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의 사랑의 색은 무엇이었을까?

글 입력 2018.08.0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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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Chagall Love & Life 展에 갔다. 방대한 양의 그림 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영상물과 프로젝터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회는 [초상화 그리고 자화상/ 나의 인생 / 연인들 / 성서 / 죽은 영혼들 / 라퐁텐의 우화 / 벨라의 책] 이렇게 일곱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섹션마다 벽의 색깔이 다르게 칠해져 있다.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한다는 샤갈을 주제로 한 전시회답게 섹션들마다 다른 색을 칠한 것이 좋았다. 그림 옆 설명과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 그리고 내가 느낀 것들을 최대한 끌어내 리뷰로 남기고자 한다.



삽화


샤갈의 삽화는 기억에 정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이 있어서 그런지 샤갈하면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들만 떠올렸는데 주로 흑백으로 이루어진 삽화들을 감상하며 샤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자서전인 ‘나의 인생’, 니콜라이 고골이 쓴 ‘죽은 영혼들’, 라퐁텐의 우화 그리고 벨라의 책에 삽화를 그려 넣었다. 나는 그 삽화들이 굉장히 섬세함과 동시에 왜곡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을 강조하는 현대미술과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자화상.jpg
자화상 no.17


‘나의 인생’에 수록된 삽화들은 대부분 드라이포인트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드라이포인트는 동판화의 일종으로 부식시키는 과정 없이 판면에 직접 예리하고 단단한 철침으로 강하게 긁어 그리는 기법이다. ‘나의 인생’ 중 ‘자화상 no.17'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자신이 머리에는 고향 집을 올려두고, 목 부근에는 부모님과 아내와 딸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마치 자신의 물리적인 일부처럼 그려 이들이 얼마나 큰 중요성을 갖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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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혼들’은 우스꽝스러운 풍자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호적상에는 살아있는 죽은 농노들에게까지 세금을 물리는 악독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세금 징수가 영혼들의 수를 조사하는 인구조사보다 더 자주 있었다는 설정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죽은 사람한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같은 제도들이 있었는데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의 삽화들과 느낌이 비슷해서 이 그림들도 드라이포인트로 제작되었겠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보니 드라이포인트와 함께 에칭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에칭은 산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판화의 한 방법이며 부식액 속에 담겨진 판은 바늘로 긁어 그라운드가 벗겨진 부분만 부식이 됨으로써 판에 그 형태가 새겨지는 기법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이 삽화들이 펜으로 그려진 줄 알았는데 에칭 작품들은 펜이나 연칠로 종이 위에 직접 그리는 것과 같이 선들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천재가 펜으로 자유롭게 끄적끄적 낙서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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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퐁텐의 우화 섹션은 가장 재밌게 본 섹션이다. ‘라퐁텐의 우화’는 무려 240여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인데 이솝우화나 유럽의 구전문학으로부터 온 환상적인 시, 소박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 신화 속 영웅이야기, 의인화된 동물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인화된 동사물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많이 전래되었는데 재미있게 읽다보면 마지막에 웃음과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생각나는 이야기로는 호랑이와 남자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가 남자에게 찾아와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청하자, 남자가 자신의 딸은 털과 이빨을 싫어하므로 털과 이빨을 모두 제거하고 오면 생각해본다고 한다. 호랑이가 털과 이빨을 모두 제거하고 오자 더 이상 호랑이가 무섭지 않은 남자는 호랑이를 때려죽였다 (약간의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음).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그 이야기가 한 장으로 요약된 샤갈의 삽화를 보면 재미와 교훈이 배가 된다.



유대인 모티프


종교적인 삶은 샤갈의 인생에 있어서 꽤 큰 부피를 차지한다. 이번 전시회만 봐도 종교적인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샤갈은 비테프스크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자신의 종교적 생각들을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많은 작품 중 세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작품은 ‘기도’이다.

샤갈은 젊은 시절 파리에서 큐비즘과 입체주의를 흡수해 러시아에 돌아와 그것들을 자신이 개발한 유대인 모티프에 혼합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모습은 유대인의 종교적인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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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테프스크 위에서


두 번째 작품은 ‘비테프스크 위에서’이다.

이 작품 속엔 하늘을 나는 늙은 남자가 등장한다. 떠다니는 사람은 샤갈의 그림에 종종 등장하며 샤갈의 시그니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의 충만함에 의한 떠오름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그림의 진짜 의미를 볼 수 없었다. 여기서 하늘을 떠다니는 남자는 방황하는 유대인을 상징하며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즉 조국을 읽고 타국에서 방랑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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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천사
 
세 번째 작품은 ‘추락하는 천사’이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데, 이 그림에서 중요한 건 유대인이 쥐고 있는 ‘토라’(율법서)이다. 유대인은 추락하는 천사로부터 토라를 최대한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어디론가 도망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오디오 해설에선 샤갈이 이 그림을 통해 토라의 유대전통을 보존하려는 깊은 의무감과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 대해 경고해야한다는 의무감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성서


샤갈은 예술가란 성서 속 예언자들의 영혼을 지닌 신성한 신의 사자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드러내는 전달자이자 마치 신이 그러하듯 작품을 빚어내는 창조자라 여겼다. 자신의 정체성을 ‘신’과 연결하여 정의하는 걸 보면서 샤갈이 종교를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성서 섹션에는 아브라함의 희생제물, 홍해를 건너감, 십계명 석판돌을 받는 모세 등등 다양한 성서 속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샤갈의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매우 잘 어울린다. 큐비즘을 받아들인 샤갈의 그림 자체가 유리 조각을 따로 붙였을 때 나오는 왜곡적인 느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원색 색감 또한 비슷하다. 샤갈은 성서의 인물을 종종 동물로 표현하여 상징적인 의미를 강조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었으며 그는 자신에게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신의 심장과 세상의 심장 사이에 놓인 투명한 칸막이와 같다고 말했다.



연인들


샤갈의 그림에 꽃은 매우 다양한 주제에서, 자주 등장한다. 초기 작품엔 꽃이 부차적인 소재에 불과했지만 아래의 ‘연인들’에선 꽃다발이 사람보다도 크게 그려져 있으며 연인들의 초상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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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샤갈은 프랑스 시민권을 얻고 엄청난 행복감에 적어 프랑스 국기 색깔인 파랑, 하양, 빨강을 주로 사용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빨강과 하양 꽃다발 속에 마치 다정한 연인이 부드럽게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은 배경의 파랑색이 따뜻하게 그들은 감싸준다는 느낌까지 준다. 꽃다발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한 샤갈의 생각을 잘 대변해준 그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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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책’에선 여자가 마치 풍선처럼 남자의 손에 매달려 허공에 떠 있다. 사랑을 할 때 느끼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여자가 땅에 서 있다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서서히 붕 뜨는 장면이 상상되는 재밌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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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색으로 표현하는 생각은 예전에 해본 적이 있다. 세상에 수많은 색깔이 있고, 한 가지 색깔 속에도 채도와 명도에 따라 경우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연애는 비교 불가능한 영역이며 모두 제각기의 연애를 하고 있으므로 연인마다 사랑의 색깔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전시회 앞에 있던 ‘당신의 사랑의 색은?’ 설치물이 반가웠고 샤갈의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색들이 예시로 나와 있어 좋았다. 사랑을 하고 있다면, 혹은 사랑을 한다면 자신의 사랑은 어떤 색깔을 띨 지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노란색이라면 어떤 느낌의 노란색인지, 부드러운지 차가운지, 유광인지 무광인지, 다른 색깔이 첨가되어있는지 그저 노란색인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이다.

샤갈은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 사랑의 색이라고 말한다. 이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향과 종교에 대한 사랑, 가족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인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샤갈의 그림을 보고 나면 높은 확률로 행복해질 것이다. 문득 샤갈은 사랑의 색으로 어떤 색깔을 뽑을지 궁금해진다. 저 여섯 색깔 중 하나를 뽑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냥 기권표를 던질 지도 모르겠다. 샤갈이 무슨 색을 골랐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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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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