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비 취준생 입장에서 읽어본 퇴사 에세이 [도서]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
글 입력 2018.08.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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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졸업예정자이자 내년엔 취준생이 되는 예비 취준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게 되고 나름대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 일단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어쩌면 상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는 과제에는 여전히 미제출인 상태이다. 목표로 하고 있는 일은 있지만 내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진정으로 그 일을 좋아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 전공에 관심도 있고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그때의 선택이 착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힘든 봄을 보냈다.

학교를 다닌다는 건 휴학하고 싶은 충동의 연속이었다. 입버릇처럼 다음 학기는 정말 휴학할래, 휴학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져볼래 이야기했지만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막연히 졸업하기 싫으니까 도피성으로 생각한 것이지만 막상 휴학을 하고 헛된 시간을 보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야 할지 마땅히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쉼 없이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고, 이제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누릴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쑥 휴학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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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영 저자의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는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땀을 식힐 겸 간단히 책 한 권 읽어가자 하고 제목만 보고 이끌리듯이 고른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 휴학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졸업을 하고 공백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전의 질문이 두려워 휴학을 고민했던 것이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후의 질문을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펼쳤지만 아직 취업을 해본 적이 없는데 퇴사 이야기라니, 나 같은 예비 취준생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가보지 못한 달의 뒷면에 대한 이야기?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정한아 <달의바다> 中
 
 
이 문단 자체가 내 상황 자체를 대변해주는 것만 같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읽은 책으로 책의 첫 문단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달의 매끈한 앞면만 보고 꿈을 꿔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상처투성이인 달의 뒷면을 알고 있더라도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 기대했다가 실망하게 되는 일의 반복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지금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일들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른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은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목표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만약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그 후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책도 그런 점을 포착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시작했는데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였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퇴사'라는 주제의 에세이집이지만 그것보다도 어떤 일을 매듭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퇴사는 누구나 겪는, 그다지 별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베스트셀러란 한편에는 퇴사와 관련된 책이 보이기 시작하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는 퇴사 관련 이야기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퇴사는 전처럼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다지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한 개인에게 있어서 퇴사라는 결정은 당연히 쉽지만은 않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회사를 그만두었다거나 원치 않은 방식으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에는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다음 스텝을 위해 발 돋움을 하기 전에 자신의 리듬을 다시 되찾고 유지하는 시간, 퇴사 이후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저자는 공백기가 아니라 '이행기(移行期)'라고 표현했다. 직장인이 된 후 두 번의 이행기를 거쳤고, 세 번째 이행기를 보내며 10명의 이행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10명의 에세이 사이사이에 열 가지 소제목의 Think라는 저자의 사유가 담긴 글이 함께해 이음새를 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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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주인공인 10인 모두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일종의 번아웃처럼 늘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너무 부족했다는 걸 깨닫는다. 무언가를 항상 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은 강렬한 게 있다. 잠시 쉼의 시간 동안 다시 좋아했던 것을 찾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용기를 가지고 불확실한 시간을 담대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이렇게 10인 10색의 각기 다른 시간의 색을 읽어내면서 제일 먼저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위안이었다. 회사에서 갖가지 힘든 일을 겪으면서 매일 성실하게 직장인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노력과 자세를 무의미하게 말하지 않았고 퇴사를 종용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퇴사를 고민하고 있거나 막 회사를 떠난 이들에게 ‘다 잘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꼼꼼하게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큰 힘이 되었다.

항상 마음 한편에 불안한 마음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당장 내가 했던 일이 의미가 없어버린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물거품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래도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도 함께 읽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낙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뭔가를 차근차근 해내가다 보면 내 길도 언젠가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국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들이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과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휴학을 고민했던 것과 맞닿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처한 상황은 다르더라도 결국 같은 지점에 서서 불확실성과 마주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보장되지 않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동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의 말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이야기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도 하고 실험해 볼 것, 그 일이 무모하더라도 괜찮다. 인생은 때론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실패하더라도 의외의 방향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는 과제는 여전히 미제출인 채로 졸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을래.


이미지 출처 : o-y-e.kr, 종이섬


[박선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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