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드라마, 인생 드라마, 옜다! 드라마.

#019~023
글 입력 2018.09.1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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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드라마


"나는, 드라마 하나는 꼭 있어야 돼."

별 뜻 없는(것 같은) 엄마의 한 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무슨 주문처럼. 그 주문이 통했는지, 이번주에 이상하게도 저녁마다 드라마 한 편을 꼭 보고 잤다. <비밀의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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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본방송으로 보진 못하고, 명성을 듣고 뒤늦게 정주행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난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정말 미칠듯 졸음이 쏟아져서야 잤고, 결국 이틀만에 드라마를 다 볼 수 있었다. 친구에게는 과장해서 드라마를 보는 동안 '숨도 못 쉬었다'고 말했다. 그래서도 이번에 같은 작가의 드라마 <라이프>에 기대하는 마음이 되게 컸다. 그리고 지금은,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언젠가 '달글(달리는 글, 실시간으로 드라마 평을 남기는 글)'에서 본, 어떤 이가 표출한 '분노'가 기억에 남는다. "구승효(조승우 분) 그런 데(러브라인) 쓰지마!!"

아무튼, 드라마를 봤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정리하고, 지쳐도 드라마를 봤다. 보다가 12시가 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무언가 해결 된 후, 그 자리를 채운 다른 문제를 마주하기 싫어 도피했던 걸까… 후련함과 두려움 사이를 드라마로 메꾼 기분.



#020. 인생 드라마


'인생 드라마'가 있다. 실은 아주 많다. 드라마 하나는 꼭 있어야 하는 엄마와 산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내 인생도 엄마를 따라 자연스럽게 드라마와 함께였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그 중 TOP 3는!


1. 연애시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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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학생이었고, 독서실에 다니는 중이었다. <연애시대>가 하는 날이면, 밤 10시 되기 10분 전 급하게 짐을 챙겨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달한 연애담도 아닌 이혼한 두 남녀의 이야기인데, 어린 내가 뭘 안다고 그렇게 좋아했을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적당한 때 등장했다 사라지는, 주변 인물들의 사건이 주연 캐릭터의 행동 동기에 영향을 주며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런 잔가지들이 자연스레 하나의 큰 줄기로 수렴된다. 인생 같다.


2. 신데렐라 언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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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문근영과 서우의 연기력이 빛을 발한 <신데렐라 언니>.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이 두 '자매'가 그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심성이 뒤틀려 여기저기 날카로운 성질을 감추지 못하는 은조(문근영)와, 넘치는 애교로 무장한 것 같은 사랑스러움 이면에 어떤 잔인함을 낱낱이 드러내고 마는 효선(서우)의 대립 구도가 볼 만하다. 흥미로운 건 가시같은 은조도, 얄미운 효선이도 다 이해가 된다는 것. 이 두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이 아름답다. 흔한 남녀 사이의 사랑도, 간지러운 자매 간의 사랑도 아닌 그 둘 사이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의 빛깔을, 제대로 만들어냈다.


3. 나의 아저씨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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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이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마지막 회를 보고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현실에 지안이같은 애가 정말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러면 어떡하지, 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졸이며, 어쩔 수 없이 같이 울며 본 드라마. 다 본 후, 글로 한 번 정리하고 싶었는데 지금까지는 하지 못했다. 마지막 회를 다시 곱씹을 수 있는 담력을 기른 다음에는 할 수 있을까. 어른, ‘좋은’ 어른, 인간과 구원에 관해 무거운 물음을 던진다.

*

숫자 1,2,3을 붙인 의미가 1위, 2위, 3위라는 뜻은 아니다. 똑같은 비중이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나의 인생 드라마.



#021. 네 인생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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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의 수신자는 방송사 'MNET'이다. 2016년, 2017년 그리고 올해까지, 충실하게 서바이벌 프로그램 파이널마다 '생방송 문자투표'를 해오고 있다는 증거다. 재작년, 작년과 올해 투표 시간대가 다른 이유는, 올해는 파이널에 만 15세인 연습생이 진출해서, 12시 전에는 방송을 마쳐야 하는 규제 때문이었다. 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원래 대로면 새벽 2시, 3시까지 소위 '인질극'이 벌어졌을 테니까.

2016년, <프로듀스 101 시즌1>이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애들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히 이 프로그램을 ‘연습생을 상품화한 대기업의 횡포’란 비판으로 일관하고 무시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간절했다. "가수가 하고 싶어?"라는 말을 듣고도 밤새 연습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데뷔한 연습생, 방송 초반에 이슈를 끌진 못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실력을 보이며 데뷔한 연습생,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탈락했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연습생… 모두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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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백 한 마리 강아지도 아니고." 비웃었던 내가 시즌1, 시즌2, 마침내 시즌3까지도 끝끝내 등을 돌릴 수 없었던 이유는 연습생들이 만드는, 때로는 팬들과 함께 만드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드라마의 힘은 강하다. 속았다 해도 별 수 없다.



#022. 내 인생은 드라마?


동갑인 연습생이 데뷔하는 모습,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이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대단했다. 3년이라… 짧지 않은 시간임엔 분명한데, 왜 쏜살같이 지나온 느낌일까, 돌아본다. 그 동안 내 인생에는 드라마가 있었나.

있었다, 분명. 그리고 앞으로도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마음, 욕심, 바람이 있다. '아이돌 데뷔'만큼 극적(Dramatic)인 건 아니어도, 나만이 감지할 수 있는,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는 싶다. 모든 인생은 드라마라고 하지만, 그런 뻔한 말 말고 진짜 나의 드라마, 어디 있을까.



#023. 옜다, 드라마!

 
*
드라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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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 그림을 다시 시작할 줄은 몰랐다. 재료를 하나씩 챙기는 나를 보며 엄마가 한숨을 내쉬길래,


"왜."
"그냥, 걱정되니까."
"이제 난 두려운 게 없어."
"그래, 다행이다."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일러스트레이터의 인터뷰도 위로로 삼아 본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를 하다가 포기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 주위에서 꼭 뭐라고들 하죠. 그럴 때 이렇게 한마디 해주세요. '병신아, 실존은 포기에서 오는 거야.'"


*
드라마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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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계곡에 다녀왔다, 일곱 명의 친구들과. 가끔 몇몇이 모이긴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모일 수 있는 날은 드물다. 예를 들어 매번 '우리가 언제 만났었지?' 회상해보면 꼭 일 년 전이다. 그래서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모일 수 있는 것도 기적이라 말한다. 한 명은 대기업에 다니고, 한 명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고, 한 명은 바리스타겸 작가이고, 한 명은 골프 선수 코치고, 한 명은 뮤지컬 배우이고, 한 명은 우리 중에 같은 곳에서 일을 가장 오래 했다.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이, 이렇게 16년 동안 함께해왔다.


*
드라마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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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장을 보러 가는 엄마와 마주쳤다. 문득 만난 엄마가 너무 반가웠다. 엄마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나를 만나자마자 팔짱을 꼈다. 엄마는 몸에 열이 많아서 살만 닿아도 싫어하는데, 웬일이지, 싶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나길래, 조금 울었다. 왜 그래, 말하며 안아주는 엄마에게 엄마가 반가워서 눈물이 난다 말했다. 장을 보고, 빨간 어묵을 먹었다. 엄마가 "이게 뭐야, 팽이버섯이야?" 그러자 내가, "숙주 나물이야." 그러자 주인 아저씨가 "두 분 다 땡이에요. 콩나물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가 다시 물었다.


"아까 왜 울었어."

"그냥, 엄마를 만나서 반가웠는데,
반가운 건 일상적인 게 아니라는 거잖아.
그게 슬펐어.
엄마와 마주치는 게,
일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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