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세한 에튀드의 향연, < 프레디 켐프 리사이틀 >

글 입력 2018.07.2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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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캠프_포스터.jpg
 

오늘은 기다리던 일요일, 그것도 모처럼 손꼽아 기다려 온 일요일이었다. 바로 예당에서 프레디 켐프 리사이틀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하여, 드디어 프레디 켐프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늘의 폭염도 감내하며 예당으로 갔다.





Programs


N.Kapustin: 8 Concert Etudes for Piano Op.40
카푸스틴: 8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작품번호 40 

I. Prelude
VII. Intermezzo
VIII. Finale


F.Chopin: Etudes Op.10
쇼팽: 연습곡 작품번호 10 

제 1번 C장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E장조
제 4번 c샤프 단조
제 5번 G플랫 장조
제 6번 e플랫 단조
제 7번 C장조
제 8번 F장조
제 9번 f단조
제 10번 A플랫 장조
제 11번 E플랫 장조
제 12번 c단조


< INTERMISSION >


S.Rachmaninov: Etudes-Tableaux Op.39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작품번호 39 

제 1번 c단조
제 2번 a단조
제 3번 f샤프 단조
제 4번 b단조
제 5번 e플랫 단조
제 6번 a단조
제 7번 c단조
제 8번 d단조
제 9번 D장조





시작은 카푸스틴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3곡이었다.
1번째 곡 프렐류드는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음의 향연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카푸스틴의 연주를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프레디 켐프의 연주는 훨씬 부드럽게 와 닿았다. 타건과 페달링이 굉장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실황으로 들으며 더욱 만족한 곡이었다.

7번째 곡인 인터메조에서 켐프는 부드러운 스윙리듬의 매력을 한껏 살려 연주를 들려주었다. 아주 부드럽고 실키한 느낌의 연주가 물흐르듯 이어졌는데, 정말 즉흥 연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한 연주였다. 그럼에도 무엇 하나 과하다는 느낌 없이 연주하는 켐프에게서 노련미가 보이기도 했다.

​8번째 곡 피날레는 빠르게 시작하여 여러 테크닉들을 아주 유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 프렐류드와 인터메조와는 또 다르게, 속도감과 함께 보여준 켐프의 연주는 그냥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는 말 그대로,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카푸스틴의 작품이 재지하다고 말하지만 재즈라 하지 않는 것은 그의 음악은 말 그대로 음표 그대로를 그려내도록 설계되어 있어 즉흥연주가 수반되는 재즈와 다르기 때문인데, 켐프는 그것이 음표대로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전달해주었다. 그 기교를 구사해가며 그렇게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는 것조차 어렵다.

*

그렇게, 관객에게는 아주 부담없이 즐기기 좋으면서 연주자에게는 부담이 컸을 카푸스틴의 연습곡을 즐겁게 감상한 뒤에는 쇼팽의 에튀드가 이어졌다. 오늘 프로그램 중에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가장 익숙하고 잘 알려진 작품, 그리고 피아니스트라면 정말 빠짐없이 거쳐가는 곡이기에 무난하게 잘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10-1을 아주 유려하고 깔끔하게 연주한 후, 프레디 켐프는 10-2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꽤 텀을 가졌다. 2열에 앉았던 터라 켐프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였는데, 그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고 그는 계속해서 오른쪽 손목을 돌리며 푸는 자세를 취했다. 손목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이번 공연의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인데, 특히나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전부 에튀드라 기교를 요하는데, 연주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짧고도 길었던 정적 끝에, 프레디 켐프는 아주 부드러운 터치로 10-2를 시작했다. 흐름이 끊긴 적이 없었던 것마냥, 부드럽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주가 계속되었다. 이별의 노래에서 부드럽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전달해주어서 좋았으나 무엇보다도 잠시 그의 손목을 쉬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10-4에서 추격하는 그 속도감과 긴장감을 표현하려면 그의 손목은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뒤이은 흑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10-6에서 다시금, 느린 템포로 그가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10-12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 이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켐프는 여유롭게, 부드럽게 그리고 매우 섬세하게 한 음 한 음을 전달해주었다. 그의 연주가 자연스러워서 에튀드임에도 연주곡 작품을 듣는 것처럼 즐기면서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켐프가 쇼팽 에튀드 전곡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보인 옅은 미소에 나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가 컨디션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인터미션 후에 이어질 라흐마니노프 에튀드까지도 무리 없을 것 같아서 한숨 돌렸다.

14.jpg
 

인터미션 후 2부는 라흐마니노프 에튀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른바 회화적 연습곡이라 이름 붙은 이 에튀드는 9개의 곡으로 다시금 나뉜다. 연습곡이라지만 단순히 연습곡이라기에는 작품성이 느껴지는 이 에튀드의 1번이 시작되는 순간, 어둡고 무거우면서 라흐마니노프가 보여줄 수 있는 그 화려한 음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켐프는 1부의 카푸스틴 그리고 쇼팽 연주와는 또 다르게, 라흐마니노프의 세계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두껍고, 무겁고, 화려하고, 종잡을 수 없는 듯하면서도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그려지는 그 세계를 말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연주는 39-5였다. 그냥 에튀드라기엔 연주회 레퍼토리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은 곡인데, 특히 이 곡이 라흐마니노프가 보여줄 수 있는 두껍고 무겁지만 화려한 그 매력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프레디 켐프는 섬세한 연주자라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연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역시, 켐프는 뛰어나서, 예단할 수 없는 연주자였다. 그는 39-5를 연주하는 그 순간, 무대에서 완벽하게 하나의 드라마를 선사했다. 가장 유명한 39-6도 좋았으나, 39-5의 여운에서 깨기에는 그 자체가 이미 강렬하게 압도했던 것 같다.

켐프의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연주는, 좋았다. 너무 단순하지만 뭐라 수식하기가 어려울 만큼 좋았다. 기본적으로 켐프의 타건이 매우 부드럽고 섬세하기에 그가 연주하는 쇼팽 연주곡들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1부를 보냈는데, 막상 2부에서 보니 폭발적이고 강렬한 연주도 너무나 잘 소화해내는 것이다. 물론 그 강렬함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단순히 힘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강단 있으면서도 섬세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켐프는 차례로 쇼팽의 왈츠, 폴로네이즈 그리고 베토벤 비창 2악장을 연주했다.

아.
이거였다.
이게 듣고 싶었던 거였다.

에튀드들도 좋았다. 물론 약간의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는 기본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기교가 어떤 것인지를 아주 노련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앵콜에서 켐프는 그의 연주 스타일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선곡을 했다. 표현이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에튀드가 끝나고 듣는 앵콜곡들이 얼마나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지, 상상이 되는가. 거기다 너무 깊지 않으면서 음을 적절히 살려주는 켐프의 페달링까지 더해지니 말 그대로 화룡점정의 앵콜이었다.

불볕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기교와 아름답고 섬세한 표현의 향연에 함께 할 수 있어 기쁜 오늘이었다. 켐프는 지금까지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을 내한공연에서 연주했다. 오늘부로는 여기에 쇼팽과 카푸스틴이 더해질 것이다.

이 다음 그가 한국을 찾을 때에는, 또 어떤 레퍼토리로 구성해올까?
그가 보여 줄, 강렬하고도 유려한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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