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미니즘 소설을 읽기 힘든 이유 _ 책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

페미니즘 도서에 바라오.
글 입력 2018.09.0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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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이게 너무 힘든거다.
아마 이 책의 목소리는 여성 문제의 고발이자
개선에 대한 의지와 요구의 소리일 것이므로
'여성주의', 더 흔히 쓰이는 용어로는 페미니즘 도서로 분류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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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한참 인기였다.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요즘 다수의 관심사를 표방한다고 해도 좋을 각종 SNS에 82년생 김지영, 현남 오빠에게 등의 해시태그를 단 독서 사진을 올렸다. 말 그대로, 하나의 트랜드이자 시대적 흐름이었다.

여성주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 사람들의 뇌리에 놓여있는 것 같다. 또한 그 성향이 언제나 극단을 달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필자는 이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관심 있는 것에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 다양한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상을 대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인 것이다. 이론 서적을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도 있고, 그 사례들이 담긴 소설등의 글들을 찾아볼 수도 있다. 옳고 그르고, 더 나은 방법이 어디있겠냐마는 필자가 택한 방법은, 이론서 하나 그리고 오랫동안의 고찰이었다. 페미니즘 도서를 읽는 일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왜 페미니즘 도서들은 읽기에 수월하지 못할까. 특히 소설로 된 것들은. 어느 날 필자의 친구가 전한 말이 있었으니, 자신은 아무리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라도 읽지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심적으로 피곤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도서를 읽으며 다른 책들에 비해 더 심한 심적 피로감을 느낄까. 다음의 글자들은 모두의 혹은, 특정인의 사사로운 경험에 대한 추측과 이유와 근거들이다. 페미니즘 소설이 읽기 힘든 이유.



우리의 이야기는 읽기가 힘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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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교도소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오뉴블'의 중심 인물


'오렌지이즈더뉴블랙'의 레드라는 인물이 말하길 '남의 이야기는 모두 지루한 것'이랬다. 그에 비해 나의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이기만 한데, 이는 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들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유명한 명언이 그 근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페미니즘은 일상 속의 문제를 건드린다. 다른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성별'로 인해 받아왔던 피해들, 그 차별과 아픔들을 낱낱이 고발한다. 당신이 지금껏 느껴왔던 불편함이 사실은 이런 문제를 겪으면서 느낀 감정이었다고, 사실은 당신이 당한 차별들은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성별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종류의 것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 속의 차별을 건드리는 만큼, 그 수용자들과 도서의 내용들이 더 깊숙히 관련됨은 물론이다.

자신과 깊숙히 관련되어 있고, 또 그 종류가 밝기보다는 어두운 것이라면, 자신의 이야기 중에서도 포장된 추억보다는 감춰진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라면 내 이야기라 좋기는 해도, 사실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더라도, 아픈 이야기는 읽기가 힘들다.



다층적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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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화제가 되었었던 손나은 분의 케이스


페미니즘 이야기가 건드리는 범위는 실로 다양하다. 사회인으로서의 여성, 엄마로서의 여성, 자식으로서의 여성, 누나로서의 여성, 여동생으로서의 여성. 여성 문제를 다루지만, 그 차별이 적용된 사례들을 다루다 보면 실로 많은 종류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독자에게 공감을 유발한다. 매력적인 주인공을 앞세워서, 공감이 갈만한 스토리를 내세워서, 이 모든 게 부재하더라도 일단 소설이라는 매체가 가진 허구성과 서사성은 강력한 것이다. '한 여자가 아팠다'라는 문장보다, '한 여자가 6살 적에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자신의 아버지조차 함구하고 쉬쉬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어 아팠다'라는 문장이 더 깊이 마음에 남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단 페미니즘 도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 많은 책들이 다루는 것은 그저 한 종류의 경험이 아니다. 어렸을 적 당한 성적인 폭행 혹은 유린을 다루게 되더라도, 결국엔 그 여성차별적 사회가 만들어 놓은 차별 레이더망에 걸려 동일한 주인공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차별에 넘어지고 생채기가 나고 다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의 여성차별적 사건으로 시작했어도, 마지막엔 다층적인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 아이가 6살 즈음에 성폭행을 당하고, 그 실태가 묵인되었다는 사실은 그것보다 크고 작은 차별과 고통들도 쉬이 묵인될 수 있음과도 통용한다.

독자가 페미니즘 도서를 읽으며 당하는 일은 계속 두들겨 맞는 일이다. 차별을 당해온 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차별도 겪었었지 이것 뿐만 아니라 이것들도 견뎠었지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의 남자아이들의 폭력을 '널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로 위로받은 여성이, 아버지의 가부장적 행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 남자 형제들에 대한 차별의 경험들의 교집합 안에 놓여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현실 속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소설 속에서 떠올릴 것은, 자신이 지금껏 받아오고 누려왔던 혜택들과 자연스럽게 행해온 차별, 그리고 역차별의 경험이다. 이러나 저러나 맞는 건 똑같은 것이다.

앞장도 내 이야기, 이번 장도 내 이야기, 다음 장도 내 이야기다. 불운하게도, 아마 그 이야기들은 모두 기분 좋지 않은 것들의 집합일 것이다. 다층적이고, 오래되었고, 또 수많은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페미니즘 도서는, 읽기만 해도 피로감이 쌓인다.



완성도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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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


페미니즘 도서가 줄을 이루어 나오고 있는 지금, 그 이론에 대한 도서의 양만큼 질도 따라주느냐는 것은 미지수이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논하고 공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지금 (물론 지금도 편히 공론화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요에 공급이 발맞춰 간다기보다는, 그저 휘적휘적 종종 걸음을 걸으며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다.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록산 게이 교수가 말하길, 우리는 여성 문학이나 여성 미디어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무게를 지운다고 했다. 여성 미디어나 영화가 나오면 온갖 기대를 다 지웠다가, 높아진 본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역시 여성 미디어란'하고 누명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평범한 미디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인데, 그 수가 매우 적고 그와 비슷한 컨텐츠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라, 하나의 작품에 너무 많은 사회적 의무와 역할 그리고 무게를 지운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록산 게이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여성 미디어 컨텐츠들이, 보통의 컨텐츠들보다 높은 기준에 빗대어 평가되고 있고, 조금이라도 하자가 보이면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껏 소비되어 온 수많은 대중 문화 미디어와 다른 모양이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힘이 없는, 미디어 매체의 수많은 수용자들은 사실 '오션스8'이 수많은 여성주의 소설이 조금 더 잘해주길 바랬었다.

여성주의 소설의 성격은 현실 비판적, 차별 고발적이 되기 마련이다. 이론 자체의 성격에 의해서다. 하지만 이 성격에, 작품 전체가 끌려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마련된 이야기들이 저마다 사회의 문제를 고발할 수는 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가져온 만큼 어떠한 예술성을 띄어야 한다. 그저 이야기 형식의 고발 글, 혹은 사례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장르에서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생각을 담기로 했다면, 작품 속에 생각과 교훈, 그리고 주제를 녹여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예술이 되어야지, 어떠한 문제에 대한 '예시 이야기' 정도로 그치는 소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이 탁상공론이 되어, 또 여성 미디어에 무게를 쇳방울을 더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예전에도 사회를 고발하는 글은 많았지만 어떠한 변화와 바람을 일으킨 것들은 모두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겸비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작품이 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작품이 될 수는 없다. 필자가 여성주의 소설에 지우고 싶은 무게는 이정도이다.

완성도가 높지 않은 무언가를 향유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무언가가 좋은 의미와 좋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땐 더 그러하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에는 더 큰 기준을 세우기 마련이다. 내 눈에 예쁜게 남의 눈에도 예뻐보였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페미니즘 소설을 읽기 힘든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3가지 정도 되었지만, 비슷한 듯 달랐고 다른 듯 비슷했다. 어쨌건 필자가 전하고픈 이야기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목말라있는 독자들이 수많고 수많다는 것이다. 모두 자신이 겪은 경험을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고찰되고 완성도 높은 글로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 지금껏 못해온 만큼 더더욱 많이. 하지만 필자의 작고 큰 바람은 페미니즘 도서가, 이런 수요만 믿고, 주변에 있을 법한 사례만을 열거한채, '당신도 이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의 공감의 말을 건네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고,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인지하길 바란다면 사례 그 이상의 영감과 충격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이즘(-ism)'이, 그리고 이 생각을 담은 작품들이 더 좋은 방향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남긴 채 필자는 늦은 새벽 여기서 글을 마친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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