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Episode 4-1. 꼭 꼭 숨어라

나는 이 글을 얼마나 연재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18.07.2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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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얼마나 연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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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Episode 4-1. 꼭 꼭 숨어라



[5월 2일]

글과 그림, 3편을 쓰고 방황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연재할 수 있을까, 너무 막연하고 두렵다. 누가 "야 너 이만큼까지 쓸 수 있을걸?" 이라고 말해주면 조금 안정이 될까, 불가능한 걸 알기에 상상을 그만둔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나. 기계처럼 고민이 출력된다. 그리고 쌓여 간다. 내 앞에.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쌓이는 것만 같다. 열심히 일해라 나야.

...

쓴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나의 아무 말은 생각보다 내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었다.
백지만 출력하던 머릿속 인쇄 기계에서 드디어 뭔가 적힌 게 인쇄되었다. "기계처럼 고민이 출력된다.". 나는 잠시 그 종이를 들고 멍 때린다. 그 이후로 계속 줄줄이 알 수 없는 기호인지 단어인지 외계의 언어를 머릿속에서 계속 인쇄하면서. 나는 이 말들을 해독해야 한다. 일단 인쇄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집으로 가야겠다. 아무것도 안 잡힌다.



[5월 3일]

새벽에 막연함을 이기지 못해 위로정식*에 다녀왔다. 위로를 받았지만, 나의 고민은 내가 답을 내려야 했다.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것, 든든한 위로란 그런 것이었다. 위로라는 힘을 얻고 나서도 여전히 일상의 고민 속에 있는 나는 오늘도 기계를 돌린다. 흰 종이가 흐리멍덩해진 회색이 되어 쌓여 간다. 이걸 어떻게 읽어? 나는 나에게 탓한다.

바보 같다.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할까. 이 고민을 글에 드러낸다는 것도 참 특이점이 온 것 같다. 이 글이 어디까지의 아무 말을 담아낼까. 잠깐 속으로 한숨에 뒤섞인 채 웃는다. 기계를 강제로 멈춘다. 종이가 더 이상 쌓일 곳이 없다. 나는 종이 무더기 속에 빠졌다. 빠져서, 음... 일단 빠졌다. 무엇을 할지는 나도 모른다.

우선 종이 내음을 느낀다. 내 상상인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여튼 내 기억 속에 있는 종이와 잉크 냄새를 떠올려 본다. 살금살금. 종이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의 종이를 정리 해 본다. 탁탁. 어차피 다 못 읽는다, 손에 잡히는 것만 펼쳐 보기로 한다.

해석해 보겠다는 나의 의지로 작은 드로잉북과 샤프를 곁에 둔다. 샤프를 손 위에서 굴리며 종이를 한 장씩 넘긴다. 아무것도 안 찍힌 흰 백지는 거르고 잉크가 번져 버린, 무책임한 회색빛의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오늘 하늘이었다.

*

오늘 구름 엄청 크다.

나는 구름을 좋아한다. 꼭 나 같아서 좋아한다. 구름 없이 맑기만 하늘을 지나, 비구름 가득차 뿌옇던 하늘을 지나, 오늘 아침은 짱짱 큰 뭉게구름이 하얗게, 기분 좋은 하얀색으로 푸른 하늘을 힐끔힐끔 보여주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 좋았다. 다만 갑자기 그 많던 구름이 먹구름이 되더니 거기서 우박이 떨어지고 비가 떨어져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든 종이처럼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

오늘 구름이 꼭 오늘의 나 같다.

후우

오늘은 나 같은 구름을 불어 보아야겠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그렇게 나올 거야.
이제는 나한테 하는 말인지 구름한테 하는 말인지 이 회색빛 종이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너희 셋 다 똑같아 보여.


***


[4월 30일]

꼭 꼭 숨어라



[5월 1일]

나 어디 있게



[5월 3일]

그리던 6번째 무제의 일부를 올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쓴 문장이 내 주변을 꽤 오랫동안 맴돌았다. "꼭 꼭 숨어라".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이유는 숨어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숨어 있길래 나를 이토록 배회하는가 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노래 한 소절이 지금의 나와 만났다. 나는 끊임없이 선명한 것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사람인 것을. 매일이 숨바꼭질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그릴 수 있는 것을 찾아 떠나는.

나는 그 회색빛 종이를 살며시 들었다. 그리고 쓰다듬는다. 내 주변의 구름 위를. 아주 편하게, 아무 의도 없이. 허공에 팔을 아무 이유 없이 천천히 휘젓듯이. 그리고 우연의 기적을 기다린다. 똑. 선명한 조각이 떨어질 때 까지. 그 기적까지. 마치 지금처럼.

준비는 끝났다. 먼저 샤프를 든다. 이제 시작이다.
고개를 드니 회색빛 하늘이 다시 거대하고 하얀 뭉게구름이 되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5월 8일]

물 먹은 휴지가 가득 풀어졌다.
오늘 하늘 말이다. 정확히는 구름. 오랜만에 그림으로 돌아오면서 글들을 보니 오늘 하늘이 궁금해졌다. 저번 하늘도 사진 찍어둘걸, 살짝 아쉽다. 그래서 오늘은 찍어보려 했더니 카메라가 담아내질 못한다. 핸드폰을 그냥 내려놓는다. 물 먹은 휴지가 가득 풀어진 하늘을. 조금 더 눈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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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5일 만이다. 이 그림을 다시 펼치려니 마음이 조금 떨린다.
흠, 좋아 그런데 조금 허전해.
좀 더 내 상상 속을 어루만져 보기로 했다.

*

나는 정육면체가 너무 좋다. 내 입으로 말해도 조금 특이한데 그냥 정육면체 특유의 느낌이 좋다. 반듯반듯 또각또각 그런 느낌. 그리고 무늬가 없는 새하얀 단순함. 나는 결론지은 내 안개를 정육면체로 자연스럽게 상상하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 툭 하고 소리가 나는 형태가 된 그것.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니 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육면체가 더 선명해 보인다.

밤을 더 띄우기로 했다. 동글동글. 또각또각한 정육면체와 어울린다. 물론 내 상상 속에서!

머릿속으로 계속 구름을 쓰다듬었다. 계속 쓰다듬으면 더 그릴 것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모를 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어차피 여긴 내 상상 속 세계니 그걸 마음껏 해보는 게 최고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더 채워야 할 것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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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구름만 걸리겠나 싶었다. 아마 다른 걸림돌 혹은 구름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끼워져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종이에 탁 소리를 내며 걸렸다. 나는 조각 몇 개를 심는다. 뭘 적을지는 지금 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 않아서 빈 공간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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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성을 처방했다. 스멀스멀 비현실적인 상상의 포션이 구름에 퍼져 나간다.

이거다 딱 좋다.
샤프를 내려놓는다.



*

next.

"어서 오세요 위로정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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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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