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작가 알아가는 시간 - 최은영] 나는 당신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도서]

'쇼코의 미소' -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
글 입력 2018.07.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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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 최은영의 가장 큰 미덕은
그게 무슨 탐구든 반드시 근사한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녀가 앞으로 쓰게 될 근사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서 시작했다.”

_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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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깨닫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무단침입으로 내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

어릴 때 난 내가 많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든 칭찬을 들었고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커서 위대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책상에 앉아 하는 재미없고 심심한 일은 하지 않을 거야.’ 라고 했으며 안정적인 게 최고라는 사람들을 보며 그건 꿈도 없고 꿈을 좇을 용기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왜?” 그 질문을 그땐 참 많이 했다.

그런 내가 자연스럽게 “왜”를 깨우쳐갔다. 그 첫 번째는 고등학교 입시. 아마 입시를 통과한 학생들은 공감하겠지만 입시를 시작하기 전까지 난 서연고대는 아니더라도 내가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대학교는 충분히 갈 줄 알았다. 그게 그렇게 가기 어렵나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나 어렵더라. 힘들게 대학교에 들어오니 이번엔 더한 놈들이 있었다. 더 아는 것이 많고 더 똑똑했다. 나는 남양주시 속 개구리였고, 나와 보니 내 존재는 개구리보다도 작은 개미였다. 그렇게 아주 평범한 나를 깨달았다.

무더운 여름날 읽은 이 책은 그때의 나를 생각나게 했다.



최은영 -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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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쇼코-할아버지-소유(나)의 이야기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쇼코라는 일본인과 소유와 소유의 할아버지는 서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쇼코로 하여금 소유는 ‘나’와 ‘타인’에 대해 알아간다.

사실 이 책은 주인공 이름이 쇼코였나 싶을 정도로 쇼코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오히려 ‘소유’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기억하고자 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적게 언급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쇼코는 일본 사람이다. 소유가 다니는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한국에 잠시 공부하러 온 일본 학생이다. 소유가 반 아이들보다 영어를 조금 더 잘하기에 쇼코는 잠시나마 소유네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쇼코의 미소’


17살

그런데 소유가 보는 쇼코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그 나이의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어른스러움이 있달까. 소유는 쇼코의 미소에서 그걸 느낀다. 쇼코의 미소를 볼 때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 그리고 쇼코가 온 이후부터 가족들의 분위기도 확 변했다. 무기력하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았던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활력이 돌았다. 특히 할아버지는 쇼코를 무척 아꼈다. 쇼코와 친구가 되고 싶다며 자신을 ‘미스터 김’이라 불러 달라 할 정도였다. 쇼코는 여러모로 특별한 사람으로 비친다. 어른스럽고 사랑받는 모습. 그런 쇼코의 모습을 소유는 동경하면서 동시에 질투도 느꼈을 것이다.

그 후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 뒤로의 연락은 편지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소유는 영어로, 할아버지는 일본어로 쇼코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제껏 생각해왔던 쇼코의 모습은 편지에서부터 모순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에겐 행복하다는 내용만 써놓았지만, 소유의 편지엔 어두운 쇼코의 내면이 담겨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연락마저 끊겼다. 그리고 소유는 대학교 사학년이 되어 쇼코를 만나러 일본으로 간다.


24살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쇼코를 만난다.

쇼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기력한 얼굴로 인형같이 축 쳐져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자살시도를 해왔었다고 했다. 우울함이 그녀를 잠식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해 보이는 미소만큼은 쇼코였다. 예의 그 예의 바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소유는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는다. 여태껏 쇼코를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쇼코는 약했다.

생각해보면 쇼코의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쇼코의 모습이었다. 어른스럽고 여유 있는 쇼코의 모습은 소유가 그렇게 보고 싶었고, 다른 면은 보지 않고 만든 환상이었다. 쇼코는 처음부터 소유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늘이 있고 아픔을 가진 약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소유는 온 것을 후회하며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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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바라본 쇼코의 미소 변화는, 마치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모습 같다.

우리는 타인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나조차 매 순간 달라지는 나를 마주하는데 타인이라고 어찌 안다고 자부할까. 그런데 타인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멋대로 해석하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비난한다. 내심 마음속엔 나는 다르다고,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절정을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유 또한 쇼코에 대해 알았지만, 그 불행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벗어나고 싶다면서, 왜 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불행이 찾아와도 나는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과 자만이었다.



‘나’에 대한 이해


30살

하지만 쇼코가 특별하지 않은 존재였듯, 자신 또한 보통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쇼코를 비웃었던 소유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다른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중략)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중략)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5년이 지난 소유의 현실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는 다져지기는커녕 대본에 대한 혹평을 듣기 일쑤였다.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져만 갔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그저 영화관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의 범인이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끝없는 늪에 빠지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러고 사는 게 멋지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니까 멋지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삶을, 유일한 관객이었던 할아버지가 이해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소유는 오래도록 끌었던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끝낸다.

자신도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놓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이 세계는 ‘평범’보다 ‘특출’난 사람이 대단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시대니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 밀린 사람은 패배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오히려 깨워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괜찮다. 우리는 보통의 존재다. 그게 어떤가?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다.
추측이지만 그때야 소유는 당시 쇼코의 마음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왜 작가는 다른 사람도 아닌 국가도, 언어도 다른 인물인 쇼코를 설정했을까. 완전한 타인이었던, 할아버지와 쇼코의 유대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쇼코가 자신을 모르는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이야기했듯 할아버지 또한 그랬을 것이다. 자신을 30년 동안 집안에만 있는 나이든 늙은이로 생각하는 가족들보다 하나의 사람으로서 말을 주고받고 귀를 기울여주는 쇼코가 편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낯선 타인은 아마 가족일지 모른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언제까지나 머무를 것만 같은 존재라서. 또는 이미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알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소유는 할아버지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알 때마다 이상하다 느끼고, 할아버지답지 않다고 느꼈다.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어머니와 할아버지, 소유는 함께 누워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놓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도란도란 얘기한다. 진작 얘기했으면 좋았을 말들을 말이다. ‘미안하다.’, ‘고맙다.’를 쉽게 전할 수 있는 친구들보다 가족들에겐 그 말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우린 많은 후회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그저 그의 일부분일 뿐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져도 나는 그의 삶의 사 분의 삼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소유는 할아버지와 엄마를 더 알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는 엄마가 독하다 하는 사람들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껍데기만 보고 단죄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고 말한다.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는 걸 소유는 이제 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편지를 전해주러 다시 재회했던 쇼코의 미소를 다시 보며 책은 끝이 난다.

나를 알기도 어렵지만 타인을 아는 건 정말 어렵다. 타인을 안다고 하는 순간 어쩌면 편견이란 물감을 뒤집어씌우는 일 같기도 하다. 소유가 알고 있던 쇼코의 미소가 전부가 아니었듯 말이다.

그래서 쇼코와 할아버지를 통한 소유의 성장이 책을 덮고 나니 여운에 남는다. 소유와 쇼코가 천변에서 함께 걷는 모습이, 비가 무척이나 오던 날 손녀를 보겠다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온 할아버지가. 아니, 국가 인종을 넘은 쇼코와 할아버지 소유 세 사람의 오랜 시간에 걸친 유대가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

이 책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문장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또 단순하지만 잘 정돈되어 있고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이런 책을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최은영은 아껴두고 싶은 작가다.

참고로 이건 내가 느낀 나의 해석이니 정답이 아니다. 이 책에 궁금증이 생겼다면, 여러분이 책 속에서 직접 찾길 바란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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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은영은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작 「쇼코의 미소」로 제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 LI HUI - http://www.huiuh.com
사진 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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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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