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승에서도 인과 연이 중요하다 [영화]

< 신과함께-인과 연 >을 보고 느낀점
글 입력 2018.08.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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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주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글입니다.


신과함께-인과 연이 개봉한 지 2주 만에 천만 관객에 돌파하면서 시리즈물 최초로 더블 천만 스코어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을 넘어서 세계 각지에서도 신기록을 세우며 신한류를 부르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검은 사제들, 곡성과 같은 한국식 컬트영화, 전통설화를 기반으로 했었던 드라마 도깨비처럼 신과함께 역시 한국의 정서를 기반으로 새로운 흥행코드를 만들어 내며 여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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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나 역시 1편과 2편의 천만 관객 흥행에 가담한 관람객이고 영화를 보면서 웃고 또 울었다. 화려한 CG의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탄생과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함께한 흥행은 축하할 일이고 반갑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아쉬웠던 지점들 역시 당연히 존재하고 이야기를 위한 설정이 아니냐는 작위성을 꼬집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고 마음 한편에서 불편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귀인이 풍년, 달라진 이야기의 양상


신과함께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귀인’이다. 강림 일행이 1000년 동안 48명밖에 마주하지 못했던 존재들이기도 하다. 전편에서는 강림 일행이 19년 만에 만난 귀인 김자홍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었다. 하지만 2편의 시작에서는 새로운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바로 ‘억울하게 죽어 제 명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다. 새로운 조건이 생기면서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진다. 군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 원귀가 되었던 김수홍이 귀인이 되었고 단순한 원귀가 아니라 의인이라는 강림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전편과는 새로운 지옥의 모습과 재판을 보여준다. 총기 사고로 살인을 저지르고 생매장을 방조했었던 원 일병 역시 귀인이 되는 걸 보여주며 다음 시리즈를 암시했다.

19년 만에 만난 귀인, 김자홍이라는 설정이 무색하게도 2편에서는 귀인이 풍년이 되어버렸다. 그 시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앞선 억울한 죽음의 이유로 귀인이 되었다면, 1000년 동안 강림 일행이 귀인으로 만난 사람들이 왜 48명 밖에 없었을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억울한 죽음과 의인은 엄연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것이 당연히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2편의 설정까지 바꾸어 가면서 살인을 저지른 이까지 귀인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캐릭터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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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인과 연 스틸컷>


전편에서 대활약했었던 김수홍은 표면적으로는 극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지만 이렇다 한 서사를 부여받지 않았다. 김수홍의 억울한 죽음을 입증하기 위한 실마리는 철저하게 세 명의 처사의 과거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단서로 쓰인다. '이게 내 재판인지 네 재판인지'라는 수홍의 대사처럼 수홍의 재판 역시 강림의 과거를 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전편에 다음 시리즈 예고하며 등장하면서 많은 기대를 낳았던 성주신 역시 마찬가지다. 감초처럼 극의 환기를 시켜주었지만, 성주신이 들려주는 해원맥과 덕춘의 옛날이야기라는 수식어가 전부이다. 많은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 동안 넣기에는 여러 제약이 많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이야기의 초점이 완전히 세 명의 처사에게만 맞추어졌고 그 외의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평면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신과함께-인과연은 성인 여성 캐릭터가 전무한 철저한 남성 위주의 영화이며 여성 캐릭터는 처사인 덕춘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편에서도 이야기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는 처사인 덕춘과 몸이 불편하면서도 아들들을 위해 헌신하는 전형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머니의 역할뿐이었다. 덕춘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서사를 부여받았지만 덕춘의 모습은 전편의 헌신했던 어머니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천 년 전의 고아들의 엄마라는 수식어처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과 천 앳된 얼굴의 어리숙하고 보호받는 역할을 하며 모성과 소녀성을 동시에 부여받는다. 단지 이제껏 보아왔던 박제화 된 여성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저승에서도 통하는 염라수저


영화 속 사후세계의 재판은 생전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사후에서는 악인들이 제대로 된 심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루어 지었던 게 아니었나? 사후세계는 흡사 인간세계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정도로 신들도 재판 하는데 있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재판의 과정 역시 정교하고 공정하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홍이 단순 원귀가 아닌 의인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갖가지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그러한 점이 더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저승의 법에서도 예외가 항상 존재했었고 그 예외는 특히 염라 한정으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장면을 보면서 저승에서도 심판하고 재판을 하는 건 신이 아니라 별수 없는 인간이구나, 인간이었던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조직이라서 그런 모순점이 존재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저승 처사들의 과거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면서 강림과 해원맥이 고려의 대장군과 장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피치 못할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1편에서는 피치 못한 이유로 시민을 구하지 못했던 김자홍의 동료들도 살인 지옥의 형벌은 피할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들은 아무 형벌 없이 처사 직을 맡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강림은 명분 없는 살인까지 저질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림과 해원맥의 아버지가 염라가 되어서 이들에게 처사 직을 직접 임명했다는 장면이 필요한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염라의 '부성애'이고, 강림에 주어지는 천 년 동안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형벌이고, 모든 등장인물의 연이 이어져 있다는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다른 의미로 읽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주신의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있는 것"이라는 대사는 이와 일맥상통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강림 역시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나쁜 상황이었을 뿐. 나 역시 강림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림이 이 영화에서 그 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수만 가지 이유로 일곱 개의 지옥에서 몇 백, 몇 천년간 형벌을 받아야 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천 년 동안 처사 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면 그것이야 말로 저승에서도 인과 연이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쓰다 보니 아쉬웠던 부분 위주로 쓰여졌지만 절대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 영화의 문제점은 그대로 답습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점이 씁쓸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기존의 한국영화의 소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며 이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가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영화들이 더욱 더 견고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선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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