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스릴러라는 외피를 두른 사회 비판 영화, 목격자 [영화]

적당히 스릴있고, 명확히 주장하는 영화 '목격자'를 먼저 관람하다
글 입력 2018.08.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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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뉴욕, 29세의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귀가 도중 한 강도에게 무차별하게 폭행을 당한다. 당시 폭행은 30분이 넘도록 지속되었으며, 범인은 폭행을 멈추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 폭행을 지속하는 등 잔혹한 범행 행각을 벌인다. 당시 무려 38명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거나 구조 요청을 들었지만, 모두 제노비스의 간절한 도움 요청을 외면했고 결국 그는 사망한다. 이 사건은 현대인의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주의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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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8월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 '목격자'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이성민과 김상호, 진경이라는 연륜 있는 실력파 연기자들과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가고 있는 곽시양이 출연하는 스릴러 영화. '제2의 숨바꼭질'을 꾀한다는 홍보문구에 괜히 쫄아(나는 무서워서 중간부터 못 봤던 그 영화...) 한국영화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한쪽 팔을 오늘 하루만 빌려달라고 사정하며 영화관에 도착했다. 입장 전, 음료와 팝콘을 사면서 혹시 너무 놀라 내 팝콘들이 '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그 유명한 팝콘 씬처럼 영화관 공기 중으로 공중부양하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봤지만, 단 게 당겼으므로 그냥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것으로 판명됐다.

오버 좀 보태 얘기해서 그렇지, 사실 내가 그렇게까지 무서운 걸 못 보지는 않는다. 다만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숨바꼭질'과 '추격자' 정도의 긴장감을 표방한다고 했기에, 그리고 내가 살면서 보다가 무서워서 멈춘 스릴러 영화 두 편이 딱 그것들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열심히 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쓰릴 하기는 한데, 연출은 약간 액션 영화 같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 비판 영화에 더 가깝다. 기대했던 바를 완전히 충족하진 않지만, 어딘가 다른 방면의 만족감을 주는 영화였다고나 할까.



영화의 시작부터 끝을 잇는 분명한 주제의식

영화를 간단히 분류하면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심오하고, 여러 번 꼬아놔서 골똘히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 가야 하는 영화와 보여주려는 것이 명확하고 분명해 누구나 딱 명확한 주제를 떠올릴 수 있는 영화, 그리고 그냥 별 주제 없는 감정 분출을 위한 킬링타임용 영화. 모두 각각의 매력이 분명하지만, 관객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수 있는 분류법이다. 나는 이 세 타입의 영화 모두를 골고루 좋아하는 편인데, 영화 '목격자'는 완벽히 두 번째 타입에 속하는 영화였다.


초반 줄거리

이성민이 분한 주인공 상훈은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중년의 직장인으로, 평소 괜한 일에 엮이면 피곤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대출 끼고 얻은 아파트에 이사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늦게까지 술을 먹고 귀가한 그는 집에서 홀로 맥주를 한 캔 더 하며 창밖을 바라보다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대범하게 여성을 망치로 폭행하는 범인을 본 상훈은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112를 누르다가 잠에서 깬 아내 수진(진경 분)이 불을 켜자 놀라서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바로 불을 끄지만 이미 불빛을 발견한 범인은 자신을 목격한 상훈의 아파트 층수를 세고, 상훈은 혹시나 자신과 가족이 위험해질까 봐 사건을 방관하기로 한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꼬집는다.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죽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또다시 타인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살인범을 방조한 상훈.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경찰 조사에 협조하지 말자는 서명을 돌리는 아파트 부녀회장. 이에 동조하며 상훈에게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상훈의 아내 수진. 사람이 사라졌는데 안 그래도 흉흉한 분위기 더 안 좋게 만들지 말라며 아내를 찾는 전단지를 붙이는 이웃을 타박하는 아파트 주민들까지. 그들의 모든 이기적인 행동과 발언들은 쌓이고 쌓여 결국 이웃에게도, 그들 자신에게도 더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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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목격자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경찰 재엽의 갖은 노력에도 상훈을 포함한 동네 주민들은 괜한 일에 엮여서 피곤해질까 봐, 혹시 범인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괜히 말이 더 나오면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사건을 점점 꼬이게 만들고 범인을 더 자유분방하게 만들어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 제노비스 사건의 범인 모즐리는 법정에서 사건 당시 집집마다 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사건 장소로 내려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그가 35분여간 그렇게 끔찍하고 대범한 범행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주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범인의 손발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열쇠가 무관심과 이기주의라는 것을 영화는 온 러닝타임을 할애해 강조한다.



답답한가? - 상훈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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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의 행동은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없고 상당히 답답하며 비도덕적으로 보인다. 경찰에 대한 불신과 범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괜히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일말의 죄책감이 그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그냥 가서 신고하면 될걸! 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범인이 자신을 알고 있는 데다 자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자신이 상황을 목격했다고 밝히지 않은 것은 관객에게 상당한 '고구마'를 선사하지만, 앞서 소개했던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방관자 효과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서 38명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굳이' 자신이 그 사건에 엮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신고를 하거나 제노비스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이는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이 분산되어 오히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덜 돕게 되는 현상인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을 잘 보여준다. 이 제노비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왔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상훈이 유일한 목격자다. 때문에 방관자 효과가 성립할 조건이 아니었고, 상훈도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려고 시도했다. 문제는 자다 깬 수진이 밖의 상황을 모르고 불을 켰고, 그로 인해 범인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이 특수한 상황에서 상훈은 망설였고, 이미 피해자가 죽었을 것이로 생각하고 결국 사건을 방치했다.

그러나 상훈이 사건을 목격했을 때 까지만 해도 피해자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중된 그의 죄책감은 오히려 사건에 대해 말하려는 그 자신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말자는 서명을 돌리는 부녀회장에게 협조하며 자신에게 서명을 종용하는 아내 수진에게 상훈은 버럭 성질을 낸다. 아파트 뒷산에 산사태 방지는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일엔 득달같이 나서서 서명을 돌린다고 빈정대며 이기적인 주민들의 태도를 힐난하는 그의 모습은 정작 자신도 사건을 방관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다. 어쩌면 상훈의 답답한 태도는 평범하게 도덕적이고 평범하게 이기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목격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범인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비도덕성을 타인에게(심지어 아내라고 할지라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문 것이 아닐까. 위선을 떨며 자신의 도덕성을 전시한 뒤 결국 서명에는 동참하는 그의 모습은 참 찌질해서 현실적이다.


※여기서부터는 결말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쉬운 결말

여러 매체나 현실에서 그렇듯, 한국만큼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곳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느꼈다. 이 영화에서 온전히 선한 역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캐릭터가 경찰인 재엽(김상호 분)인데, 목격자를 찾아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목격자로 추정되는 상훈을 여러 번 설득하는 인물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증언하도록 수차례 설득하는 재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인에 대해 털어놓지 않는 상훈에게 답답함까지 느끼기 쉽다. 실제로 침묵을 지키는 상훈으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도 범인을 잡아넣어야 모든 것이 완벽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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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말을 보면 꼴이 좀 우스워진다. 주민들의 희생이 잇따르자 상훈이 마침내 경찰에서 증언하지만, 상훈의 증언을 확보하고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은 범인의 꾐에 당해 그를 놓쳐버리고 만다. 덕분에 열 받은 범인은 상훈의 가족들을 해치기 위해 찾아가고, 경찰들은 그들을 지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상훈 홀로 범인과 맞서 싸우고, 산속에서의 벌어진 난투극 끝에 범인이 체포된다. 사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따르기 위해서는 상훈이 진작에 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에 협조적으로 굴어야 했을 텐데, 아무리 비협조적이었던 그의 태도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꼬여버린 것이라고는 해도 경찰은 범인 검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덕분에 "뭐야? 결국 경찰에 말해도 해결되는 게 없었잖아? 역시 내 한 몸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뭐든 괜히 엮이지 않는 게 좋아"하고 비뚤어진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결말이 된 것이다.

물론 스토리의 전개로 봐서는 경찰이 범인을 놓치는 것이 더욱 흥미진진한 전개로 이어지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버린 덕분에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훈의 침묵에 이상한 정당성이 부여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에 계속 등장해온 재엽이라는 캐릭터의 역할과 캐릭터 가치도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범인 체포 과정에서 재엽에게 적당히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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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라는 외피를 두른 사회 비판 영화, 목격자.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점점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볼 기회가 되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쫄깃한 긴장감의 수치는 확실히 표방하던 제2의 숨바꼭질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주제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목소리 강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람을 추천한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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