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소비에 대하여 [문화전반]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에 투자하다
글 입력 2018.07.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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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말한다. 내가 좀 이상한 소비생활을 한다고. 공연 티켓은 아까운 줄 모르고 구입하고 먹고 싶은게 생기면 웬만하면 사먹으면서 옷은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몇 날 며칠 고민하다 안 사기 일쑤에 종종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해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돌아온다.

모두가 그러하듯 들어오는 돈은 한정적이고, 하고 싶은 건 많으니 쉬는 날 하루를 투자해 땀 흘리며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나를 확실하게 행복하게 하는 일'에 투자하는 생활. 그렇게 힘들 거 공연 조금 안보고 먹고 싶은 거 조금 참으면 되지 않냐는 말에 그러게, 하고 답하면서도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공연을 한편 관람하고 집에 돌아와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마시는 재미를 포기할 수가 없다.



소비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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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사회적 성공을, 또 다른 이는 진실한 사랑을, 누군가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나는, 어쩌면 너무도 추상적인 단어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하세요~" 하는 인사말이나 "Happiness!"하고 깜찍하게 외치는 아이돌 노래에 나오는 그 행복이 맞다.

사실상 행복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형태가 없는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과거와 비교해보면 어딘가 큰 차이가 있다. 예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행복이 적당히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정생활은 무사 평탄하고 자식들이 무럭무럭 잘 크는 것이었다면, 소위 젊은 사람들은 당장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행복보다 '당장 행복한 것'을 위해 투자하는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유래된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과 이를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의미하며, 올해 대한민국 소비 트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의 기쁨을 희생하는 대신 일부 돈을 소비하게 되더라도 현재에 보다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의문을 느꼈다.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 불행하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내가 당장의 기쁨을 희생한다고 미래에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왜 현재형으로 쓰이지 않고 미래형으로만 쓰이는가? 내가 머지않아 죽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의문은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를 당장 확실히 행복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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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한다. 티켓을 찾고 혼자 간단히 저녁을 먹거나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여유가 좋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자리에 앉아 꼼지락거리며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고 암전을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이 좋다. 어딜 가나 자신의 핸드폰만 빤히 바라보던 사람들이 공연이 시작하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모양새도 눈에 들어온다. 무대 위에서 작가가 쓴 텍스트를 목소리, 몸짓, 표정, 눈빛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에너지를 온전히 느끼는 게 좋고, 그들의 감정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의 쾌감도 짜릿하다. 공연장을 나와 기억을 곱씹으며 돌아가는 귀갓길도 소중하고, 가끔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서 맛있는 안주를 곁들이거나 그냥 맥주만 홀짝 마셔버리는 것도 즐겁다.

내 친한 친구는 과외비가 들어오면 찜해뒀던 옷을 사기 바쁘고, 또 다른 친구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데에 돈을 쓴다. 다른 친구는 열심히 서울 곳곳의 맛집 탐방을 다니기도 한다. 나와 이들은 당장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이러한 것들을 선택했고, 거기에 투자했다. 곧 우리의 소비는 '당장의 행복에 대한 투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소비가 저축보다 가치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갑자기 큰일이 닥쳐 큰돈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어느정도의 저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우리 엄마의 말씀은 맞는 말씀이니 번 돈의 일부는 꼬박꼬박 저축하자. 중요한 건 오늘의 나에게도 투자하란 것이다.)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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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 소비 트랜드로 자리잡으면서 일각에서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노력이 부질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업난과 높은 집값 등의 경제적 악조건이 소확행을 촉진하는 기재로 작용했을지는 몰라도, 이러한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젊은이들이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의 드높은 자살률과 젊은 층의 우울증 환자 비율을 보았을 때, 그동안 젊은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삶에 대한 회의와 현재의 자신에 대한 소중함이 소확행 트렌드를 널리 퍼지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를 위한 투자가 젊은 층에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고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며 하루하루 차근차근 열심히 살아나가는 발판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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