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作 [영화]

글 입력 2018.08.27 15: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넌 박살낼 줄 만 알지,
무언가를 만들어낼 줄 모르잖아.

- 영화 싱스트리트(Sing street)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 길을 갈까 말까 고민에 시달릴 때 그들은 그곳으로 용기 있게 발을 디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일주일동안 다큐멘터리 PD들을 만나며 든 생각이었다. 누가 우크라이나 최전방, 지뢰와 폭격이 난무하는 곳에 카메라를 들고 나설까. 누가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곳을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고향인 이란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까. 누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조차 주지 못하는데,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4년의 시간을 쏟을 수 있을까.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는 영화와는 달랐다. 이야기를 마치고 빤히 카메라를 보는 사람들의 미묘한 얼굴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의 숨의 크기와 빠르기가 담겼다. 너무 사실적이라서 외면했던 다큐멘터리. 하지만 같은 이유로 다큐멘터리가 나를 당겼다. 집 근처 상업영화나 보면서, 개강 준비를 할 수 있었었던 나에게 무언갈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왜 글을 써, 왜 이걸 찍어, 뭘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거야?라는 것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만 같았다. 누구는 네가 이 글을 쓴다고 해서 뭐가 그리 달라지겠어? 네가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고 해서 이 나라가, 세상이 바뀔 것 같아?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movie_image (33).jpg
 

하루는 일을 끝내고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내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영영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 끔찍해진다. 사실 보는 내내, 이 모든 것이 허구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사는 곳엔, 머리 위로 폭격이 떨어지지도 않으며, 땅엔 지뢰도 없다. 학교에서 지하벙커로 대피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으며, 하루하루 라디오를 들으며 숨죽이면서 살지 않는다. 하지만 10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리고 그를 지켜주는 할머니를 보면서 뉴스의 자막 한 줄보다 참혹하고 한 장의 사진보다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JPG
 

아니, 오히려 밝고 아무렇지 않은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더 힘들었다. 영화를 보는 나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포격 소리에 두려웠는데, 그 소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여기와 멀리서 떨어진 것 같아, 이번엔 소리가 좀 큰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울지 않는다. 겨우 10살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소년이 정말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시몬 레렝 빌몽 감독은 올렉이라는 아이를 캐스팅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여러 아이들에게 네가 느끼는 두려움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올렉은 “집 근처에서 포격이 시작되었을 때, 손이 내 가슴을 뚫고 들어와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쥐어짜다가 나중에는 심장이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그때 두려움을 느꼈다”라고 했고,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이 아이를 섭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올렉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포격이 점차 가까워지는데도.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늘 괜찮은 척을 하지만, 끊임없는 포격으로 심장이 안 좋아졌다. 포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청소기를 돌린다. 떨리는 자신이 심장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 심장소리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는 가감 없이 담는다. 그 심장소리와 숨소리를, 그리고 떨어지는 포격 소리를.


아이.JPG
 

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포격 소리가 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권총으로 개구리를 쏜다. 동네 형과 불을 지피면서 놀고, 풀숲에서 아무렇지 않게 뛰논다.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감독이 포격을 두려워해서 촬영을 하지 못했다면 과연 한국에 사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을까. 제발 멈춰달라고 내내 속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내가 찾은 ‘왜 우리는 무언갈 만들어 내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다. 만들어내지 않으면, 거기서 멈출 것이고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끝까지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여러 전쟁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관람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 아이의 시선을 따라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들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할머니는 날 떠나면 안 된다는 대사가, 엄마 묘지 십자가를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페인트칠을 다시 하면서 오늘은 유난히 슬프다는 그 대사가, 얼어붙은 그 차가운 공기들의 소리가, 유난히 작고 어린 눈망울을 비껴가지 않아서.


movie_image (34).jpg
 

이 작품은 8월 26일 막을 내린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난, 내심 이 작품이 1등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터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멈추지 않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올렉과 할머니의 이야기는, 한국 사람 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EIDF 공식 홈페이지를 접속한 후 작품안내 섹션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나보다 더 느끼는 것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글을 마친다.




아현.jpg
 
  
[김아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