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식사 드릴게요 [기타]

우리는 모두 서로의 주린 배를 채워주며 살아간다.
글 입력 2018.06.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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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첫 끼 식사는 오후 2시 반이었다. 늦잠을 잤느냐고? 그럴 리가. 영화관 아르바이트 때문에 오전 6시부터 발바닥에 땀나도록 팝콘 팔며 뛰어다니다가 퇴근 후 겨우 맞이하는 아침 겸 점심 식사였다.
 
“사장님, 여기 비빔소면 하나요!”

이끌리듯 들어간 작은 소면가게에 앉아 다급한 눈망울을 굴리기를 10여분 째... 드디어 비빔소면 한 그릇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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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먹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지만, 나는 정말 살기 위해 먹었다. 급하게 탄수화물을 밀어넣으며 아사 직전인 나를 소생시키는 데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점차 시선이 또렷해졌고, 머지않아 주인아주머니와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옆자리 커플까지 눈에 들어오는 경이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여자친구가 이 집 맛있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재잘대는 남자손님을 보며 주인아주머니는 식당의 크기만큼 아담한, 하지만 풍요로운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 후로도 몇 번 오고가는 정감 넘치는 대화를 들으며 나에게는 그저 우악스럽게 우겨넣은 첫 끼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낭만적인 맛이 되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같은 양의 고추장, 같은 양의 면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젓가락을 들었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는 걸 보면 이 ‘음식’이라는 친구가 꽤 무궁무진한 아이인가보다.

그 뿐일까? 음식은 의리까지 갖춘 진정 위대한 피조물이다.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겠다는 목적 하나만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 30분만에 찬란하게 사라져버리는 이들만큼 자기희생적인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그리하여 이렇게 멋진 친구를 만들어낸 주인아주머니까지 신격화시키는 경지에 나는 이르렀다! ‘음식’이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이라면, 주인아주머니는 그 에덴동산을 창조해낸 신이랄까...
 
더 자세히 말하면, 식당 일이 멋있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껏 단 한번도 식당 아주머니가 멋진 일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전까지 나에게 있어 식당 아주머니는 그저 내 주문에 따라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나의 무심함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의 모든 일은...


세상의 모든 일은 가치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을 향해있다.
하여 세상의 모든 일은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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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가치는 이름도, 혹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그의 필요를 채워준다. 반대로 생판 처음 보는, 아마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나에게로 와 나의 빈 부분을 채워준다. 어느 한 모서리라도 무너지면 모양이 이상해지는 육각형처럼, 아니 팔각형처럼, 아니 70억각형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번듯하게 자신의 일을 해냄으로서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나는 오늘 지하철 기사님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식당 아주머니가 내밀어준 손을 잡았다. 그리고 팝콘을 먹고 싶어 하는 수백 명 관객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작게 오고가는 손길들이 없었다면 차가 없는 나는, 편의점 포스기를 다룰 줄 모르는 나는, 요리에는 끔찍이도 소질이 없는 나는 분명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없었다면 팝콘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수백 명의 관객들은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의 주린 배를 채워주며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의 따듯한 음식이자, 포근한 식당 아주머니가 되어주며 살아간다. 당신이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 그것은 누군가를 편안히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당신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누군가 역시 있다는 것을 가끔 떠올리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에덴동산이자, 누군가를 존재시킨 신이다.
 
하여 손길을 주고받는 접촉점의 순간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다섯 글자와 함께 2초의 미소를 좀 더 헤프게 보여주면 좋겠다. ‘너 덕에 내가 있고, 내 덕에 너가 있다.’라는 이 한 문장이 저 다섯 글자 안에 담기니 이 얼마나 간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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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 아주머니께서 다른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식사 드릴게요”

오늘도 나는 ‘주문하신 오리지널 팝콘 나왔습니다!!!’를 수천 번 외치다 퇴근했다. ‘주문하신 비빔소면 나왔습니다’ 라는 말보다 ‘식사 드릴게요’가 더욱 따듯하게 와 닿은 것은, 아마 ‘준다, 드린다’의 의미가 한층 진하게 베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당을 나서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당신께서 오늘 만들어주신 새콤한 비빔소면은 저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습니다. 저 역시 한 번 더 웃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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