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시즌 1 종료, 아무말 대잔치

글 입력 2018.08.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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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시즌 1 종료, 아무말 대잔치


어렸을 때 읽고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동화가 있다. 정확한 내용이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제목이 '잠자리 꿈자리'정도 였을 것이다. 기껏해봐야 가을을 사는 잠자리(혹은 자칭 타칭 꿈자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이들의 순수하고 잔혹한 손아귀를 피하며 글자를 배웠다. 그는 글자를 배워 달까지 날아가 자신의 이름을 새기길 바랬다. 그래서 모든 생물체가 꿈자리가 새긴 이름을 보고, '아, 잠자리 꿈자리가 저기에 자기 이름을 남겼구나'라고 생각하길 바랬다. 글을 쓸 때 가끔 꿈자리가 생각난다. 나는 꿈자리를 이해한다. 정확히는 그의 꿈보다는 욕망을 이해한다. 애시당초 꿈자리도 자기 이름을 새기기는 커녕 달까지 날아가지도 못했다. 그도 그러한 꿈이 터무니 없다는걸 알면서 죽었다. 죽었다고 하니까 되게 동심파괴 같은데. 사실 걔, 진짜 만족스럽게 죽었다. 최소한 왜 그렇게 달에 가고싶었는지를 스스로 이해했으니 그 꿈이 정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달'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이 영원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길 바라거나, 내 글이 유명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정보와 코드 사이에서 휩쓸리는 내 활자들에 이 감정과 생각이 남아있다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내가 소중히 두드렸던 활자들이 '데이터 정리'에 의해 언젠가 휩쓸려나가겠지만, 어느 한 순간에는 기록되고 보관되었다는 것이 좋다. 활자에는 시간이 녹아든다. 내 삶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활자를 두드린 시간만큼 말이다. 활자는 그래서 살아있다. 활자는 나보다 더 나답다. 나의 일분 일초는 소멸해가지만, 활자는 통조림처럼 시간을 낼름 삼켜서 껍질의 수명만큼 보존한다.

쭉 쓰고나니까 조금 변태같고 섬뜩하기도 한데, 제발 단순히 생각해주길 바란다. 쪽팔리기도 하지만 진짜로 질척질척한 감정은 아니다. 글을 쓰는 내가 엄청난 감성의 파도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뭐 초등학생들이 타임캡슐 만들 때 대단한 감성을 가지고 묻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현재 타자를 치고 있는 나의 눈은 매우 건조하다. 아마 당신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적절한 타이밍을 우리 몸의 털만큼 가지고 있다(혹시 모를 머리 깨끗한 분들을 첨언하자면, 융털을 포함해서). 나중에 이걸 다시 읽는 나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솔직히 그때도 내 안구는 매우 건조할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내 얘기만 했다. '진주의 알콩달콩 타임캡슐 만들기!'을 위해 당신들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죄송하다. 굳이 일기장이 아니라 후기라는 이름으로 뻔뻔하게 글을 올리는 것도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 때문이다. TAROTEA는 사실 '내 생각'의 여행처럼 보였지만, 정말 나 혼자 쓴 글은 아니었다. 무슨 후기나 인터뷰어들이 의례처럼 말하는 '제가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여러분 덕이에요'를 내가 시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상황이 오고나니 이제야 알겠다. 그건 진짜 그런거다. 글을 쓰면서 외부의 시선을 고민했다. 내 글을 읽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고민하고 나니 혼자하는 작업인데도 여러명과 함께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타로카드의 모든 인물들과 한번씩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타로카드의 주인공들을 조금씩 닮아있지 않은가. 나는 당신들 중 가장 그 인물에 가까운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곤 했다. <바보>의 순진무구함, <여사제>의 모순과 절제, <교황>의 조금 꼰대같지만 사랑스러움, 고전의 인물들을 빌어왔지만 사실 주인공은 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었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성장시켰다. 당신들의 대부분은 아무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신들이 무엇을 느꼈는지가 궁금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겠다. 그것이 나름대로의 메시지였건, 즐거움이었건, 교훈이었건, 비웃음이었건, 지루함이나 무관심이었건 내 글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미 성공한 대화를 한 셈이다. 내가 당신들의 무언에서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당신도 참 수고했다. 서로 소리를 질렀건, 관심없이 핸드폰으로 서로 딴 짓을 하고 있었건, 포옹을 했건 그거 전부다 에너지 소비 아닌가. 나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신도 지금 여기까지 읽으면서 움직인 손가락 운동만 생각해도 적어도 3칼로리 정도는 소비했을 것이다. 칼로리 이야기는 장난이고, 글을 읽었다면 같이 뭔가의 소통은 있었던거니까 말이다. 정보가 너무 투머치한 세상에서 이렇게나마 우연히 당신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써 즐거웠다.

우리가 망한 대화를 했건, 성공적인 대화를 했건 상관없다. 나에게는 모든게 의미 있었다. 바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변화하는 것처럼, 나도 글을 쓰면서 변화했다. 실제로 신분도 많이 변화했다. 나는 지금 수습 기자로 일하고 있고, 사람들과 여러 일이 있었다. 모든게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의 중간중간에는 흰밥의 초록콩처럼 이 연재물이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써내려간 활자는 글을 쓰고 있는 나보다 역동적이다. 살면서 '연재'라는 이름을 달고 어디에 뻔뻔하게 글을 쓰게될 줄 몰랐는데, 어설프게나마 벌써 첫번째 시즌이 종료되었다.

그래서 고맙다. 나는 이 순간, 이상한 유대감을 느낀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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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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