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데니스 코츠킨 PIANO: 매우 특별했던 그의 연주를 기억하며.

글 입력 2018.06.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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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피아노 연주회,' 데니스 코츠킨 PIANO'.


저번에 경험한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연주에 이어 또 한 번 경험하게 된 피아노 독주회였다. 피아노 독주회를 제대로 보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였기에, 첫 번째로 내가 보고 들은 피아노 연주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가 더더욱 기대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연주회를 접해보기 전에는 피아노 연주곡 사이의 차이점이나 그 곡 만의 특별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껴보려는 시도와 노력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러나, 이렇게 피아노 연주회를 접해 본 후에는 각 연주와 곡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느끼며 그것의 특별함을 찾아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곡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연 채로 데니스 코츠킨의 피아노 연주회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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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 제1권, 제7번 g단조, HWV432
Georg Friedrich Händel Suite for Keyboard, Vol.1, No.7 in g minor, HWV432

: 이 곡은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 제1권'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인상적이다. 1악장은 프랑스 서곡 양식이며, 육중한 아다지오에서 빠르고 흉포한 프레스토로 넘어간다. 안단테 악장은 조용하고 서정적이며, 추진력 있는 알레그로 악장 다음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인 '사라방드'가 온다. '지그'는 상당한 수준의 기교를 과시하면서 앞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며, 마지막곡 '파사카유'(파사칼리아)는 치밀한 대위법과 더불어 전곡을 기념비적으로 마무리한다.

[나의 감상] 이번 연주회의 연주곡 중에서가 가장 클래식한 곡으로 느껴진 곡이었다. 클래식함 특유의 무게감과 풍부한 선율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상은 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부드러운 선율은 부드러우면서도 서정적인 감동을 전해주고, 그 기반에 깔려 있는 클래식한 선율의 무게감은 이 감동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 준다.
 

2.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인터메조, Op.117
Johannes Brahms 3 Intermezzi for Piano, Op.117

: 브람스는 자신의 독주곡에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지 모를 떄는 그냥 '인터메조'(간주곡)라고 부르곤 했다. 이 곡은 기교적으로 특별히 어렵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음악적 통찰력을 요구한다. 세 악장 모두 '안단테'이며 내향적인 분위기를 지니는 것도 연주자가 각 악장을 차별화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준다. 1악장은 3부 형식이며 대체로 고즈넉한 반면, 한층 달콤한 2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며 주제를 솜씨 좋게 가공하는 브람스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3악장은 브람스가 '내 번민을 모두 담은 자장가'라고 불렀듯이 세 악장 가운데 가장 어둡고 체념적이며, 다소 동요하는 중간부를 거쳐 처음 분위기로 돌아가 끝난다.

[나의 감상] Lika a Tragedy.
브람스가 '내 번민을 모두 담은 자장가'라고 부른 부분인 3악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세 악장 모두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다가 3악장에서 이 정적임이 마침내 어두움으로 그 형태를 발현해 내는 느낌이었다.  어두움의 절정에 이르러 모든 것을 다 체념한 듯한 3악장의 선율은 마치 한 편의 비극 속 주인공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선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연주곡의 3악장 부분은 나에게 상당한 울림을 주었다.
 

3.
벨러 버르토크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야외에서, Sz.81, BB89
Béla Bartók Out of Doors(Szabadban), Suite for Piano, Sz.81, BB89

: 버르토크가 1926년에 쓴 곡으로 헝가리 전원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한 성격 소품집이라 할 수 있다. 1악장 '북과 피리'는 거칠고 원초적이며 기괴한 화성 진행으로 지금까지도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2악장 '뱃노래'는 기복이 심하고 유동적이며, 3악장 '뮈제트'(17~18세기에 사용된 프랑스의 백파이프)는 명칭에 맞게 백파이프 음향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악장 '밤의 음악'은 고요한 밤의 여러 풍경(귀뚜라미와 개구리의 울음, 대상의 숙소 등)을 그려내며, 5악장'추적'은 날아가는 사냥감을 쫓는 모습을 격렬하게 묘사한다.

[나의 감상] 내가 들어 본 피아노곡 중 가장 기괴한 곡. 그리고 그래서 매우 흥미로웠던 곡.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이었다. 내가 들었던 피아노 연주곡 중 가장 기괴하고, 강렬하고, 특별했다. 사실, 피아노 선율이 기괴하다고 말하면 아마 나와 같이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기괴한 피아노 선율이라는 것 자체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들어온 피아노 선율은 조화로운 화성을 기반으로 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선율이 아름답고 듣기 좋다고 느끼는 그런 선율 말이다. 그러나, 이 곡은 그렇지 않았다. 낯설고 기괴한 화성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듣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중간 중간 스릴러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함'과 '놀람'을 선사해 준다. 보는 내내 뮤지컬 '스위니토드'가 연상됐다. 이 극에서 느껴지는 '재치있는 섬뜩함'이 이 피아노곡에서도 느껴졌다.
 

4.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전주곡, 제1권, L.117
Claude Debussy 12 Préludes for Piano, Book I, L.117

: 드뷔시는 피아노 독주를 위한 '전주곡'을 총 24곡 썼으며, 그 가운데 '1권'에 해당하는 12곡은 1907~10년에 걸쳐 작곡했다. 1곡 '델피의 무녀들'은 느리고 최면적인 사라방드이며 2곡 '돛단배'는 교향시 '바다'의 2악장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곡이다. 3곡 '평원에 부는 바람'에서는 빠른 장식 음형이 풍차 바람개비를 묘사하며, 4곡 '저년 대기 속에서 뒤섞이는 소리와 향기'는 느릿한 왈츠 풍의 녹턴이다. 5곡 '아나카프리의 언덕'은 타란텔라 춤곡 리듬을 지닌 활기찬 스케르초이며, 6곡 '눈 위의 발자국'에서는 정적인 악상이 황량한 겨울 풍경을 그려낸다. 7곡 '하늬바람이 본 것'은 기교면에서 특히 까다로운 반면, 8곡 '아마빛 머리의 아가씨'는 섬세함과 동경에 가득 찬 매혹적인 곡이다. 9곡 '중단된 세레나데'는 한 스페인 사람이 연인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르지만 자꾸만 소음으로 중단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10곡 '물에 잠긴 대성당'은 바다에 가라앉은 이스의 대성당이 어느 날 아침에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는 전설을 회화적으로 묘사하며, 11곡 '퍽의 춤'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요정 퍽을 기민하고 가벼운 필치로 그려냈다. 마지막 곡 '음유시인'은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는 세기말의 뮤직홀에서 자주 들리던 음악을 심술맞게 패러디하고 있다.

[나의 감상] 세 번째 연주 곡에서 받은 충격을 다시 진정시켜 주는 듯한 연주곡 이었다. 그리고 11곡 '퍽의 춤' 부분에서는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톰과 제리'에서 톰과 제리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그런 분위기가 떠오르는 곡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 퍽의 캐릭터를 매우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들으며, '음악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의 매력과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5.
조지 거슈인 랩소디 인 블루(피아노 독주를 위한 편곡)
George Gershwin Rhapsody in Blue(arranged for Solo Piano)

: 1923년 말에 유능한 재즈 밴드 리더였던 폴 화이트먼이 작품을 써달라고 요청하자 거슈윈은 시간이 없다고 고사했지만, 언론에서 거슈윈의 신작 작곡을 기정사실로 보도하는 바람에 억지로 작곡에 착수했다. 3주만에 완성된 이 곡(그가 쓴 것은 두 대의 피아노 버전이었고 관현학 편곡은 '그랜드 캐니언 모음곡'으로 유명한 퍼디그로페가 맡았다)은 발표되자마자 미국 음악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거슈윈은 나중에 이 곡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직접 편곡했다. 피아노의 즉흥적인 독주와 현란한 관현악이 너무나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원곡의 효과를 피아노 독주에서 어떤 식으로 살려냈는지 확인하는 것이 주된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나의 감상] 데니스 코츠킨 특유의 파워풀함으로 관현악의 빈자리를 꽉 채운 느낌이었다. 중간에 몰아치는 연주는 순간 소리로 이 공간이 가득 찼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밀도가 굉장했다. 하지만 그 밀도 속에서도 그의 손가락은 자유롭게 피아노 건반을 치며 현란함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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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열정적인 연주를 들은 뒤, 사람들은 그의 열정에 답하듯이 열정적으로 환호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날 그가 보여준 연주는, 피.알.못인 나에게도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의 연주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피아노 곡,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피아노 연주곡에 대한 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의 이 '특별한 연주' 덕분에, 앞으로도 더 열린 마음으로 피아노 연주곡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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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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