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삶의 글 [기타]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2000, 구스 반 산트)와 내 인생의 글쓰기
글 입력 2018.09.1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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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2000)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글보다

더 나은 이유는 뭘까?"




어떤 글을 쓰고 있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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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관계 역시 가슴 따뜻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권의 소설만을 출간한 채 나머지 인생은 집 안에서만 지내는 작가 포레스터, 그리고 우연히 그의 집에 발을 들인 이후 그에게 글쓰기를 배우게 된 젊은 자말. 이미 글쓰기에 있어 어느 정도의 실력과 감각을 갖고 있는 자말이지만, 포레스터는 그에게 때로는 호통을 치듯, 때로는 '그게 인생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글이라는 것에 대해 단호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는 방 안에서 타자기 하나를 들고 나오며, '나를 위해 쓴 글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글보다 나은 이유'가 무언지 물어온다. 영화를 보던 나에게, 과연 글과 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내게도 그가 물어오는 순간이다. 나는 요즘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는지, 나를 위한 글은 무엇이었던지... 나의 글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나의 글 쓰기 행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대학에 오고 나서 글이라는 것을 다양한 종류로 써볼 기회가 꽤 많이도 생겼다. 자세히 말하자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고 하는 게 맞다. 어떻게 보면 나의 글쓰기 행위가 세상으로 확장되었다,는 생각에 새로운 전환점이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점점 나 자신의 시선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글을 '만드는' 경우 역시 늘어난 것 같다는 점이다.

점점 진실을 담아 내기 보다, 솔직한 나의 문장을 써 내려가기보다는 글을 잘 써내는 법을 익히면서 나는 잘 다듬어지고, 잘 정리된 글들을 여러 편 써내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다른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기 위해 썼던 글들 보다, 곧바로 떠오르는 문장들을 놓쳐 버리지 않기 위해 글로써 매어 두었던 순간들에 나만의 단어와 문장이 더욱 많았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잘 써진 문장이든, 평범한 문장이든 나만의 솔직함은 바깥의 시선을 의식했을 때보다 오히려 일기장 같은 공간에서 더욱 많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잘 쓰겠다는 마음보다는... 일단 쓴다.

 
어떤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기에 아쉬울 때,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을 때, 그 날의 감정을 두고두고 나중에라도 다시 기억하고 싶을 때 나는 일기를 쓴다. 마감 기한도, 어떤 지시도, 정해진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나의 마음을 풀어 나가지만 오히려 다 쓰고 난 후 그 글들을 훑어보면 나만의 단어와 문장들이 더욱 눈에 들어오곤 한다. 가까운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 혹은 어떤 감정을 나 스스로도 글로 써봄으로써 다시 한 번 더욱 기억에 남게 하고 싶고, 전달하고자 할 때는 편지를 쓴다. 자기 직전 번쩍 떠오른 생각이 다음날 아침이면 사라질 걸 알기에 곧바로 핸드폰 메모장에 쓰곤 한다. 바로 쓰고, 그렇게 나의 생각은 글로써 저장된다. 일기는, 그리고 편지는 잘 쓰겠다는 마음으로 쓰지 않는다. 그냥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데 다른 사람의 어떤 시선이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대로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글은 애초에 잘 썼다는 평가를 하는 게 의미가 없다. 전체적으로 잘 쓴 글이든 아니든 그중에 내가 쓰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게 중요하다. 잘 쓰려고 하는 글에는 이미 그 글을 읽게 될 이들에 대한 의식이 들어가게 되고, 나는 더욱 참신한 문장과 제목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쓴다기보다는 글을 만들어낸다고 표현하는 게 가까울 정도다. 만약 내가 그 글들로 좋은 평가를 얻는다 해도, 손바닥 한 장짜리의 일기보다 진실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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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포레스터는 갑자기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당황하며 묻는 자말에게 포레스터는, 생각은 나중에 하고 우선 가슴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이 내용 없이 느낌대로 감성에만 충만하게 아무 말이나 써 내려가라는 말은 아님을 안다. 오히려 가슴으로 써내는 글에서 더욱 집약된 내 감정이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마치 글을 의무처럼 쓰는 게 아니라 내 생활에서, 마치 배고파서 밥을 먹고 졸려서 잠을 자는 아주 기본적인 행동처럼 무언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글’이라는 표현 수단으로 옮기라는 뜻이라고 이해했다.

생각을 많이 해서 마치 에세이 대회를 나가듯, 그리고 논문을 쓰듯 잘 짜인 구조에 글을 담아낼 수 있고 분명 그것 역시 글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말하는 글, 그리고 내 삶에 직결된 글이란 사실적인 정보의 나열이나 구조에 맞게 잘 담긴 정보적 활자라기보다는 나라는 한 사람의 머리와 가슴으로 담아낸 것, 글씨와 문장 하나하나가 바로 나의 마음이고, 그래서 그 글 자체가 나인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나를 생각하고 썼을 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썼을 때 더욱 솔직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나만의 단어와 문장이 더욱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포레스터의 '일단 쓰기 시작하라'는 것은 마치 대화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듯,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생각을 떠올리듯 일상적인, 삶에 직결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글이 되도록, 그 어떤 규칙이나 평가에 의한 타의적인 글쓰기가 아닌, 단 한 문장이라도 나를 담아내는 글 말이다.

금방 글 한 페이지를 써낸 포레스터와 달리 자말은 해가 저물도록 책상 앞에서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글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에 쉬이 시작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레스터는 말한다. 우선 마음으로 쓰라고. 어떤 것을 쓰고, 또 어떻게 써야 그것은 글이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는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 혹은 어떤 규칙도 없이 쓰는 일기에 나만의 문장들이 가장 많다는 사실, 그리고 일상과 삶에 다르지 않은 글을 쓴 포레스터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쓰겠다는 것에 집중해 나와 다른 문장을 써내거나, 나에게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삶을 담은 글이 아닐 것이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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