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수를 용서하라, '밀양' [영화]

당신은 어떻게 극복하실건가요?
글 입력 2018.08.1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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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참 아끼는 영화 '밀양'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영화 '밀양'하면 떠오르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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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오게 된다. 막막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피아노 집을 차리고 땅도 알아보러 다니며 악착같이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밀양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중, 아들 준이 납치되어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그리고 신애의 세상은 무너졌다. 준은 신애가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백 마디 설명보다 전도연 배우의 연기를 보면 아들을 잃은 고통이 잘 전해질 것이다.
 
그런 신애는 살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 하느님께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한다. 모든 일엔 주님의 뜻이 있고, 진정으로 용서하고 하느님을 섬긴다면 구원의 배에 오를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주님을 만나 웃음을 되찾은듯한 그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신이 나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을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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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불교의 내세관에 바탕을 둔 영화 '신과 함께-죄와벌'의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 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저승법 제 1조 1항!
이승에서 진심 어린 용서를 받은 자는
저승에서 다시 심판할 자격이 없다.


염라대왕의 이 말은 영화의 주제를 잘 담고 있다. 알다시피 영화에서 나오는 7개의 지옥은 기준이 정말 높다. 저런 사후세계라면 나는 1단계에서 바로 지옥으로 떨어질 것 같다고 많은 사람이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살아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느냐에 있다. '이승에서 용서를 받은 죄는 저승에서 심판하지 않으니, 이승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되 만약 지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여라'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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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세관과 정반대로 영화 '밀양'에선 기독교의 '용서'에 대한 교리가 나온다.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회개하면 사하여 주리라는 것과 자신의 원수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한 건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에게가 아닌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부조리함을 정확히 꼬집는다. 신애가 용서하기 위해 찾아간 범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회개하여 죄를 다 용서받았다고 말하며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교회를 다녔던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일주일 동안 저지른 모든 죄를 기도로 회개하면 하느님이 다 용서해주신다는 목사님의 말. 참 이상했다. 그럼 사람을 죽이고도 열심히 기도하면 다 용서해주는 건가? 어린 마음에 이런 의문을 가지곤 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아무 걱정 없이 자애롭게 웃고 있는 교회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범인의 말에 충격을 받은 신애는 신을 혐오하게 되고 결국 자살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세상에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걸, 그리고 오롯이 내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걸.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는 자신이 직접 길어진 머리를 싹둑싹둑 자르며 자기 안에 아주 작은 불씨처럼 남아있는 굳건함을 보여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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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은 보기 드물 정도로 꾸밈 없는 영화이다. 밀양 시내에 있는 가게들, 풍경들, 빛, 그곳의 사람들, 화면안에 잡히는 모든 물건까지 원래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공간으로 다가오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그리고 주민들, 교회 사람들, 종찬(송강호)도 다 있을법한 인물들이다. 현실적인 배경과 대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연기의 강약조절을 완벽하게 해낸 전도연 배우 덕분에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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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신을 믿지 않게 된 막연했던 이유를 조금 정리할 수 있었다. 일단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신의 교리대로 살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일엔 신의 뜻이 있다는 말로는 이해되지 않는 억울하고 슬픈 일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신애가 겪은 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런 억울하고 슬픈 일을 겪고도 살아갈 힘이 신이 아닌 인간 안에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이 신에게 기대지 않고도 충분히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현재 내 생각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다. 내가 교회에서 하루 종일 살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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