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낯선 곳에서 자신을 찾는 것.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도서]

혼자가 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것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글 입력 2018.09.1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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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여행에 관한 책이다. 그러면서 또 '자신'에 관한 책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때 저자가 40일간 산티아고로 여행을 하며 그 과정 속에서 느낀 것들을 적어놓은 것.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나와 동기에게 건네준 책이다. 서울 시의원 우창윤 씨의 '나는 배웠다. 사람, 도시, 여행에서'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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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윤 씨는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되어, 몸을 더 이상 못쓰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불편한 몸으로 세계를 여행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수레에 태워서 일본을 일주하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다니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내 삶의 원동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찾는 것에 있다. 내겐 아직도 가봐야 할 많은 곳이 있고, 낯선 곳에서 인생을 찾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망이 식지 않고 있다." (41page)

*

사실 책의 프리뷰를 하는 글에서 다른 책에 대한 리뷰를 하자니, 두 책에 대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상당히 걱정이 된다. 주제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완전히 그 책의 본질까지 파고 드는 사람이 있다.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그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했는지가 보이고, 나는 차마 생각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을 결론으로 써내려가는 것을 보며 감탄하고는 한다. 같은 문화초대를 가더라도, 나는 어렴풋한 느낌 위주의 감상을 하는 반면 그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전문가급의 평론을 내리곤 한다. 어떤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런 글들이 더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내 글은 어쩌면 정말 내가 늘 하는 말처럼 이기적이고, 감성어린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랄까. 분명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쓴 글인데도 사람들은 때론 내 글에 공감을 해준다. 남의 경험인데도 거기서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동경해왔다. 집이 아닌 어디론가 떠나는 것. 그것도 몇박 며칠씩이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일탈을 행한다는 사실을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 온 엄마의 교육 방식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고 집이 굳이 있는데 밖에서 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을 집에서 먹으면 같은 돈으로 3일 내내 온가족이 먹을 수 있는데 외식을 하면 엄청난 식비가 나오기 때문에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할머니댁에 모여서 치킨 또는 탕수육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먹을 수 없었던 피자와 파스타를 동경했고, 케익, 스콘, 단팥빵 소보루빵 같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빵을 제외한 모든 디저트류의 빵들을 찬양했다. 용돈이 없었기에 친구들이 매점 빵을 사주었고,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편의점에서 파는 초코롤빵을 정말 좋아했다. 또, 친구들이 처음으로 미스터피자에 데려가주었는데, 샐러드 뷔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는 시내에 놀러갈 때면 미스터피자에 가자고 주장하곤 했다. 파스타는 늘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조르고 조르고 1년에 한번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파스타였다. 비록 그때는 엄마가 요리를 잘 하지 못해 파스타면이 퉁퉁 불었고 토마토소스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자극적이고 달았지만 그 시절에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대학에 들어와서 용돈을 받거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도 음식에 돈을 쓰지 못했다. 아니 사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몇 달을 고민해서 겨우 살 수 있었다. 그 고민한 것도 소셜에서 가장 싸게 파는 5천원도 하지 않는 구두나 청바지나 블라우스였고, 지하상가에서 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테니스 스커트, 맨투맨이었다.

*

하지만, 여행을 동경하기만 했던 건,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우리 할머니는 '토정비결'을 맹신하는 분이다. 음력 생일을 기준으로 신년 운세를 판단하는 사주팔자 비슷한 것이다.

가족들과는 다르게 나는 늘 토정비결이 재수없게 나왔다. 고향이 통영이라, 바닷가인데도 나에겐 늘 물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다. 약 10년 가까이 본 것 같은데 늘 그 말이 내 사주에 정해져있었고 늘 재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신년마다 토정비결 사오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내 것을 읽어주지 말고 다른 가족들 것만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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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기한 게, 대학생이 된 후로도 사주를 보는 걸 좋아하는 친구와 사주보러갔을 때도 나에게 물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물과 가까이 산다. 이젠 바다는 아니지만 한강과 아주 가까워 10분이면 한강이 보이는 동네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또 들었던 말은, 니가 아무리 물을 피한다한들 또 다른 것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내 사주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재수가 없었던 거다. 여담이지만 나에게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도 했다. 그 뒤로 사주엔 아예 발길을 끊었다.

어쨌든 사주가 늘 그렇다보니 할머니는 내가 여행 떠나는 것을 극도로 말렸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석하는 수련회,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 나는 그래서 초중고등학교 졸업여행과 고등학교 수련회를 참여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늘 도서부로도 같이 있고 반에서도 같이 있는 친구들과도 진짜 친했어서 졸업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다. 불참석에 체크를 한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는 왜 졸업여행을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기능성 위장장애가 있고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누가 시켜서 외워서 대답하는 것처럼.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 선생님께서는 내가 정말 아파서 그런 얼굴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자기들끼리 여행을 떠나버렸다. 나는 4일 내내 친구들도 없는 학교에 가서, 책을 읽고 돌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사주가 그렇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2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았고, 영양제를 맞아야 했다.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신음소리로 가득찬 물리치료실에서 나는 할머니가 '브라자'라고 부르곤 하던 진동기를 몸에 붙이고 진동마사지를 받았고 '장화'라고 부르는 다리 마사지 기계를 신고 다리 마사지도 받았다. '브라자' 기계가 끝이 나면 내 건강한 허리에 물리치료사가 약을 발라줬다. 아주 진하고 시린 약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시원한 감각이었다. 도대체 내가 어디가 아팠던 건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물리치료를 다 받고 나면 할머니와 영양제를 맞으러갔다. 혼자 걸어가면 1분만에 걸어갈 거리를 다리가 아픈 할머니와 30분동안 쉬다 걷다 쉬다 걷다 하며 겨우 병원으로 갔다. 빈혈도 없고 그냥 건강한 몸인데도 포도당을 몸 속에 때려넣었다. 나는 그래서 늘 많이 먹지도 않는데 보통 친구들보다 10킬로그램 정도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 그때는 단지 내가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다고만 생각했었다. 대학교를 오고, 더이상 할머니와 영양제를 맞으러 다니지 않으니까 그 10킬로그램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론, 빈혈과 식이장애라는 질병도 얻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의 토요일은 그렇게 눈뜨자마자 밥 먹고 7시 반 정도에 버스를 타고 문도 열지 않는 병원 앞으로 가서 번호표를 할머니것, 할아버지것, 내 것 세 개를 줍고 물리치료 병원으로 가서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물리치료를 받고, 끝이 나면 짧은 길을 기어가듯 겨우 도착해서 영양제를 맞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것으로 정해져있었다. 모든 일정을 수행하면 오후 2시에서 3시가 된다. 그렇게 몇년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했을 나이에 병원에 엄청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

서울에 와서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자유를 얻었다. 왜 일일이 전화를 해서 보고를 하지 않느냐는 엄마와 연을 끊을 뻔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가 돈을 쓸 때마다 돈을 부쳐주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동안은 나 혼자 400만원을 용돈으로 써버렸다. 등록금 450만원에 입학금 90만원도 추가하면 정말 엄청난 돈을 혼자 써댄 거다. 당연히 학점은 좋지 않았다. 학사경고를 겨우 뛰어넘은 점수였다.

내가 있던 곳과 최대한 먼 곳, 내가 하던 공부와 최대한 관련이 없는 공부를 선택해서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교의 공부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그저 주입식, 책 읽기, 교과서 외우기, 암기에 불과했고 건축학과의 공부조차 이미 그려진 도면을 따라 그리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 전공 과제는 다른 친구들은 선배들에게 자료를 받아서 그대로 제출해 점수를 잘 받았지만 나처럼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을 해야되는지조차 몰라서 다들 전과나 반수를 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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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흥미를 잃어 듣지는 않았지만 출석은 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혼자 서울의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예전엔 시내에 갈 때면 택시나 버스를 타지 못하고 늘 걸어다녀야 해서 정말 힘들고 귀찮아했는데 이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단 걸어다니는 게 좋다. 어떤 날에는 이태원부터 옥수역까지 걸어간 적도 있고, 이태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걸어다닌 적도 있다. 그냥 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북촌한옥마을을 하루종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도 돈이 아까워서 배고파도 단 한번을 밥을 사먹지를 못했다. 귀걸이 하나 예뻐도 사지를 못했다. 와플을 먹고 싶어도 먹지를 못했고.

사실 이태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걸어온 날은 갑자기 눈이 내려서 엄청 추운 날이었다. 그 날은 이태원에서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다. 일요일이어서 돈을 출금하면 수수료가 나오기 때문에 나는 통장에 돈이 많았어도 엄마에게 혼날까봐 출금하지 못했다. 그걸 보다못한 전남자친구가 자기가 돈을 보내주겠다고 그걸 뽑으라고 했는데도, 나는 억지를 부렸다. 억지로 그 먼 길을 걸어오면서 정말 얼어죽을 뻔했다. 전남친은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나를 데리러와서 자기 버스카드를 대신 찍어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시절의 나는 빚지는 기분을 참지 못했다. 한번씩은 서로에게 밥을 사줄만도 한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늘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얻어먹었기 때문에 그게 늘 자존심이 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남친과의 관계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나는 그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1년 반을 사귀었는데도 헤어지는 날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이별을 고했다.

이태원에서 옥수역까지 걸어간 날은 지도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요금을 제일 작은 걸로 써야 해서 나는 한달에 250MB밖에 데이터를 쓰지 못한다. 그래서 그 때는 네이버지도를 켤 수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지하철로 가야하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아픈 발을 이끌고 한없이 걷다가 드디어 옥수역으로 갔다.

네이버 길찾기를 해보면 나의 그 기나긴 고생은 1시간밖에 도보로 걸리지 않는다고 나온다. 하지만 나는 초행길이었고, 전혀 모르던 길이라 돌고 돌아갔다는 점을 고려해 매우 오랜 시간을 길바닥을 걸어다녀야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자유를 얻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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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자유를 얻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개판'으로 놀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춤을 추고 운동을 하고 다녔지만 여전히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 한번 사먹이지 못했고, 입고 싶었던 레깅스를 한번 사주질 못했었다. 이번 여름에 사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중국 여행을 계획했고, 그걸 위해 더 사고싶은 것, 먹고 싶었던 것을 참았는데 그 계획도 틀어지자 내 속에 있던 불만들이 그제서야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자유로운 척, 얽매이지 않는 척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아니, 내가 아니라 할머니 또는 엄마일지도 모른다. 내 얼굴을 한 채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찾고 싶다.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다 -


지은이 : 박재희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분야
여행 에세이

규격
변형 신국판(143*195), 전면 컬러

쪽 수 : 320쪽

발행일
2018년 9월 5일

정가 : 16,000원

ISBN
979-11-88829-05-7 (03980)




문의
디스커버리미디어
02-587-5558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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