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좋은' 공간인가 [문화 공간]

글 입력 2018.07.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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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새로 생긴 웅장한 건물이 있다. 치과에 갈 때나 봉사활동을 가거나,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버스 안에서 늘 그 건물이 보였다. 처음 봤을 때 얼마나 환호성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정육면체의 덩어리 형태로, 세로로 된 수많은 은색깔 비늘살들로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건물이다. 그 간단한 전체적인 형상과, 그러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꾸밈의 조화에 반했다. 아주 예쁘다며 소리치는 나에게 누군가 그 건물은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라고 말해주었다. 화장품에 관심이 없어서 아모레퍼시픽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몰랐고, 회사 건물이라면 당연히 폐쇄적일 거라는 생각에 한번 들어갈 생각조차 못했다.

이번에 학교 수업으로 서울 시내에서 좋은 공간을 찾는 대체과제를 줬는데, 많은 학생이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다녀와서 발표하는 것을 보고 저 건물은 회사건물인데도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느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답게 나도 가보고 싶다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드는 이미지 속 양복과 내가 입은 만 원짜리 옷이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학생에게, ‘그 공간은 지역주민과 연결이 되어있느냐’ 질문을 던지셨는데, 질문을 받은 학생은 조금 망설이면서 그런 것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 건물은 일반인들이 쉽게 가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았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쉽게 갈 수 있는 위치이건만 이때까지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는 발표와 질문들에 나는 그 건물이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광고를 자꾸 쓰는 이유도 노출 효과로 제품에 대한 궁금증을 높이는 거라고 하던데 자꾸만 반복되는 아모레퍼시픽의 외관 모습이 이제 내부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게 만들었고, 인터넷으로 자꾸만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게 있다. 아모레퍼시픽으로 직접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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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층부에 가까이 갔을 때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멀리서 본 정육면체의 덩어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굵직한 콘크리트 기둥으로 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6개의 단으로 된 수평적으로 길게 깔린 계단을 올라야 건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아주 굵직한 콘크리트 기둥 영주들이 건물의 사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는 녹지와 산책길을 깔아놓았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처럼 보였다. 이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고귀하고 오만한 모습처럼 보였다. 여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자동차 속의 서울 도심에서 혼자 녹지와 각종 나무, 그리고 신전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완전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나치게 세련되고 웅장한 외관과 사무실이라는 특징, 그리고 경직되어 보이는 영주들이 정말 내가 들어가도 되는 건물인가?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 멀리서 건물 사진을 찍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양복 입은 사원들의 모습은 마치 내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찾아온 ‘관광객’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용산과 연결된 건물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건물을 설계했으며, 콘크리트 기둥으로 된 열 주는 그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에서 드러난 수직과 수평의 의미’라는 논문을 보면 “열 주의 사용이 내부와 외부공간들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며, 건물의 강한 덩어리를 분절하거나 주변의 환경과 조화되도록 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건축에서 1층에 기둥을 놓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의 접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마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도 정육면체의 건물이 대지의 맨 아래쪽까지 쭉 내려오는 것보다는 이렇게 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하는 편이 좀 더 접근이 쉬운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봤자 소용이 없다. 지금 만들어진 방안이 딱히 자연스러운 접근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금 더 낫다고 평가해봤자 합리화에 불과하다. 가장 최적의 대안을 찾아서 구현해야 하는 것이지, 늘 하던 대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은 발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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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필로티 부분은 장대한 수평 지붕으로 막혀서 몹시 어둡다. 햇살이 전부 차단되고 있으며, 바깥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는 것처럼 다른 세계처럼 햇살이 가득하다.열주의 본래 기능은 사람들을 유입시키는 것이지만,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는 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굵은 기둥의 배치간격이 너무 좁은 탓일까, 지나치게 연속적이기 때문일까. 그 때문에 조경과도 건물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산책길도 따로 놀고 있다. 혼자서 완전무결하다.

또, 기둥을 지나왔다고 해서 바로 건물의 내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유리문을 한 번 더 통과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열효율을 생각하면 당연히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해서 여름과 겨울의 냉난방비가 엄청나게 필요한 나라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기둥 벽을 지나서 바로 건물의 내부로 가는 게 아니라 유리문을 밀고, 또 한 번 더 밀어서 내부로 완전히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은 2차적인 걸림돌이 된다. 또, 1층을 둘러싼 유리들이 통유리도 아니라 건물의 내부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건물에는 앞면(facade)이라는 것이 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말하면, 건물의 대표적인 입면의 모습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떠올리면 정육면체의 네모나고 반짝거리면서 군데군데 구멍이 난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모습이 바로 앞면이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에는 ‘앞면이 없다’. 건물의 입면 형태야 당연히 있지만, 동서남북 4개의 방향에서 바라보는 앞면이 모두 같은 형태다. 즉 어느 방향에서 보든 아모레퍼시픽은 정육면체이며, park gate, mountain gate 등으로 이름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정사각형의 평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고, 밖에서도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나 다른 도로, 다른 주변 환경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모습밖에 볼 수가 없다.

보통의 건물은 동서남북 방향에서 보는 모습이 전부 다르다. 그래서 설계도면을 그릴 때,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입면도, 뒤에서 건물을 바라본 모습을 그린 배면도, 오른쪽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우측면도와 왼쪽에서 보는 좌측면도 이렇게 네 가지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앞면이 없다는 말은, 입면도와 배면도, 우측면도와 좌측면도가 모두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문은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용산역을 바라보는 쪽이 아닌, 용산의 미군기지 방향이 정문이다. 그곳이 곧 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될 예정이기 때문에 정문을 그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이 다 똑같이 생겼는데 정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면 성이 없다는 것은 건물의 어디로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것이고, 누가 들어오든 간에 제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유입을 허락했다는 건축가의 의도가 돋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느꼈던 것은 경계라거나 벽의 느낌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앞면을 같이 한 것은 그저 건축에 대한 건축가의 자만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의도한 ‘주변 환경과의 연계’는 실패했구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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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결론이었다. 건물의 내부에서 나는 조그만 충격을 받게 된다.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을 때 별처럼 수많은 조명이 반짝거리는 아트리움을 볼 수 있다. 바깥에서만 막연히 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1층부터 3층까지 확 뚫려있는 거대하고 장엄한 아트리움과 회색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오는 검은 양복을 입은 수많은 직장인으로 어우러졌다. 건물의 천장에는 그리드 패턴으로 된 구멍들이 보였다. 그 위에 있는 물이 햇살을 받아 물결이 찰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건물의 네 개의 모서리 부분에 직원들이 출입 가능한 엘리베이터 구역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오성록 카페, 음반가게, 꽃집, 등등으로 저층부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하층은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으며, 마치 지하에 있는 외부공간처럼 길이 이어져 있고 길의 양옆으로 카페와 음식점들이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1층보다는 지하 1층에서 외부사람들의 유입을 더 고려한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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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내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이루는 재료의 사용이다. 안도 다다오가 처음 사용해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노출콘크리트를 건물에 전반적으로 사용하였다. 덕분에 건물 전체가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주 세심한 마감면때문에 덩어리라기보다는 하나로 시작된 콘크리트가 끝까지 이어진 것만 같은, 그리고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이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인다. 바닥에는 화강석을 구운 포천석을 깔아놓았는데, 포천석은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청소하기도 힘들어 바닥면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사옥건물이나 학교건물의 바닥에는 매끈하고 투명한 대리석을 사용하기 때문에 왜 아모레퍼시픽은 노출콘크리트를 정밀하게 다듬을 정도로 세심하게 만지면서 바닥에는 대리석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보통 노출콘크리트, 콘크리트는 회색이라 어둡고 칙칙한 인상이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빛을 활용해 노출콘크리트를 밝고 세련되어 보인다. 아트리움의 위에 뚫린 그리드 패턴의 구멍들에서 햇빛이 직접 바닥면에 닿고, 그에 의한 간접광들이 아트리움 전체를 환하게 비춰준다. 그리고 천장에 달린 수많은 인공조명 덕분에 건물의 내부가 전체가 밝고 반짝거린다. 회사 전체가 쇼륨같이 느껴지고 연극적이며, 하나의 전시품 같다. 화장품 회사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건물 전체가 마케팅의 대상이 되며, 가치가 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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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섬세함과 빛을 이해하니, 바닥에 포천석을 깔아놓은 것은 과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세련된 노출콘크리트와 빛의 조화에 바닥까지 투명하고 빛을 반사했으면 지나치게 과했을 것이다. 바닥이 빛을 흡수하고 시선을 떨어뜨려 놓아 다른 게 더 빛난다. 자기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다른 것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건축가의 의도를 읽어보니, 포천석을 사용한 이유는 청소는 힘들지만, 걷는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한다.

*

내가 보기에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하나의 커다란 전시장 같은 관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일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나 그런 검은 양복과 흰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들이었다. 공간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고, 미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 어떤 사물과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서 더욱 완전해질 때가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건축물 중에는 특별한 프로젝트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건축의 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특별한 순간이나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건축이 아주 일상적인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나는 요란하고 장대한 것보다는 차분한 품격을 선호합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 박물관이라든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윤동주문학관 등 유명한 건축물들은 가끔 자기 자신이 제일이 될 때가 있다. 그런 건축물을 예술 일부로 바라볼 때 물체가 되기도 하고, 내부의 프로그램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조형적으로 완벽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일상을 생활한다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보게 된다.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건축에서 사람이 밀려난다. 그렇지만, 시각에 즐거움을 준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그런 건축을 하기보다는 일상의 배경이 되는 건축을 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으로 구현했다. 그 건물은 회사원들의 일상의 터였고, 회사 내에서 어딜 가더라도 굳이 인증사진을 남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일일 것이다.


공간은 어떤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리고 공간은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 가장 좋은 공간이 된다. 목적은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 위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나의 고고한 존재로 예술성을 충족할 때 가장 좋은 공간일 수도 있고, 그 속에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좋은 공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다르듯이 공간도 존재하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창조자가 의도한 바가 건축물에 실제로 드러나는가이고, 의도한 대상들이 자유롭게 그 공간 속에서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공간이 완성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외부에서 볼 때는 모든 접근이 차단된 하나의 고고한 신전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며, 내가 좋아하는 녹차 디저트가게가 보인다. 그러다 문득 녹차 디저트를 하나 사서 먹으며 회의하는 옆 테이블을 흘긋흘긋 곁눈질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 순간, 답사를 간 게 아니라 그냥 그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사람이며, 그 공간은 내가 있는 배경이었다. 예술의 대상이 일상적인 공간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나는 감히, 아모레퍼시픽은 외부에서는 사람들과, 용산과의 연결에 실패했을지도 모르나, 내부에서는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의도한 일상적인 배경이 되었다는 점은 성공했다고 생각해 아모레퍼시픽은 그래도 좋은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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