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불금 [기타]

글 입력 2018.07.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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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번 주에 회사를 다니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따라 유독 더 피곤했다. 어젯밤에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근육통도 계속 있기도 했고, 마법의 날이 시작되기도 했고, 오늘까지 회사에서 끝내야 하는 일도 있었고, 아트인사이트에 오피니언을 마감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원래는 저번 주에 봤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한 주 내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감도 머릿속에 있고 얼른 써보고 싶고 글로 풀어내 보고 싶기도 한데 일주일 내내 쓸 수 없었다. 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일까, 집에 오면 쓰러지듯 잠들 때도 잦지만, 시간 내서 운동까지도 했는데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인 것 같다. 프레디 캠프 피아노 리사이틀이나 다른 전시회 프리뷰는 작성할 수 있었는데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 못했다는 건, 아직 내 속에서 영화를 내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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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뭔가 그런 게 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떤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잘 모른다. 그래서 일단 글로 대략적인 인상 같은 걸 써놓으면 시간이 지나서 그 글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점점 구체화한다. 하나를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글을 막상 쓰려고 아트인사이트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검색해보니 미장센에 대해서 쓴 글이 나왔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사용된 영화의 기법으로 원색의 강렬한 대비, 파스텔 색조의 동화적인 색감 사용이라던가, 대칭적인 화면 구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 비율 등을 자세하게 소개한 글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내가 막연하게 ‘와, 이 영화는 정말 색다르다’라고만 생각했던 걸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런 지식도 모르면서 내가 과연 글을 써도 될까?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나 혼자 글을 쓸 때는 정말 아무 주제나 자유롭게 써서 몰랐는데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허락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글 파일을 열고 타자를 하는 거나 연습장에 막연하게 글을 새기는 과정이 계속 망설여졌다. 애써 주변에서 좋은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글 쓰는 게 부담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글은 그 사람만의 전문성을 띄고, 그 사람만의 색채를 가진 게 당연하고 내가 쓰는 글은 나만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아트인사이트의 목적일 텐데 왜 나는 동등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비교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걸까.





요즘은 사람들이 금요일의 저녁을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대학교 4학년쯤 되니 금요일 저녁에 술을 퍼질러 마시는 사람이 없다. 다들 집에 조용히 들어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퇴근하고 오는 지하철도 금요일은 유독 사람들이 많다. 다들 피곤하지만 뭔가 기대하고 있는 얼굴로 집으로 가는 여정을 거쳐 간다. 월요일, 화요일 등 다른 요일에 본 지하철 속 사람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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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그런 얘기를 하자, 남자친구는 다들 그만큼의 여유가 없는 것 아닐까? 어떻게 보면 안 좋은 거 아닌가? 라고 했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시간을 공유할 만큼의 여유가 없으므로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는 것 같다.

사실 그 말에 공감한다. 나도 휴학한 친구들이 몇 달 전부터 계속 만나자고 했는데, 아직 한 번도 만날 시간을 내지 못했다. 아, 아까도 말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건 핑계라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이 경우에는 내 시간을 거기에 투자해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까. 다양한 이유를 ‘시간이 없다.’,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단축해버리며 내 정확한 감정을 무시하려고 하고 있구나.

겨우 모든 힘을 짜내서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를 갔다 오면 저녁 7시. 저녁밥을 먹고 뭔가 정리하기도 어렵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려운 시간. 설거지거리는 싱크대에 한가득 쌓여있고 빨랫감도 산처럼 쌓였고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떼거리로 굴러다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고 사실 치울 힘도 없어서 그저 내버려둔 채 머리카락과 하나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의무감에서 쓰는 걸까? 정말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하고 싶어서 지원했던 때와는 다르게 회사 일을 하는 지금 거의 탈진 상태다.

퇴근하고 나면 휴대전화도 보기 싫고 누구랑도 이야기하기 싫어서 전화 소리는 무음으로 해놓은 지 오래다. 왜 직장인들이 가슴 속에 늘 사표를 들고 있는지 잘 알 것만 같다. 나도 졸업하기 위해서 하는 인턴만 아니라면 오늘 사표를 내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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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번 주 월요일부터 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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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고 있어 학생에겐 모형 만들기밖에 시키지 않는다. 뭔가 전문적인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엔 역량이 부족하고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칼로 정교하게 자르고 열선으로 다듬다 보면 눈앞이 핑핑 돌고, 하루의 에너지를 다 소모해버리곤 한다.

이제 절반이나 왔다. 최저 시급도 정당하게 받을 수 없는 ‘학생실습’ 인턴은 청담동에서 한 끼 식사가 만 원대라는 사실이 플러스로 더해져서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딱히 학교 앞 식당보다 맛있지 않은 음식들을 점심에 만 원대의 가격으로 먹어야 해서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사서 회사로 출근한다. 도시락을 싸다 보면 또 아침 먹을 시간이 없다. 출근 지하철 안에서는 사람들에게 꽉 끼여서 배고프고 힘없는 채로 강남구청역까지 7호선을 타고 간다. 휴대전화기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한 아침 8시 반의 7호선 안에서, 인천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서울로 오는 걸까, 의미 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20살 때, 지하철도 처음 탔었다. 왜 사람들의 표정도 없고 영혼이 빠져나간 채 무표정의 얼굴로 온갖 시련을 겪은 몰골로 이동하는지 정말 이해를 못 했다. 휴대전화기 속에서 사는 사람도 이해를 못 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게 너무 재밌기만 했다.

버스를 타면 종로 쪽으로 갈 때 갑자기 높아지는 건물들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했고 빌딩 숲 속에 있는 자신이 믿기지 않아 사진을 계속해서 찍었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그런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시골에서 막 상경한 아이였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종교를 강요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고 한번은 서강대 앞에서 종교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5천 원을 지급했던 적도 있다. 그 사람들은 누가 봐도 20살인 게 뻔한 아이의 돈을 빼앗고 싶었을까. 집으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이런 곳에 갔다 왔고 어떤 일이 있었다며 자랑해댔다.

요즘은 퇴근하면 엄마에게 갔다 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잔다고, 남자친구에게도 최소한의 연락만 하며 나의 시간도 거의 갖지 못한 채 수면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잠을 잔다.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기를 좀 할까 고민하다가도 잠이 너무 급해서 휴대전화기를 안 본 지도 오래다. 다음 날 출근할 때 보면 배터리가 19퍼인데 다 쓰지도 못하고 다음 날까지 또 간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다. 스펙을 쌓기 위해 2주에 한 번 토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주말 동안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포스터 두 장을 만드는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지만, 모두와 경쟁하고 있기에 스펙 쌓기는 끝도 없다. 목적도 딱히 없는 스펙 쌓기에 삶의 의미를 더욱 잃어간다. 내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

여유가 있었던 적은 언제였을까. 학기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회사 생활에 적응한 것 같다가도 요즘은 그저 흘러가는 인생에 ‘나’를 포기해버린 것 같다. 언제부터일까, 나에게 금요일이 더는 특별한 날이 아니게 된 것이.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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