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nsight]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글 입력 2018.07.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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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우는 중



“다 하면 되지!”
 
아주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 스케치북 한 권 가득 장래희망을 그려놓고 어쩔 줄 몰라 펑펑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

책 제목이나 주인공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은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아이는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중국집 요리사를 그렸다가, 주말에 놀러 갔던 동물원 생각이 나서 사육사를 그린다. 약국에 심부름하러 다녀온 뒤 약사를 그리고, 티브이를 보다가 운동선수가 멋있어 보였는지 마라톤 선수의 모습도 그린다. 그러다 어느새 장래희망은 스케치북 한 권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지 못해, 아이는 당황하여 울음을 터뜨린다. 다행히 “다 하면 되지!”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아이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어린 나이에 많은 꿈을 꿔도 된다는 식으로 책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왜였을까, 문득 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몇 달간 내가 그 아이의 심정과 비슷했기 때문이리라. 하나 슬픈 사실은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다 하면 돼!”라고 말해주더라도(비슷한 말로 "00이 하고 싶은 거 다 해!"가 있다.), 그 말은 단지 허울뿐인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가 아니기에, 그래서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말이기에. 오히려 그 아이가 그려낸 ‘장래희망’이 시기상 ‘지금의 나’의 모습이라고, 그러니까 너는 그중에 하나는 돼야 했다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리스트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한 그 아이와 같아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울곤 한다. 아니 사실은 누가 알면 철없다, 한심하게 여길까 봐 펑펑 울지는 못한다.
 


예술이란 늪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다


수많은 '하고 싶은' 리스트 중 대부분은 예술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여러 활동을 하며 무엇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술관 도슨트, 예술 나눔 활동, 미술학원 강사, 공모전, 예술 기업 교육 등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그러면서 습관처럼 ‘예술이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었다. 언제는 그 질문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명확한, 하나로 수렴되는 정답을 얻을 수 없었다. 누구는 철학이자 사유라고, 누구는 비즈니스이자 시장이라고, 누구는 삶이라고 했다. 나는 어느 한쪽 편에 굳건히 서 있다가도 저 말도 맞는 것 같다며 슬쩍 맞장구치다가, 다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반박하다가, 다 포기하고 “그래 ‘다’ 예술이다!” 외치곤 도망가기도 했다. 여러 활동은 때때로 적시에 질문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지만 아직 해갈되지 않은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나의 산을 열심히 넘어와 숨을 고르고 땀을 닦을 때 즈음 전혀 예상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은 다른 결의 산을 만나게 되는 식이었다. 그 시간은 그래서 즐겁기도, 절망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은 나에게 늪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는 이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놓은 또 하나의 징검다리였다. 늪에서 헤매며 지쳐갈 때,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트인사이트와 연이 닿아 정말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었다. ‘가능할까?’ 의심이 들 때도 쓰다 보면 글 구조가 잡혔다.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주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기도 했다. 글을 써내기 힘든 날도 있었지만 집중하면 할 수 있게 되는, 이상하고 신기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하며 나는 예술이란 늪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어쩌면 글을 쓰는 주제가 꼭 예술이 아니어도 되겠다, 차차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예술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예술은 애초에 명확한 선으로 구분할 수 없는 실체였을지도,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는지도, 단지 나의 주저함과 편협함이 무엇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는지도. 적이 내부에 있었다니! 또다시 밀려드는 절망과 희열을 한꺼번에 즐기는 시간이었다.

*

온라인 에디터 13기 지원서에 ‘예술로 소통하고 싶다’는, 다소 남을 위한 것 같은 구호를 걸었었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예술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공유되는 것이라 당연히 여겼다. 그러나 돌아보고 고백하건대 지난 나의 아트인사이트 활동은 오직 ‘나’를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쓴 글을 통해 예술을 향유할 동기를 얻은 누군가가 있다면, 혹은 이외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얻은 누군가가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나의 기쁨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며 나만의 기쁨을 회복했고, 그 기쁨이 잘못된 건 아니라는 응답을 받았다.

"문화는 소통이다.", 여기서 '소통'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기도, 나 자신과의 소통이기도 하다.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전히 나는 버젓한 무엇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대신 지금은 책 속 아이가 열심히 그리던 스케치북 속의 직업과는 조금 다른, 무엇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좋은 어른'에 관하여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특히 올해 방영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강력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드라마를 보며 단순히 어른이 무엇인지를 넘어 '좋은 어른'은 무엇일까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 본 정의는 이렇다. 바로, ‘상처가 있고,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고, 슬픔이 가득한 시간 위를 걷더라도 맑을 수 있는 사람. 물들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실 드라마에서 그런 '좋은 어른'이었던 박동훈 캐릭터 설정이 최고의 판타지라고, 즉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판타지를 지향하고 있다니. 약간은 겁이 나고 자조도 한다. 꿈을 말하며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는 나를 발견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음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될 수 있을까? 꿈은 크게 꾸라고 했다. 좀 어려우면 어떤가.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니 일단 말이라도 해 보는 것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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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로 ‘하고 싶은’ 리스트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울고 있는가, 당장 그 리스트들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울어야 하나 보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 울음이 늘 절망으로만은 끝나지 않아서,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것 같다가도 작은 기적을 만나 조금씩 다시 올라오고, 그런 뜻하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면 어느새 '좋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




이서연 (1).jpg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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