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낯선 사람, 미완성의 인간

글 입력 2018.07.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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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의 해는 뜨거웠고 바람은 습했다. 나날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날씨의 연속이다. 따가운 열기를 뚫고 연극 ‘낯선 사람’을 관람하기 위해 혜화역에 도착했다. 찾기 쉬운 위치의 극장이어서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공연 시작 3분 전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티켓을 수령하고 자리에 앉았다.





14일 오후 3시 공연이 이 작품의 첫 공연이었다. 배우들 모두 얼마나 긴장했을까. 공연을 보는 일이 있을 때마다 필자는 괜히 배우들의 심경에 대해 신경을 쓴다. 조금 웃기지만 덩달아 긴장되어 혼자 마음속으로 배우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조명이 꺼지고, 한 여성의 “살려주세요!”라는 비명과 함께 극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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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낯선 사람> 中


연극 ‘낯선 사람’은 오스트리아 태생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비인 모더니즘 작가의 유고작 소설 <의화단 운동>을 각색하여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작품 배경은 20세기 초 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 운동이며 운동이 일어난 큰 갈등의 줄기는 열강의 침략과 그에 대한 농민들의 대응에서 비롯된다. 당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유럽 열강과 동양 사이의 심리적 대립과 입장의 차이를 ‘낯설다’의 느낌으로 표현한다. 자본주의의 환경으로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극명한 입장 차이가 서로에게 낯선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 발생하는 공포는 이전의 것들보다 단호하고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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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낯선 사람> 中


작품에서 언급하는 공포심은 일반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의 극도 상태의 공포가 아닌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생겨난 모호한 공포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4명의 인물은 율리히(오스트리아 연합군 장교), 천샤오보(중국인 혁명가), 바넷사-린(천샤오보 손녀), 리웨이(성악가)이다. 특히 율리히와 천샤오보가 주축이 되어 갈등을 이어간다. 인간의 공포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기에 인물들의 연기는 언어/비언어적 요소에 불안감이 덮여 있었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몸을 바들바들 떨거나 불안감에 쫓겨 뛰어다니는 등 인물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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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낯선 사람> 中


극 초반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된 천샤오보의 메모장을 발견한 손녀 바넷사-린이 내용을 읽는 부분이었다. “내 눈에 밟힌 소녀는 빨간 치마를 십 며칠 째 입고 있었다. 여러 명의 남자를 신경 써야 했다.”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는 손녀는 할아버지의 짝사랑 상대인 줄 알고 웃으며 할아버지를 놀린다.

하지만 필자는 역사적 배경으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빨간 치마는 피로 물든 치마를 연상시켰다. 당시 농민 투쟁을 하는 시대적 상황이기에 그것을 무마하려는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무차별한 공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났을 것이다. 사형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천샤오보는 동료들의 죽음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몇 십 년이 지나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겪는다. 오페라를 위해 손녀 바넷사-린과 리웨이의 총살 장면 연습하는데 천샤오보는 ‘그 사람 죽이지마!’라며 목청껏 소리친다. 울부짖음 속에 그가 잊을 수 없었던 기억들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오스트리아에 충성한 율리히는 마지막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다가 끝내 오스트리아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외치며 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씁쓸했다. 전쟁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평화가 깨졌고 그 끝은 좋지 않았다. 피폐한 결말이다. 작품은 누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지 비판하는 것 뿐 아니라 내면의 심리적 이탈을 끊임없이 언급한다.

첫 공연이어서 그런지 스토리 전체를 끌어가는 힘이 약하게 느껴졌다. 사실 연출의 의도가 어렵기도 해서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정과 힘이 느껴지고 새로운 창작 의도가 엿보였기에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연극 <낯선 사람>에서 들려주는 인간의 미완성의 한 면, 공포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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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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