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권에 숨겨진 작품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글 입력 2018.06.2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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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권에 숨겨진 작품

각 나라는 자신의 화폐를 지니고 있고 화폐마다 그림이 있다. 그리고 주로 앞면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돈에 인물이 있는 이유는 전통성과 특징을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인물그림의 경우 복잡한 묘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위조방지에 탁월하여 채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 앞면에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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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주변 풍경과 천원권


우리나라의 지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재작년 10월에 좋은 기회로 도산서원에 갔다 온 이후였다. 부끄럽게도, ‘조선시대 학자들이 공부하던 곳'이라는 정보만 지니고 갔었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천원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원권의 뒷면을 살펴보면 한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산서원의 주변 풍경을 그린 ‘계상정거도’ 이다. 그리고 앞면의 인물은 도산서원과 깊은 관련이 있는 ‘퇴계 이황’이다.

지폐는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특히 천원권은 4종류의 지폐 중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소비를 하기 위한 목적성이 크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의미에 주목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번 글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천원권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였다.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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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권 앞면


1. 퇴계 이황

천원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10~·1570)’의 초상화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학문과 인품을 겸비하여 당시 당파를 초월해 존경받았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여겨진다. 지폐의 초상화는 이유태 화백(1916~1999)에 의해 그려졌고 이는 1974년, 퇴계이황의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2. 매화

초상화의 왼쪽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풍성하게 핀 매화가 눈에 띈다. 매화는 왜 천원권에 등장하는 걸까? 실제로 이황은 살아생전 매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고 한다. 그 사랑은 그가 남긴 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매화 보고 싶어 말을 타고 달려가다

이황

망호당 처마 밑의 한 그루 매화나무
몇 번이나 봄을 찾아 말을 달려왔나 몰라
천리 고향 떠나는데 아니 보고 어이 가랴
문 열고 달려 들어가 그와 다시 취했노라

*원제: 望湖堂 尋梅(망호당 심매): 망호당으로 매화를 찾아감


매화나무를 보기 위해 말을 타고 달렸던 이황은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겼고 돌아가시는 날 아침에 ‘저 화분에 있는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왜 이토록 매화를 아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매화의 특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四君子)는 ‘네 명의 군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속성이 마치 군자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양회화에서는 오랫동안 사군자를 주요 소재로 사용해 왔고 유교의 도덕적 가치가 더해져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중 매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비의 절개와 정신을 뜻하게 되었다. 당시 이황의 활동시기에는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정치적 반대파를 처단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했었는데 그가 이러한 시련 속에서 선비의 기개를 지키기 위한 자신의 가치관을 매화에 투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3. 명륜당

매화의 아래쪽을 살펴보면 한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에 달린 현판에는 ‘明倫堂(명륜당)’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여기서 명륜(明倫) 이란 ‘인간사회의 윤리의 밝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로 명륜당은 서울의 성균관 내부에 있는 학생들이 공부 하던 강당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서울뿐만 아니라 향교에도 부설되어 있었다고 한다.

명륜당이 있는 성균관은 당시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던 최고의 교육기관이었고 왕이 직접 들러 유생들을 시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황은 이 곳 성균관에서 최고 관직 정3품 대사성을 지냈으며 ‘대사성’은 지금의 대학총장과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된다.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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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권 뒷면


1. 계상정거도

퇴계 이황은 46에 관직에서 물러나 1546년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각 지역에서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본래 지었던 서당이 좁아 도산 자락에 ‘도산서당’을 새로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도산서원’은 이황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제자들과 고을의 선비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천원권 뒷면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그림은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이는 이황이 후학을 양성했던 도산서원의 전신인 ‘도산서당’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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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계상정거도
 

이 그림을 그린 정선(1676~1759)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손꼽힌다. ‘진경산수(眞景山水)’는 중국 그림을 모방하거나 상상에 의존하여 그린 그림이 아닌, 우리나라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산수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산천을 살펴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계상정거도’는 단지 이황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경산수화’의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퇴계 이황의 사후 177년 후인 1746년에 그려졌으며 풍경 속 서당 안을 보면 이황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이기도 하고 ‘냇가에서 조용히 지낸다.’라는 뜻을 지닌 ‘계상정거’의 면모가 보이는 부분이다.

*

지금까지 천원권의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았다. 외국에 여행을 갔다 오면 그 나라의 화폐를 기념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는 화폐가 해당 나라의 특징을 쉽고 명료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념이 될 화폐를 숨 쉬듯 사용하고 있다. 어떠한 대상이 너무나 만연하게 되면 그 가치와 의미를 간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소하더라도 하나씩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찾아보고 알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천원권에 담긴 그림을 알게 되니, 이전과는 다르게 화폐를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혹시 지갑 속에 천원이 있다면, 한 번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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