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범인은 가위를 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내시겠습니까? [공연예술]

관객 참여형 추리 스릴러 연극 쉬어 매드니스
글 입력 2018.07.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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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언제나 말 많고 분주한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미용실의 위층에 살던 유명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각, 범행 현장에 출입한 사람들은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에 있던 사람들뿐이다. 범행 도구는 가위, 용의자는 넷. 그리고 당신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당신의 증언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다.



관객의,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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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관객 참여형 추리극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도입부를 제외한 극의 모든 진행을 관객에게 맡긴다. 관객들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 용의자들의 행적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로서, 사건 수사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첫째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검증하는 것. 용의자들이 주장하는 알리바이와 도입부에서 보았던 용의자들의 행적이 맞지 않는다면, 관객이 손을 들어 이를 지적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용의자들에게 직접 이상하다고 느꼈던 점을 질문함으로써 혐의점을 얻어내는 것이다. 관객들은 알리바이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고, 사건 해결에 필요한 개인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결정적인 하나의 질문은 그날 공연 전체의 판도를 바꿔 놓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수사 과정을 마친 관객들은 투표로 그날의 주인공인 범인을 결정한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인물이 그날의 범인이 되므로 이 공연에는 총 4개의 결말이 있는 셈이다. 각 결말이 나오는 빈도의 차이 때문에 쉬어 매드니스의 열성 팬들은 ‘레어 엔딩’ 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이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쉬어 매드니스는 2007년 초연 이후로 단 한 번도 같은 공연을 올린 적이 없다. 매일 밤이 설레는 첫공이자, 아쉬운 막공인 셈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


이 공연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연의 반절 이상이 객석에 있는 관객들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 관객들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은 사건이 벌어진 후 형사들이 관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부터이다. 그 순간 무대만을 비추던 조명은 객석을 비추고, 무대 위 배우들은 놀란 표정으로 관객들을 보며 언제 여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와 있었느냐며 호들갑을 떤다. 배우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객석은 처음부터 극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인터미션 때는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가 공연장 로비에서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다른 배우들도 무대를 떠나지 않은 채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힌다. 이벤트성으로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가거나 관객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지금도 많이 있지만, 애초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 자체가 객석인 공연은 많지 않다.

배우와 관객이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함께 호흡하며 그날의 공연을 만들어간다는 것, 쉬어 매드니스 공연장에서만 해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추리 연극으로서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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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관객 참여형 요소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인물이 그날의 범인이 되므로, 관객들은 사실상 범인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쉬어 매드니스에서는 추리극의 필수 요소인 ‘복선’ 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범인이 범인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도입부터 치밀하게 숨겨두는 타 추리극과는 달리, 이 극에서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적당히 수상한 정도를 유지하며 범인일 가능성과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공연이 시작되기 때문에 타 추리극보다는 도입과 결말의 연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교한 추리 과정이나 치밀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한다면, 이 극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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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쉬어 매드니스만의 특별한 매력은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는 과정이 주는 특별한 몰입감과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을 커버하는 탄탄한 각본, 배우들의 능청맞고 유쾌한 연기 등은 쉬어 매드니스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환영받아 온 이유일 것이다. 평소 관찰력이나 기억력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쉬어 매드니스 공연장에서 그 특기를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 어느 곳에서도 공연된 적 없는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제공 : 쉬어 매드니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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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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