아이유처럼 진한 보라색이 좋아지는 건지, 늘 보라색을 찾아다닌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룬 보라색은 참 신기하다. 붉은 색의 밝고 명랑한 느낌과 푸른 색의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보라색 특유의 우아하고 도도한 분위기가 섞여있다. 이런 보라색을 보다보면 총 천연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가을하늘도 생각난다. 가을 하늘은 깊고 높으며 여러 색을 끌어안고 있다. 낮 시간의 밝은 하늘색과 저녁 어스름의 붉은 끼와 새벽녘의 보랏빛, 어두운 밤의 남빛과 검은 빛을 가진다. 특히 요즘 하늘은 이런 넓은 색의 스펙트럼을 끌어안는 보랏빛깔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하늘을 보면서 종종 사색에 빠지곤 한다.

여러 색을 끌어안으면서도 균형을 지킨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빛깔을 내뿜으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안정감있게 존재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같다. 지난 2년 정도 이리 저리 다양한 국가와 사회생활을 하며 돌아다니던 내가 마지막으로 졸업을 위해 다시 학교로 안착한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내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기본에 충실하기'였다. 올 한해 나는 일을 배우고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직업적으로도, 한 개인으로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지난 여름 겪었던 깊은 우울은 내 감정 전체를 집어 삼킬 만큼 강렬했고, 이후 사회를 바라보고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볼 때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를 넓혀주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감정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진 느낌이다. 아무튼 학교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이해하기였다. 왜 나는 그런 지독한 우울감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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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생각보다 쉬웠다. 안정된 일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게는 4달, 2달에 한번씩 이사를 다녔고, 일상을 겪던 위치도 계속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서울에서 나 한 명을 위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나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이라는 공간에선 안정된 일상을 살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갑갑했다. 발전과 역량을 택하기엔 당장 살 곳조차 없고, 그렇다고 고향으로 내려가기엔 이때까지 내가 해온 일들이 너무 아까웠다. 뭐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계속 무너져내렸던 것 같다. 그래서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을 가졌으면서도 균형을 일궈낸, 자신만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는 보라색을 그렇게 선망하고 찾아다닌 셈이다. 그리고 이런 갈등을 겪으며, 내 일상은 거의 무너졌다. 제대로된 규칙이나 루틴이 없는 일상에 지쳐가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삶의 루틴을 만드는 거였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알바도 구하고, 시간표도 고정시켰다. 최대한 규칙적으로, 루틴에 몸을 맞추고, 건강해지는 것에 전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지만 소홀해지기 쉬운 기본에 충실해지기. 그게 요즘 나의 근황이자, 최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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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런, 요즘의 나와 닮아있는 뮤지컬을 보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사실 뮤지컬의 시놉시스와 내용만 보면 나의 생활과는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겉으로만 보기에 이 뮤지컬은 굉장히 유쾌하고 밝아 보인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끌었던 점은 단순히 유쾌함만은 아니었다. 물론 극은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밝게 진행된다. 배우들의 익살스럽고 귀여운 연기와, 연이어 터지는 능청맞은 대사에 사람들의 웃음은 계속 끊이질 않았다. 다만 신기했던 건 이런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극 전체에 인간사에서 흔히 겪는 슬픔과 이별을 너무도 적절하게 녹여낸 점이다. 실제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다루던 상황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2시간 동안 이 극 안에서 인생의 기본적인 감정을 짧게나마 모두 느꼈달까. 극의 서사는 정말로 기본에 충실하다. '버림받다'와 '버리다'로 정의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각 인물들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서사다. 하지만 이 서사에 충실함으로써, 이 극은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지극히 기본적인 감정들을 풍부하게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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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골자를 이루는 배경은 한 기독교 병원이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루 앞 둔 날, 중요한 인터뷰를 앞둔 반신불수 환자 최병호가 사라진다. 병원장 베드로는 그를 찾으로 직접 병원을 방문하고, 각 환자들을 만나며 최병호의 흔적을 조사한다. 그리고 그를 찾는 과정 속에서 병원의 다양한 인물들의 뒷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소재는 가족, 사랑, 이별이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연인에게 버림받은 상처, 빚에 쫓겨 와해된 가족. 어찌보면 굉장히 진부하고 뻔한 스토리지만 그 기본적인 서사를 통해 배우들은 관객과 교감하고 풍부한 감정을 전달했다. 여러 감정선을 자극하면서도 유쾌함이란 중심을 놓치지 않은 뮤지컬, 기본에 충실해서 더 풍부했던 뮤지컬. 내가 이 뮤지컬이 보라색을 닮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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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엔 기쁨과 슬픔, 붉은 빛과 푸른 빛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섞여있다. 그래서 더 신기했던 작품이다. 굉장히 뻔한 스토리로 이렇게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만큼 신기했다. 사실 처음에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서는 딱! 가족끼리, 혹은 소중한 사람이랑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쾌하고 즐거우면서 적당히 신파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이기에 대중성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귀신같게도 위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 보라색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이 뮤지컬을 같이 보면 좋겠다 싶었던 사람들도 결국 각 개인의 삶의 기본을 구성하는 이들이었다. 참 여러모로 희한한 작품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적당히 즐기기 부담없는 유쾌한 공연이었다. 나도 이 공연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여러 매력을 뽐내는 보랏빛 생활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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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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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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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얀콩
    • 안녕하세요, 저는 성신여자대학 예술 관련 학부에 재학중인 한 학생입니다. 작성자님의 이야기와 작품을 같이 읽게 되어서 더 마음에 와닿았던것 같습니다! 혹시 내용중의 일부를 과제에 사용해도 될지 여쭤보고 싶어서 글을 남기게 되습니다. 혹시 작성자님께 실례가 안된다면 사용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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