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공연]

글 입력 2018.09.1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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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동명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2015)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라는 한쪽 방향으로, 단 한 번씩 만 경험할 수 있다는 전제를 뒤집으며 시작한다.

연극은 주인공 남자가 쓴 소설 <우주 알 이야기>처럼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사건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인과관계를 알 수 없게 뒤섞인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모두 한 사람, ‘남자’의 인생이라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A와 B, 두 가지 노선이 있어.
A는 슬프지만 아름답게 오늘 헤어지는 거야.
B는 내일이나 모레쯤 헤어지는 거야.
대신 아주 비참하게 헤어지게 돼. 어떻게 할래?”

남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열하고 때로는 상상한 것을 더하고, 또 여러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남자는 현재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해석하고 새롭게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나가려 한다. 시간의 해체라는 외형적인 형식과 신체행동 연극이라는 극단 동의 작업방식이 만나 관객은 과거로부터 쌓여져 온 결과론적인 현재가 아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현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1. 신체 행동 연기


극단 동은 신체 행동을 중심으로 한 연극을 만들어왔다. 연출과 배우의 역할 구분이나 경계를 없애고 함께 제안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작업을 통해 공동의 언어를 개발하고 있다. 관객을 새롭게 만나기를 원하며 늘 극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자본주의 민낯시리즈 3부작 <쉬또젤라찌> <게공선> <베서니, 집> 등을 공연했다.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이하 <그믐>)은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얽혀있다. 연극으로 옮길 때 해체된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난관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또한 현장성이 도드라지는 연극에는 분명히 이를 표현해내는 데에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극단 동의 신체 행동 연기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기발하게 해소시켰을지 공연을 보기 전부터 매우 궁금했다.

눈에 띄는 신체 행동 연기는 첫 번째, 배우들이 쉴 새 없이 원을 그리는 것(몸 자체를 계속해서 회전하였고 걸음 자체도 무대를 따라 움직이며 원을 그렸다). 두 번째, 한눈에 봤을 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움직임을 지속하는 것. 세 번째,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였다.


- 이번 작품은 장면이 아니라
조각을 중심으로

- 관객이 전체 작품의 창작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주기를 원했다

-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행위로만
전체를 채우려고 의도했다

연출가 강량원
(관객과의 대화 중)


연극 <그믐>의 연출가 강량원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구체적인 몇 가지 행위를 뽑아내고 그 행위에 집중하여 단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하고 있는 행위로만 전체를 채우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행위들을 배열하고 이 배열을 지속해 나가면서 관객은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구나’ 생각하고 해석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배우들이 순간순간 보여주는 그 행위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연결 짓고자 시도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현실에서 내가 경험했던 상황과 연결 지어 그 순간의 행위가 내게 보여주려는 장면이 어떤 것인지 분석하여 떠올릴 수 있었고, 연극을 다 본 후에는 있는 대로 주어진 연극의 각 장면들을 순서대로 조합하고자 했었다.

신체 행동 연기 중 첫 번째,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몸을 돌려가며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은 입체감을 잘 드러내주었다고 생각했다. 몸소 빙빙 돌며 움직이는 모습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움직임은 마치 컴퓨터 화면에 구현된 3D 이미지를 마우스 커서로 뱅글뱅글 돌려보는 것만 같았다. 또, 영상 콘텐츠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 인물을 축으로 화면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스크린 화면 대신 맨눈으로 목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수동식(?) 이기는 했지만 다각도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는 표현 방식이었다.

알 수 없는 움직임 또한 그랬다. 버스에 올라탄 남자와 여자는 짧은 거리를 빠르게 뛰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멈춰 서기도 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이때, 버스 안의 급정거 상황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의자를 옮겨가며 자리를 바꿔 앉고, 자세를 바꿔 앉는 것도 어디에서 앵글을 잡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점을 연극만의 방식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배우들은 매우 빠르게 걷기도, 매우 천천히 걷기도 했다.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하여 시간의 상대적인 속도를 표현하여 그 상황의 분위기를 전했다고 느껴졌다. 시계의 침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계 침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흥미로운 상황이거나 긴박한 상황에서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고, 지루하거나 두려운 상황에서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극단 동은 이를 포착하고 현장성을 가지는 연극 무대에서 표현해낼 때 완급을 움직임의 조절을 통해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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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극을 보며 느끼는 피로감에 대하여


연극을 보고 난 후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규모 극장에서 연극을 보다 보면 배우들이 코앞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에 압도 당해서 지쳐서 집에 돌아가곤 했다, 이번 연극은 공연장의 규모도 크도 배우들과의 거리도 있어서 덜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연극을 보며 즐거움과는 별개로 피로를 함께 느꼈다. 흐름에 몸을 맡겨 둥둥 떠가듯 자연스럽게 감상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짜 맞추고 사건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했다. 기울어진 무대를 보면서 평지에서 움직이듯 행동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쉴 새 없이 머릿속을 리셋 시키는 기분이었다.

연극이 끝난 후 약간 지친 상태로 객석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장재키 신경심리학자와 강량원 연출가가 입장했다. 장재키 신경심리학자는 관객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피로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피로감의 원인은 프로프리오셉션 (Proprioception, 고유수용감각)에 있었다. 프로프리오셉션은 간단히 말해 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평형 및 움직임(운동의 정도, 운동의 방향)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감각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프로프리오셉션으로 인해 공연을 보다 보면 관객은 계속해서 혼란을 느낀다. 연극 <그믐>의 무대는 아래로 기울어져있고, 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기울어진 상태로 연기한다. 실제로 우리가 보는 무대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지만, 배우들이 평지에서 연기하고 있다고 상정한 상태로 연극을 보게 된다. 관객들은 실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장면과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는 연극 속의 상황을 인식하며, 격차를 이해하고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교정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그믐>이라는 작품이 가지는 전체적인 특성과 밀접하게 닮아있다.

강량원 연출가가 ‘관객이 전체 작품의 창작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의도했듯이,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버전으로 연극을 새롭게 창작 하고 있었다. 창작은 정말 피로하고 힘든 일이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3. 연극에 대한 아쉬움


원작이 있는 작품이니만큼 연극 <그믐>은 그와의 비교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각색된 작품은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원작을 먼저 감상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 아무리 둘을 개별적인 작품으로 여기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어떠한 기대감과 설렘을 품게 되고, 실제로 각색된 작품을 보고 자꾸 비교해 보게 된다.

처음 프리뷰를 작성하면서 안심하고 보는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말했었다. 안심하고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장강명 작가는 독자를 억지로 웃기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장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를 가볍게 우습게 하찮게 깎아내리지 않도록 한다.

전반적으로 연극 <그믐>에 꽤 만족한 편이지만, 크게 아쉬웠던 점이 바로 위와 같은 대상의 희화화에 있다. 예를 들어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채, 주인공 남자의 발화로만 표현되는 여성 인물인 도서관 직원을 표현할 때 희화화가 지나쳤다고 느꼈다. 말하자면 연극에서 주인공 남자를 재해석한 방식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원작 속 주인공 남자는 누군가에게 재치 있게 말을 할지언정 누군가를 함부로 우습게 만들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연극 속 주인공 남자는 이전의 기억을 회상하며 과도한 콧소리를 섞어 하이톤의 말투로 도서관 직원을 흉내 냈다. 갑작스럽게 주인공 남자의 입에서 터진 높고 간드러지는 비음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스꽝스럽게 흉내를 내는 대사는 생각 이상으로 길게 이어졌다. 나는 웃음이 나지도 않았고 주인공 남자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이 상황이 오히려 민망해졌다.

이는 ‘선생님’을 연기하는 배우의 위압적이고 능청스러운 연기와는 또 다르다. 이는 위압적이고 폭력적이었던 구시대적인 선생님이 직접 무대에 나와 배우가 해석한 그 캐릭터의 성격대로 움직인 것이다. 반면 주인공 남자는 이미 어떤 배우에 의해 해석된 캐릭터이고, 그 주인공 남자가 또다시 다른 누군가를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을 법한 방식으로 옮겨 표현한 것이다. 해석의 해석 끝에 선택한 방식이 과장되게 흉내 내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썩 반갑지 않았다. 누군가를 희화화하여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것 또한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각색하고 연출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 마냥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 없이 약 2시간을 이어가는 연극이니 관객들이 지루함을 덜고 재미를 느낄 요소를 넣기 위해서 선택한 장치라고도 생각한다. 과거의 통화 상대를 등장시키지 않고 현실감이 느껴지도록 전달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희화화는 불필요했다고 본다. 흉내를 내든 비난을 하든, 남을 타겟 삼아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지양되어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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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는 수많은 조각들의 연결과 모음 같다



과연 종이 위에 선으로, 과거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일방향의 선으로, 시간을 (혹은 나의 인생과 기억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과연 일방향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세계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는 걸까?

의문점 (프리뷰에서)


인생 그래프를 그리면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좌에서 우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성하게 된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간소한 단 하나의 문장으로 작성된다. 이는 전체에서 뚝 잘려 추출된 단면 위에 드러난 멈춰있는 한 장의 대표 사진 같다. 그 문장에서 기억을 되짚을 때는 마치 커서를 가져다 대면 이내 짧게 움직이는 썸네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한 장면은 무수한 조각에 의해 만들어진다. 프레임을 이어 붙이면 그제야 움직이는 한 장면이 된다. 그마저도 온전하거나 완전하지는 않다. 한 장면은 내가 직접 감각하고 선별하여 기억한 조각으로 이루어진다. 그 장면은,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그 상황에서 나와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 조각들이기도 하다. 그 조각들이 모두 연결되어 모일 때 나의 기억 속의 그 상황 하나가 완성된다.

나의 탄생은 나의 시선으로 봤을 때 최초이고 시작이다. 하지만 이 시선을 확장시켜 세계로 뻗어낼 때, 나의 부모님의 시선에서 나의 탄생을 바라볼 수 있다. 이는 부모님에게는 새로운 시작이다. 또한 나의 탄생은 시작은 부모님의 만남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부모님은 각각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에게서 시작되고…… 그렇게 나의 탄생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여러 사건으로 연결되며 종횡으로 확장된다.

연극을 보고 나오니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내 옆을 스치는 사람들에게 잠깐 시선을 던지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인생 그래프의 각각의 사건들과 얽혀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얽혀있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내가 최근에 겪은 일상과 그와 얽힌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깊은 감사와 벅찬 감정을 섞은 말로 표현하자면, 경외감을 느꼈다.

이 순간, 작품 <그믐>에서 말하는 그 '우주 알'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립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생각할 수 있을 때 (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고집해 온 패턴을 벗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미 모두가 우주 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적인 것을 넘어섰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이기도 한 신비로운 내면의 작용. 세상의 연결 속에서,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으레 가지고 있을 우주 알. 물론, 이마저도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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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


시놉시스

남자와 여자는 고등학교 때 연인사이였다.
남자는 동급생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간다.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서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낸다.
여자는 소설 내용이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남자를 찾아 15년만에 재회한다.
남자는 자신의 살인이 세상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깨달아 간다.
남자는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일자 : 2018.09.04(화) ~ 09.16(일)
시간 : 평일 7시 반, 주말 3시, 월 공연없음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가격 : 전석 30,000원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재)서울문화재단, 극단 동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동

관람연령 :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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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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