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 [공연]

과연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요?
글 입력 2018.08.1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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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뜬 달 (1).JPG


솔직히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마당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한 것이기도 했고, 일전에 보도 자료에서 이 극을 연출한 연출가의 ‘가장 무더울 때인 데다가 인지도도 높지 않은 우리 공연을 많이 보러 올 리 없다’는 자조적인 글을 읽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 오전에 피치 못 할 일정이 있었고 스스로에게 원망스럽게도 시작 시간보다 늦고 말았다. 원래 대학로 연극이란 시작되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더군다나 분명 공연 사진에선 무대 위에 관객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급해졌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우금치 극단의 번호를 찾았지만 주말에 받을 리 없었고 나는 혜화 역까지 발만 동동 구르다 내리자마자 마구 뛰었다. 다행히 극장은 근처였고 건물은 생각보다 컸다.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을 때 나는 내 이름을 외치면서 들어갔다. “아트인사이트 서혜민 인데요, 늦어서 죄송하지만 들어갈 수 있나요?” 직원들은 서둘러 나의 티켓을 건네 주었고 시간을 보니 5분이 늦어 있었다. 그렇다면 무대 위인데 들어갈 수는 있는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이어지는 직원 분의 안내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1층은 이미 만석이어서 들어갈 수 없고요, 2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2층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이미 나는 세 번째 줄에 앉을 순번이었다. 2층까지 사람이 이 정도라니 1층은 어떨지 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속으로 조금 많이 놀랐다. 무대 위 좌석은 물론이고 1층의 넓은 좌석 모두가 가득 차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무대 위에는 일반 마당극이 아닌, 극단 우금치의 공연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극을 보면서 극단 우금치의 ‘천강에 뜬 달’ 공연이 인기있는 이유는 스토리 진행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5∙18 광주에서 억울하게 아들과 남편을 잃고 아직도 시위에 나가는 할머니와 그가 시위에서 만나는 세월호, 옥시의 피해자들, 실적만을 강요 받는 평범한 가장과 결국 3D 직종 밖에 갈 곳이 없는 그의 아들 세대 청년들, 그리고 그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모두가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고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전혀 구차하지 않게 억지 부리지 않고 핵심만 잘 표현해 내었다. 모두의 연결성을 강조하여 이어짐이 자연스러운 것도 좋고 하나의 이야기가 다소 길어질 만할 때쯤 빠르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는 것도 좋았다. 건드리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범위가 너무 넓어져 난잡 해질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명확 하게도 그 모든 이야기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했다. 극단 우금치는 이 공연을 통해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세상은 바뀔 수 있는가?
 

세상은 원래 그렇다. 뭐든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돈도 부모도 외모도 아등바등 노력해 봤자 애초에 다른 수저 물고 태어난 애들 못 이긴다. 착하게 살고자 하는 이유도 비슷한 거 아닐까? 지금 생은 영 아니지만 다음 생만큼은 더 잘 태어나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세상 너머를 간절하게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음은 이를 반증한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 했어도 결국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고,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의 마음도 끝내 얻지 못했던 나의 경험처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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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 뜬 달’ 속의 사람들도 그랬다. 사람들은 각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를, 그의 아들은 남들 다 다니는 직장을 원했다. 극에서는 그것 때문에 다양한 갈등이 발생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다지 대단한 걸 원한 것도 아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원하는 것조차 큰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한 건 오직 진심 어린 사과였다. 그러나 이 세계의 대다수에 속하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평범한 그들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소리쳐도 메아리처럼 그 소리는 앞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자꾸만 되돌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낙담했다. 아, 세상은 원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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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VERETT COLLECTION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바꾸려고 했던 수많은 외침들이 헛된 것이라고만 볼 수 있는가? 지구는 지금도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멀미가 나서 항상 귀 밑에 약을 붙이고 생활해야만 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느끼든 말든 지구는 조금씩 움직여 우리의 하루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지구처럼, 우리의 목소리는 아주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언젠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아이가 세상을 바꾸는 행동을 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단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며 그 때 그들에게 자신과 같이 세 사람에게만 선행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른 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 것이고 그러면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처럼 단순하다. 내가 작은 행동을 시도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우금치는 목소리를 낸다. 그들이 만든 극 속에서의 인물들 또한 그렇다. 현실에 안주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행동을 하지 못하면 소리라도 치고, 그마저도 못하면 노래라도 부른다. 이유는 단지 자신이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소박해 보이는 이 이유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눈물을 흘렸고 때론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믿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공연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 극의 내용에 공감하며 같은 한을 공유하는, 수많은 관객들은 그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잊지 말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면 정말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희망을 가지고 그래도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우금치의 질문에 답 해보자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조금씩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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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jpg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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