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곤실레로 본 가족과 연인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7.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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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독서경시대회 책이었던 <비엔나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박종호 저)를 읽고 ‘비엔나에 꼭 가봐야지!’ 했던 마음이 자라나서 비엔나에서 5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어렸던 나에게 비엔나가 동경의 도시였던 이유는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관람을 비엔나에서 쉽게 할 수 있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있는 것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비엔나라는 도시는 나에게 입시라는 고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해줬다. 특히 책에서 처음 만난 오스카 코코슈카나 에곤 실레 같은 미술가들은 기존 내가 알던 미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서 신선하게 다가왔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던 어린 나에게 그들의 그림은 해방과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에는 에곤 실레의 그림이 많이 소장되어 있어 부푼 기대를 하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직접 본 에곤 실레의 그림은 고등학생 때 실레의 그림을 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에곤실레와 그의 그림 중 인상 깊게 본 그림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에곤 실레는 모두에게 유명한 대표작이 있기보다는 실레만의 나체 그림과 화풍이 유명한 편이다. 누군가는 그의 찌질한 감성이 좋다고 했다. 실제 레오폴드 미술관에 가보면 실레의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그려진 사람들은 뒤틀려 있고 음울해서 에곤 실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레의 그림 속 사람들은 대부분 눈이 흐리멍덩하고 뼈만 남아 있는 것처럼 앙상하다. 몇몇 여성을 그린 나체그림은 모델과 계약관계를 맺어 정당하게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음증 환자가 엿보며 그린 것처럼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이런 그의 그림은 28살밖에 살지 않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의 삶이 반영된 듯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학교생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린 그림들은 평소 내가 아름답게만 생각하던 것들을 반대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에곤 실레 이전의 그림들은 가족과 연인, 사랑 같은 감정들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하지만 에곤 실레는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포착해서 그렸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의 거친 표현법에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바라보다 보면 그가 어떤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본 것인지 이해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또다른 유명한 미술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제자인 에곤 실레에게 남들과는 다른 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과연 클림트와 실레가 같은 주제를 갖고 그린 그림을 비교해보면 클림트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벨베데레 궁전에는 어머니와 두 아이를 그린 클림트와 실레의 두 작품이 붙어서 전시되어 있는데 클림트의 그림은 따뜻해 보이지만 실레의 그림 속 사람들은 지치고 쓸쓸해 보인다. 실레는 어머니와 두 아이를 주제로 여러 번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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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스타프 클림트, Mother with two children(family)
벨베데레 궁전 @김소현


처음에 이 그림을 봤을 때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초점 없이 아이들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일과 가정에 지친 부모님이고 수험생활 중인 내 동생, 그리고 그런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철딱서니 없이 해맑게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내가 두 아이에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관점에 따르면 꼬까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나이고 누워있는 안색이 좋지 않은 아이가 공부하며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내 동생이겠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도 다 큰 성인인 나를 찾는 자기중심적 해석에 자조 섞인 미소가 지어졌으나 그림 앞을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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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Mother with two children Ⅱ
레오폴드 미술관 @김소현


칭송받는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이 그림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삼각형 구도를 하고 있으나 삼각형 구도의 특징인 안정성을 이 그림에서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완벽한 삼각형이라 세 각이 뾰족해서 불안한 느낌이 들고 어머니가 아이를 이 그림처럼 들고 있는 것도 불가능해 기괴하다 느껴졌다. 그런 불안정한 구도는 육아의 어려움을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에곤 실레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결혼은 했으나 임신 중인 아내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고 에곤 실레도 3일 뒤 같은 병으로 사망한다) 육아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그린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그렸든 가족의 어두운 면을 그려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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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Lovers, 레오폴드 미술관 @김소현


교환학생을 와서도 행복한 롱디(long-distance)연애를 하고 있던 나는 라는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이 너무나도 칙칙한 색감을 갖고 있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림을 빠르게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여인을 안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계속 나와 마주치는 듯했다. 그래서 남자의 눈을 계속 쳐다보다 보니 여자의 초점 없는 눈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한 여자의 목을 휘감은 남자의 굵은 팔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자를 놓칠까 봐 불안해하는 남자의 모습이 찌질하게 느껴져 나와 내 연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남들에게 사이가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우리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종종 저 남자의 심정으로 내 연인을 대했다. 가끔 나의 부족함이 너무 크게 느껴져 이런 부족한 나를 떠나지 말라는 투정도 부렸고 연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을 질투하기도 했다. 에곤 실레가 밖으로 드러내기에 부끄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내면을 그려낸 건 아닐까. 혹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사랑의 온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 남자는 그것을 눈치채고 여자가 떠나지 못하게 마지막 노력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해석이든 그의 솔직한 표현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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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에 대해 글을 쓰며 검색하다 보니 올해가 에곤실레 사망 100주년이었다. 나체와 레즈비언을 그려 주민들에게 신고당하던 1918년의 오스트리아는 이제 없고 LGBT 축제가 활발히 벌어지고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2018년의 오스트리아가 현재 진행 중이다. 여전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에곤 실레를 둘러싼 논쟁이 끊임없지만,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한 그림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더운 여름 서늘하게 느껴지는 실레의 그림을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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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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